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 떨어진 사과의 맛은 천상의 맛이다. 과일 바구니에 담겨 있더라도 분명 외면당했겠지만. -Arlene Bernstein-
산골에 사는 행운을 누리던 작년부터 그녀의 과수원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여름에 맛볼 수 있는풋풋한 첫 번째 사과 아오리. 두 번째로 수확되는홍로는단맛이 지나쳐서인지시원한 아삭함이 부족하다.
오늘 사과는 달콤함에 새콤함이 더해져 한 입 깨무니정신까지 맑아진다. 그러고 보면 무조건 달다고 맛난 건아니며 단맛에 적당한 신맛의 조화가 있어야 제격이다.
그녀의 가게는 사과의 수확철 중 주말에만문을 연다. 디자인 강국답게 농장의 박스는 농진청의컨설팅을 받은 흔적이 있다. 박스에 담긴 사과는정확한 값이매겨져 있다. 3만 원을 내미니 굵기가고르고 껍질이매끈한 예쁜 사과 한 박스와 큰 통에담긴 사과를 무작위로 골라 한아름 더 안겨준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쓰레기로 분류될 박스를돌려주니, 착즙 한 주스까지덤으로 준다.
오늘은 사과를 사는 만큼이나 중요한 사진 찍기를염두에두고 온터라 주인인 K.A 씨께 부탁했다.
"사과 그림 그리려고 하는데 사진 좀 찍어도 돼요?
"아! 그러세요. 이쪽으로 들어가서 편히 찍어요.지금 빨간색 사과는 많이 없을 텐데 어째요?"
동행은 밖에 두고 나 혼자 훌쩍 과수원 안으로 뛰어들었다.
수확 시기가 다른 갖가지색깔들의 사과나무아래에서 나는 행복하게 뛰어다니며사진을 찍었다. 작년과는 달리 사과 껍질에 자국들이많다. 2016년의 여름은 얼마나 뜨겁고 가뭄이 심했었는가? 사람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일 때 사과들도태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껍질이 타들어간 것이다.서울에서 내려온 차분한 주인새댁의 곱던 피부도 사과만큼 얼굴에 여러 가지흔적이 남아있다.
주변에 사과 농장이 많은데 왜 나는 굳이 멀리 있는그녀에게서사과를 살까? 자기 사과를 최고라고 자랑하지 않고,힘과 정성을 쏟은 고달픔을 내색하지 않으며,친절하지만 말 수가 없는 것이 이유인 듯하다.더불어 제대로 된 품질의 맛 좋은 사과를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월의 오후! 사과 농장에서 한참을 뛰어다니다떠나며그동안 먹었던 사과들을 떠올려 봤다.'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혹은 맛도 좋다.'는 속담과 달리 먹음직스럽게 생긴 과일이 예상보다 맛이 별로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 수천 개의사과를 먹어 보고 실험한 한 과학칼럼니스의 글을 보니 사과 맛과 겉모양은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고 했다.
평일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과수원에서일하고, 주말에만 도로변과수원에서 한철 사과를 파는집.가을이 끝나고 한 겨울이 되면 나는 사과를 사러새댁의 시부모님 댁으로 간다.그곳엔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7월까지 맛을 유지시킬정감 넘치는 저장고가 과수원 가장자리에 있다.겨울과 꽃샘추위가 한창인 봄에도사과나무를올려다보며 가지치기를 하고, 땅에 거름을 내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조용히 노력하여풍요로운 결실을 맺는 과정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모양이 울퉁불퉁 해도,껍질이 햇볕에 화상을 입어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가지에서떨어지거나, 색깔이예쁘지 않아도 사과는그 속에 최고의 맛을 감추고 있을지 모른다. 도시에서는좀처럼 맛난사과를 고를수가 없었는데 여기서는 맛없는 사과 찾기가 오히려힘들다. 하늘공원을 구경한듯한 멋진 시간이었고,여름의 불볕을 견딜 수 없어 사과와 함께 얼굴이새까맣게 된 그분들의 혼연일체에 수확의 무게감을진하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