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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석 Sep 25. 2017

#2 창덕궁, 꽃 피다

왕이 사랑한 쉼터

서울엔 궁궐이 참 많다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5개의 궁이 서울 도심에 있다.

주말에 지방으로 여행을 가지 못하면 가까운 궁궐로 산책을 자주 다니는 편이다.

여러 곳을 다녔지만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창덕궁이다.

5개의 궁궐마다 가진 특색이 있지만 창덕궁은 그중에서도 가장 편안함을 주는 매력이 있다.

경복궁보다 규모는 작으면서 짜임새가 있고 가옥(낙선재)과 후원이 있어 볼거리가 풍부하다.

다양한 수목과 꽃들이 건물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계절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특히 후원의 경치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다.

궁궐로는 국내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미를 갖춘 곳이다.

               분홍색 한복을 입고 혼자 저렇게 잘 다닌다.                         

궁궐에 갈 때면 딸은 한복을 차려 입고 집을 나선다. 매년 키가 훌쩍 크다 보니 한복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머리엔 댕기를 꼭 해야 하고 겨울엔 조바위와 배자를 착용한다. 한복을 입고 궁에 들어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니 기특할 뿐이다.

한복을 입으면 평소와 다르게 차분해진다. 한 손은 치맛자락을 잡고 천천히 사뿐사뿐 걸으며 장난도 치지 않는다. 궁궐에 오면 공주가 되는 상상을 하는가 보다.

자주 오다 보니 세 가족은 대략의 관람 동선을 알고 있다. 방향은 맞춰가지만 보는 시선은 각자 다르게 흩어진다. 난 그림 그릴 곳을 찾아 헤매고 아내는 구석구석 탐색을 하며 딸은 엄마를 쫓아가는가 싶다가도 예쁜 꽃이나 나무에 시선이 빼앗기면 한참을 구경한다.

계절마다 찾아오면 그때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봄과 겨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봄엔 풍성한 수목과 꽃들로 가득하여 시선은 바쁘게 움직인다.

눈 덮인 겨울은 말로 표현 못할 신비감마저 감돈다.

가을엔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과 연못에 비친 하늘이 너무도 청명하다.

많은 궁궐 중에 유독 창덕궁을 많이 그렸다. 그만큼 애정이 많이 가는 곳이다.

아직도 그리지 못한 곳들이 많아 다음에 다시 찾을 이유가 된다.


창덕궁은 자연친화적으로 산세를 따라 조성되었기에 평지에 조성된 다른 궁궐에 비해 가장 한국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정형성이 요구되는 궁궐건축 구조를 탈피하여 배치와 지세를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움 시각적으로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 동궐이라고도 하고 이궁 또는 별궁이라고도 불렸다.

많은 선대의 왕들은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효율적 업무에 최적화된 공간보다는 일터와 쉼터가 조화롭게 배려된 이 곳이 더 맘에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과 휴식의 균형이 맞아야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은 이치다.

임진왜란과 대화재로 소실과 복구를 반복하며 수난을 겪어왔지만 복원이 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규모는 원래 크기의 5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이 기록된 동궐도를 보면 창덕궁의 규모가 얼마나 컸었는 지를 가늠하게 한다. 앞으로 복원이 더 되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기원한다.

창덕궁 배치도

창덕궁 입구인 돈화문 앞엔 한복을 입은 외국인과 관광객으로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돈화문을 통과하면 좌우로 울창한 수목들이 쳐지며 반긴다. 조금 걷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금천교 돌다리 진선문을 지나면 인정문 앞마당이 나온다. 자세히 보면 마당의 모양이 약간 사다리꼴 형태다.

인정문 앞 마당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 칠 수도 있지만 진선문과 숙정문을 연결하는 어로기준으로 오른쪽 마당을 보면 알 수 있다. 지형의 형태를 반영하여 조성하다 보니 정형성을 벗어난 거라 한다.

과거에 이곳을 기획했던 담당자는 모양이 반듯하지 못하다고 하여 벌을 받았다고 한다.

인정전

인정문을 지나면 인정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의 인정전은 4번째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임진왜란과 화재로 3번이나 소실되었다고 한다. 굴곡의 조선 역사와 많은 수난이 함께 했던 장소이다.

딸은 인정전을 볼 때면 치맛자락 펄럭이며 앞으로 뛰어 나간다. 그 뒷모습을 보는 흐뭇함에 미소 짓게 만든다. 이때부터 공주 놀이는 시작이다.

인정전 좌측 계단 스케치

인정전 뒤편으로 왕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이, 오른쪽으로는 왕이 정무를 보던 선정전이 있다.

선정전은 창덕궁 유일의 청기와 지붕을 하고 있다. 규모가 아담하여 항상 경복궁과 비교하게 된다.


매번 갈 때마다 관람코스가 변하다 보니 순서가 없다.

그저 발길 닿는 순서로 돌아다닌다.

희정당

선정전 옆으로는 내전의 사랑채인 희정당이 있다.

다른 건물들과 조금 다른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순종황제 때 자동차가 문 앞으로 돌아 나올 수 있도록 만든 곡선의 차로가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건축물에도 기능에 맞춰 리모델링이 이뤄졌다.

왠지 모를 어색함은 나만 그런 걸까?



궁궐 동쪽 끝에 낙선재라는 가옥이 있다. 

양반집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양반집들과는 다르게 구석구석 섬세한 디테일과 세련됨을 갖추고 있다.

낙선재- 벽면의 무늬, 다양한 창살 모양, 뒤뜰의 화계 등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소박하게 꾸며져 눈이 즐겁다.

아름다운 곳이지만 아픈 기억도 있는 곳이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고종의 7번째 아들인 영친왕이 머문 곳이다.

일제시대 볼모로 일본에 잡혀갔다가 독립 후 1963년에 귀국하여 이곳에 살다 투병 끝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낙선재 뒤뜰

낙선재 뒤뜰은 아기자기하며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다. 아내와 딸은 이곳을 너무 좋아한다. 층층이 이뤄진 화계와 꽃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낙선재 화계                                 대조전 화계

화계란 집터의 경사지에 층계 형태로 단을 만들어 꽃과 나무를 심어 만든 정원을 말한다.

우리나라 정원을 구성하는 특색 중에 하나로 토사 유출을 막아주며 주로 남자의 출입이 제한된 내당의 후면에 아녀자를 위한 쉼터 역할을 한다.

대조전 뒤뜰의 화계와는 느낌이 조금 다른데 낙선재 뒤뜰로 연결되는 중국식 건축양식이 반영된 석복헌의 담장과 경계를 이루고 있어 색다르게 보인다.


창덕궁 후원

창덕궁의 가장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후원이다.

후원을 보지 않고 창덕궁을 봤다고 말할 수 없다.

인터넷 예약 선착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가보길 원한다면 사전에 미리 서둘러야 한다.

인원을 제한하고 있어 무한정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후원 출입은 성정각 오른편의 돌담길에서 시작한다.

후원은 10만여 평의 자연 지대에 조성된 궁중 정원이다.

왕실의 휴식처였고 학문을 연마하고 임금이 농사도 지으며 궁중문화를 이끌었던 곳이다.

특히 정조는 규장각과 서고를 지어 정치와 문화를 발전시키려 했던 곳이기도 하다.

후원 입구의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궁궐을 보러 나온 게 아니라 산책을 나온 느낌이 들 정도로 수목이 가득하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지나다 보면 부용지라는 연못이 나온다.

부용지 위엔 연꽃으로 가득하고 연못 주변으로 부용정, 영화당, 어수문, 주합루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때 감탄사가 절도 터진다. 아~~~ 멋지다.

부용지 한가운데의 작은 섬 위엔 멋진 소나무가 연못에 낚싯대를 던져놓은 것처럼 늘어져 있다.

일부로 연출한 것도 아닐 텐데 너무도 자연스럽다.

누구라도 이곳에 와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 이가 없을 것 같다.

산길을 따라 내려오다 갑자기 펼쳐지는 경관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타이밍이 정말 대단하다.

연못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며 그림에 담고 싶은 충동이 요동쳤다. 과연 잘 그려낼 수 있을지도 걱정되었다.

부용정 반대편으로 높게 자리 잡은 주합루가 보인다.

부용지
어수문과 주합루

주합루는 일주문처럼 보이는 어수문을 지나야 올라갈 수 있다. 어수문은 주합루의 정문이다.

크기는 작지만 조각품을 연상케 할 정도로 정교하다.

어수(漁水)란 물과 물고기로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빗대어 의미한다고 한다.  

주합루의 아래층이 규장각이다. 규장각은 정조대왕이 학문을 연구하고 정치개혁을 이루고자 세운 중추기관이었다. 인재들을 발굴 등용하여 그들의 연구를 정책에 반영해 나가며 선정에 힘쓴 곳이다.


가끔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면 현장에서 스케치를 할 때가 있다.

그림을 완성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밑 스케치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앉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지나가던 행인 몇몇은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뭘 그리고 있는지? 잘 그리는지 궁금함에 구경을 하고 간다.

한국 사람은 대부분이 휙 보고 가거나 지나가는 경우가 많고 외국인들은 엄지를 치켜세우고 말 한마디씩을 건 내며 미소를 보내준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보는 시선의 정서가 참 다름을 느낀다.


                 연경당 장락문                                                                                               

연경당은 120칸 규모 양반가의 저택으로 지은 것으로 효명세자가 순조를 위해 지어진 궁가라고 한다.

연경당 입구에 우뚝 쏟은 장락문을 시작으로 안채, 사랑채, 선향재, 농수정 등 배치와 구조가 긴밀하면서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품위가 있고 짜임새가 있다.


선향재는 서재 겸 응접실로 전면에 차양을 위해 설치된 지붕이 특이하다.

강릉 선교장 열화당과 형태와 비슷하여 눈길을 끌었다.

       연경당 선향재                          강릉 선교장 열화당

선향재 위로 농수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사방 한 칸짜리 정자로 규모가 작지만 곳곳에 공을 들여 만든 세심함이 돋보인다.

가운데 농수정,  오른편에 선향재

넓기도 넓고 볼 것도 많아 다 설명하자면 더 길어질 것 같다.

더 자세히 보지 못한 곳들(관람지, 관람정, 존덕정, 옥류천의 정자들 등)은 기회가 되면 다음에 다시 다루고 싶다.


가족과 문화유산지를 다니다 보면 출입이 허용된 곳은 꼭 내부까지 들어가 본다.

사진도 찍고 앉아서 이야기도 나누며 천천히 즐긴다.

미리 사전 공부가 된 곳은 딸에게 설명도 해주고 부족한 부분은 관련 자료를 찾아 알려주기도 한다.

어린 딸은 워낙 자주 다니다 보니 비슷비슷하게 보일 법한 한옥을 봐도 대략 어디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꾸준히 다닌 효과가 있다.

딸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더 편리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점점 잊혀 가는 전통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잃지 않고 성장했으면 좋겠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식견을 갖춘 성인이 되었으면 한다.

한국 건축물 그림을 주로 그리며 변화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전통 목조건축에 대해 공부하게 되고 문화재에 담긴 이야기를 알기 위해 역사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그림을 완성하면 딸에게 보여준다. 그러면 딸은 어디인지 알아 맞힌다.

어린 것이 그냥 여행지에서 부모와 놀러만 다닌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함께했던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 기특하다. 그리고 딸이 가장 크게 변한 것은 관찰력이 여행을 다니기 전보다 뛰어나 졌다.

내가 기억 못 하거나 보지 못한 것도 지적해 준다.

이런 변화를 보면 여행을 멈출 수가 없다.


창덕궁 달빛기행이 11월까지 한다고 하니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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