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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Oct 03. 2016

과수원으로 사과 사러 가기

1석 5조에 관한 이야기


절로 떨어진 사과의 맛은 천상의 맛이다.
과일 바구니에 담겨 있더라도 분명 외면당했겠지만.
-Arlene Bernstein-

 산골에 사는 행운을 누리던 작년부터 그녀의 과수원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여름에 맛볼 수 있는 풋풋한 첫 번째 사과  아오리. 두 번째로 수확되는 홍로는 단맛이 지나쳐서인지 시원한 아삭함이 부족하다. 


 오늘 사과는 달콤함에 새콤함이 더해져 한 입 깨무니 정신까지 맑아진다. 그러고 보면 무조건 달다고 맛난 건 아니며 단맛에 적당한 신맛의 조화가 있어야 제격이다.



 그녀의 가게는 사과의 수확철 중 주말에만 문을 연다. 디자인 강국답게 농장의 박스는 농진청의 컨설팅을 받은 흔적이 있다. 박스에 담긴 사과는 정확한 값이 매겨져 있다. 3만 원을 내미니 굵기가 고르고 껍질이 매끈한 예쁜 사과 한 박스와 큰 통에 담긴 사과를 무작위로 골라 한아름 더 안겨준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쓰레기로 분류될 박스를 돌려, 착즙 한 주스까지 덤으로 준다. 



 오늘은 사과를 사는 만큼이나 중요한 사진 찍기를 염두에 두고 온터라 주인인  K.A 씨께 부탁했다.

"사과 그림 그리려고 하는데 사진 좀 찍어도 돼요?

"아! 그러세요. 이쪽으로 들어가서 편히 찍어요. 지금 빨간색 사과는 많이 없을 텐데 어째요?"

동행은 밖에 두고 나 혼자 훌쩍 과수원 안으로 뛰어들었다.



 수확 시기가 다른 갖가지 색깔들의 사과나무 아래에서 나는 행복하게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작년과는 달리 사과 껍질에 자국들이 많다. 2016년의 여름은 얼마나 뜨겁고 가뭄이 심했었는가? 사람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일 때 사과들도 태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껍질이 타들어것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차분한 주인 새댁의  곱던 피부도 사과만큼 얼굴에 여러 가지 흔적이 남아있다.



 주변에 사과 농장이 많은데 왜 나는  굳이 멀리 있는 그녀에게서 사과를 살까? 자기 사과를 최고라고 자랑하지 않고, 힘과 정성을 쏟은 고달픔을 내색하지 않으며, 친절하지만 말 수가 없는 것이 이유인 듯하다. 더불어 제대로 된 품질의 맛 좋은 사과를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월의 오후! 사과 농장에서 한참을 뛰어다니다 떠나며 그동안 먹었던 사과들을 떠올려 봤다.'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혹은 맛도 좋다.'는 속담과 달리 먹음직스럽게 생긴 과일이 예상보다 맛이 별로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 수천 개의 사과를 먹어 보고 실험한 한 과학칼럼니스의 글을 보니 사과 맛과 겉모양은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고 했다.



 평일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과수원에서 일하고, 주말에만 도로변 과수원에서 한철 사과를 파는 집. 가을이 끝나고 한 겨울이 되면  나는 사과를 사러 새댁의 시부모님 댁으로 간다. 그곳엔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7월까지 맛을 유지시킬 정감 넘치는 저장고가 과수원 가장자리에 있다. 겨울과 꽃샘추위가 한창인 봄에도 나무를 올려다보며 가지치기를 하고, 땅에 거름을 내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조용히 노력하여 풍요로운 결실을 맺는 과정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모양이 울퉁불퉁 해도, 껍질이 햇볕에 화상을 입어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가지에서 떨어지거나, 색깔이 예쁘지 않아도 사과는 그 속에 최고의 맛을 감추고 있을지 모른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맛난 사과를 고를 수가 없었는데 여기서는 맛없는 사과  찾기가 오히려 힘들다. 하늘공원을 구경한듯한 멋진 시간이었고, 여름의 불볕을 견딜 수 없어  사과와 함께 얼굴이 맣게 된 그분들의 혼연일체에 수확의 무게감을 진하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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