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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길

가야금 독주곡 '돌담길' 창작 기록

by 가야금 하는 희원

우연히 방문한 외암리 민속마을, 어릴 적에도 자주 방문하곤 했던 이곳이 그날은 낯설게 느껴졌다.

신기하고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달까?

평소에도 재미있는 모험을 하며 살아가는 나는 모험의 촉수가 꿈틀거렸다.

호기심을 뒤로 한채 마을 입구로 들어갔다.

마을 앞에선 늠름한 장승과 하늘 높이 솟은 솟대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세월이 느껴지는 물레방아부터 시원하게 쉬어갈 수 있는 정자까지

쉼터가 따로 필요 없었다.

이곳은 여기서부터 갈림길이 시작된다. 나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향하면 단란한 초가집들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돌담길과 논밭이 광활하게 펼쳐져있다.

나는 추억을 이정표 삼아, 나의 어린 시절을 따라가 본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 그 위로는 정겨운 초가집 일대가 마을을 이룬다.

과거에는 마냥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나였지만,

오늘은 잠시 눈을 감고 옛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랬더니 노오랗게 익은 가을처럼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사람 사는 냄새,

뭉근히 느껴지는 온기,

서로를 위하는 마음,,,,

여러 감각들을 느꼈지만, 결국 이 감각엔 '사람'이란 글자가 공통분모로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사람 냄새가 나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고 느꼈던 게.

그 마을을 걸으며, 나는 '따뜻함'에 대해 그리고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음악이라고 하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정해져 있었다.

봄, 햇살, 밝음, 귀여운 선율?

하지만, 이는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 사람 간의 삶에서 파생되는 따뜻함도 있었다.

그렇게 난, 산책에서 시작된 따뜻함을 공연으로 녹이기로 결심했다.


조금 걷다 보니, 돌담길이 나왔고

나는 시간을 멈춘 듯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들어보니, 외암리 민속마을의 땅 밑엔 호박돌이 많아서

집을 지을 때, 땅 밑에서 돌을 빼고 그 돌로 돌담길을 만든다고 한다.

우연히 만난 지혜로움에 마음이 찌릿하기도 하고,

그 위에 쌓인 돌탑에서 사람이란 글자가 아른거리기도 하였다.

순수하게 빌었던 소원, 속삭임이라 더 솔직했을 소원이 눈앞에 보이니 더 뭉클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돌담은 생각보다 투박하고 거침없지만, 이상하게 정이 갔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던 그날은 명상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도 모르게 마음을 푹 내려놓고 순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돌담길은 명상을 하는 산책로이기도 했지만, 모험을 떠나는 통로 같기도 하였다.

지친 마음을 돌담길에 기대어 마음을 달래다 보니,

이 걸음걸이가 전환점이 되어서일까?

마냥 차분해지고 평화롭기보다는 들뜨기도 하였다.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발걸음을 옮겨가며 생각을 사유하고, 그들의 온기를 느끼는 적극적인 나의 감각들은

앨리스의 호기심을 떠올리기에 충분하였다.

난 더 늦기 전에 휴대폰으로 풍경들을 담았다.

그리고 나의 두 번째 기억 방식 '작곡'으로 이 순간을 기억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가야금 앞에 앉았다.

'돌담길, 소원, 모험'

아무래도 난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나에게 돌담길의 잔상은 호기심과 모험이었다.


우선 난 시간의 전개로 곡을 만드는 편이라 돌담길의 첫 이미지를 예쁘고 아기자기한 선율로 표현하였다.

첫 악장은 중력을 거스르듯 여러 음들이 자유롭게 떠다니고, 깃털처럼 가볍고 작은 소리들로 채우고 싶었다.

이는 돌담길이 아늑하면서도 희미하게 느껴져서였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돌담길을 연상할 수 있는 음의 울림에 집중하였다.


다음으로는 돌담길을 걷는 호흡과 이에 따라 이동하는 시선을 표현하였다.

차분히 나아가는 걸음, 점점 고개를 들면서 옮기는 시선, 이동에 따라 품는 수많은 풍경들

그 흐름을 하나 둘 나열하였다.


호흡, 시선, 걸음 이 세 가지가 도착한 그곳은 신비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 이야기했던 앨리스가 소환되었고, 내 곡엔 앨리스를 안내하는 토끼가 등장하였다.

갑자기? 일 수도 있지만, 모험이 잔상으로 남은 나에게 그렇게 이상한 전개는 아니었다.

토끼가 등장하면서 곡에는 속도감이 생겼고,

깡충깡충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리둥절함을 곡에 표현하였다.

관객들은 과연 토끼가 이 사람을 어디로 안내할지 따라가 보기도 하고

쫓아가던 소녀의 가파른 호흡에 멈추기도 한다.

마치 술래잡기하듯 따라가고,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는 보통 풍경 속에서 느끼는 감각을 곡으로 표현하고,

상상 속 인물과 동물 등 재미있고 엉뚱한 요소를 삽입하여 곡을 만든다.

관객들이 곡을 듣는 과정이 수수께끼 하는 것처럼 재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엉뚱함을 발휘해 만든 '돌담길'이 누군가에게는 '명상'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재미있는 퀴즈이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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