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은 자연친화적으로 산세를 따라 조성되었기에 평지에 조성된 다른 궁궐에 비해 가장 한국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정형성이 요구되는 궁궐건축 구조를 탈피하여 배치와 지세를 거스르지 않는자연스러움이시각적으로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 동궐이라고도 하고 이궁 또는 별궁이라고도 불렸다.
많은 선대의 왕들은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효율적 업무에 최적화된 공간보다는 일터와 쉼터가 조화롭게 배려된 이 곳이 더 맘에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과 휴식의 균형이 맞아야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은 이치다.
임진왜란과 대화재로 소실과 복구를 반복하며 수난을 겪어왔지만 복원이 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규모는 원래 크기의 5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이 기록된 동궐도를 보면 창덕궁의 규모가 얼마나 컸었는 지를 가늠하게 한다. 앞으로 복원이 더 되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기원한다.
창덕궁 배치도
창덕궁 입구인 돈화문 앞엔 한복을 입은 외국인과 관광객으로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돈화문을 통과하면 좌우로 울창한 수목들이 펼쳐지며 반긴다. 조금 걷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금천교 돌다리와 진선문을 지나면 인정문 앞마당이 나온다. 자세히 보면 마당의 모양이 약간 사다리꼴 형태다.
인정문 앞 마당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 칠 수도 있지만 진선문과 숙정문을 연결하는 어로를 기준으로 오른쪽 마당을 보면 알 수 있다. 지형의 형태를 반영하여 조성하다 보니 정형성을 벗어난 거라 한다.
과거에 이곳을 기획했던 담당자는 모양이 반듯하지 못하다고 하여 벌을 받았다고 한다.
인정전
인정문을 지나면 인정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의 인정전은 4번째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임진왜란과 화재로 3번이나 소실되었다고 한다. 굴곡의 조선 역사와 많은 수난이 함께 했던 장소이다.
딸은 인정전을 볼 때면 치맛자락 펄럭이며 앞으로 뛰어 나간다. 그 뒷모습을 보는 흐뭇함에 미소 짓게 만든다. 이때부터 공주 놀이는 시작이다.
인정전 좌측 계단 스케치
인정전 뒤편으로 왕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이, 오른쪽으로는 왕이 정무를 보던 선정전이 있다.
선정전은 창덕궁 유일의 청기와 지붕을 하고 있다. 규모가 아담하여 항상 경복궁과 비교하게 된다.
매번 갈 때마다 관람코스가 변하다 보니 순서가 없다.
그저 발길 닿는 순서로 돌아다닌다.
희정당
선정전 옆으로는 내전의 사랑채인 희정당이 있다.
다른 건물들과 조금 다른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순종황제 때 자동차가 문 앞으로 돌아 나올 수 있도록 만든 곡선의 차로가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건축물에도 기능에 맞춰 리모델링이 이뤄졌다.
왠지 모를 어색함은 나만 그런 걸까?
궁궐 동쪽 끝에 낙선재라는 가옥이 있다.
양반집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양반집들과는 다르게 구석구석 섬세한 디테일과 세련됨을 갖추고 있다.
낙선재- 벽면의 무늬, 다양한 창살 모양, 뒤뜰의 화계 등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소박하게 꾸며져 눈이 즐겁다.
아름다운 곳이지만 아픈 기억도 있는 곳이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고종의 7번째 아들인 영친왕이 머문 곳이다.
일제시대 볼모로 일본에 잡혀갔다가 독립 후 1963년에 귀국하여 이곳에 살다 투병 끝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낙선재 뒤뜰
낙선재 뒤뜰은 아기자기하며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다. 아내와 딸은 이곳을 너무 좋아한다. 층층이 이뤄진 화계와 꽃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낙선재 화계 대조전 화계
화계란 집터의 경사지에 층계 형태로 단을 만들어 꽃과 나무를 심어 만든 정원을 말한다.
우리나라 정원을 구성하는 특색 중에 하나로 토사 유출을 막아주며 주로 남자의 출입이 제한된 내당의 후면에 아녀자를 위한 쉼터 역할을 한다.
대조전 뒤뜰의 화계와는 느낌이 조금 다른데 낙선재 뒤뜰로 연결되는 중국식 건축양식이 반영된 석복헌의 담장과 경계를 이루고 있어 색다르게 보인다.
창덕궁 후원
창덕궁의 가장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후원이다.
후원을 보지 않고 창덕궁을 봤다고 말할 수 없다.
인터넷 예약 선착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가보길 원한다면 사전에 미리 서둘러야 한다.
인원을 제한하고 있어 무한정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후원 출입은 성정각 오른편의 돌담길에서 시작한다.
후원은 10만여 평의 자연 지대에 조성된 궁중 정원이다.
왕실의 휴식처였고 학문을 연마하고 임금이 농사도 지으며 궁중문화를 이끌었던 곳이다.
특히 정조는 규장각과 서고를 지어 정치와 문화를 발전시키려 했던 곳이기도 하다.
후원 입구의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궁궐을 보러 나온 게 아니라 산책을 나온 느낌이 들 정도로 수목이 가득하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지나다 보면 부용지라는 연못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