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간단하네. 엄마 제가 할게요!"
나의 상상 속 음식은 이미 어젯밤에 차려졌다. 장날에 넉넉히 사서 말려둔 버섯은 물에 담가두었고 흰 살 생선은 해동, 두부는 간수를 빼기 위해 삶은 뒤 소쿠리에 얹어두었다. 양배추는 아침에 아홉 잎을 데쳤다.
2019 새해의 엄마 결심이 가족들에게 전파되어 동참 의지가 굳건하다. -간소한 식탁! 소금과 후추를 넣은 재료는 한데 모아 찰지게 주물러야 한다.
만만해 보였는지 큰 아이가 "엄마 제가 해볼게요."
난 누구에게 일을 맡기면 믿고 안심하는 유형. "어..., 그래!"
양배추에 뭉친 재료를 넣고 랩스커트처럼 한번 둘러 찜기에 놓는다. 벌써 다 써버린 양배추, 아이는 남겨진 재료로 "엄마, 이거 구우면 맛날 듯해요."
"Why not?"
산촌으로 이사 온 내게 동서가 집들이 선물로 준 나무 찜기에 김이 오르던 15분 동안 아이는 남은 재료를 동글납작하게 뭉쳐 노릇하게 굽고 있다. 반찬으로는 자극적인 것보다 백김치가 좋겠다는 의견까지 거침없다. 드디어 한 가지 재료로 생각지도 못했던 두 가지 설날 특별식이 완성되었다.
결혼을 한 지 30년이 되었다. 시댁 위주로 돌아가는 명절 음식은 그동안 변함이 없다. 엄청난 양의 갖가지 나물과 제기에 쌓인 이름 모를 생선들, 손질해서 올린 탓에 맛없이 변해 버린 과일들. 장손 며느리로 60년간 제사를 지낸 시어머니 냉동고는 문 만 열면 뭔가가 얼음덩이가 되어 우르르 쏟아진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자신 있게 "그거 제가 해볼게요"라는 말은 좀체 하지 않았다. 까다롭게 조심스럽게 무리하며 준비된 제물의 버거움 앞에서 난 엄두가 나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엄마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뭐 하나라도 넘치지 않아야 제 고유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소문난 한정식이나 궁중요리를 만들지 않는 바에야 곁에서 바라보다 '나 이거 해보고 싶어'라는 마음이 들면 되는 거다. 함께 만들어 나갈 밥 상이 내 가족의 미래 라이프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