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문학소년 에세이, <불안이 내 옆에 앉을 때>
불안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처럼. 저벅저벅 시끄러운 발소리도 없이, 한마디 말도 없이 슬그머니 온다. 그저 똑똑똑 문 열고 들어와 나도 모르게 조용히 내 옆에 앉는다. 마치 오래 사귄 연인인 양, 옆구리에 착 달라붙는다. 그림자처럼.
하도 그런 날이 많아 이젠 놀라지도 않는다. "왔어?" 애써 태연한 척, 심드렁하게 말은 하지만 속 마음은 불편하다.
애써 외면하고 딴청 부리고 모른 척하고 엄청 눈칫밥을 줘도, 이 친구는 꽤나 끈질기게 오래도록 머무는 불편한 손님이다.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앞에 서면 불안이 나보다 먼저 이마에 와 있다. 나이를 아무리 먹고 35년 간 영업현장에서 펄펄 뛰고 훨훨 날아도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다. 심지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조차도 내 옆에 와 앉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절대로 혼자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함께 손 잡고 세트로 데리고 오는 친구가 있다."무기력".
어지간히도 골치 아픈 녀석이다.
불안은 왼쪽에 앉고 무기력은 오른쪽에 앉는다. 세상 둔감한 나는 이런 상태가 여러 날이 지나서야 겨우 알아챈다. 왔구나. 이 녀석들... 갇혔다. 포위당했다. 한숨 쉰다.
또 시작이구나... 일단, 안전지대인 침대로 피신한다.
떼쓰고 억지 부려서 겨우겨우 설득해 내 보내지만. 틈만 생기면 창틈으로 문틈으로 마음의 틈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제 이쯤 되면 의심을 품게 된다. 어쩌면 불안은 어디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온갖 세포 안에서 365일 짱 박혀 있다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정서의 검은 그림자가 아닐까?
불안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불안의 정체는 무엇인가.
누구냐 너!
헤세는 불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라고 말한다. '물끄러미'란 뜻은 명령이나 타박하지 말고 차분히 깊게 한 방향으로 바라보라는 뜻인데, '물끄러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밤의 선생 황현산. 세상과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인.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깊은 사색과 통찰이 놀라운 선생님. 그리고, 불안과 머리 끄당겨 드잡이해 가며 싸우지 말고 길 가는 사람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라는 길 위의 철학자. 이 말은 갈등의 당사자 입장에서 벗어나 제삼자가 되어 바라보라는 뜻인데, 비슷한 맥락으로 <정아 이론>을 설파한 길 위의 소년도 생각난다. 정수리 위에 자아를 둥실 띄워서 자신을 바라보자는 이론인데, 철학계나 심리학계에 이 이론이 알려진 바는 없다. 내 이론이 별로인가 보다.
또 있다.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보통 수준이 아닌 알랭드 보통의 말이다. 이 분의 존함은 참으로 절묘하고 내공 깊다. 보통이 아닌데 보통이란다. 인간의 보편적인 통증을 말하고 치유하라고 그의 할아버지가 가문의 이름을 보통이라고 작명했으리라. 보통이 말한 다섯 가지 불안의 원인(사랑의 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나의 욕망이 들여다 보인다. 그랬구나.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불안했구나. 오늘날, 우리네 불안의 원인이야 셀 수 없이 많겠지만 , 알랭드 보통이 말한 이 다섯 가지만 바라봐도 버겁고 무겁다.
버겁고 무거운 게 오늘 나의 냉엄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해법을 찾아보려 물끄러미 바라보니 불안이 생각보다 작고 조용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알 듯싶다.
필경, 욕망도 나이 들어가나 보다.
이제는, 불안이 다시 내 옆에 와서 앉아도 그런대로 괜찮다.
말을 걸지도 않고 쫓아내지도 타박도, 피신도 하지 않는다. 그럴 힘이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니니 오해하진 말자.
그저 함께 앉아 덕담 나누고 숨 고르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같이 산다. 어둡고 습한 그림자로만 치부하고 떨쳐버리고 밀어버리려 애써왔는데 다시 보니 이 녀석도 참 애잔하고 애련하다.
외로움이란 감정이 찾아오면 잠시 같이 있다가 내 안에 작은 서랍을 만들어 넣어 두라는 <산울림> 김창완 형님의 해법이 내 마음을 울린다. 불안도 마찬가지겠지. 그런 거겠지.
불안의 해법도 이렇게 어느 날 '툭' 슬그머니 나타난다. 역시 운동이든 삶이든 일상이든 힘을 빼야 되나 보다. 삶의 프로. 음악 9단. 창완이 형님의 노래처럼.
"불안이 찾아오면 함께 걷다가 다시 넣어두자."
나름 내린 오늘의 결론이 제법 마음에 든다.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어렵사리 잡은 일자리고 깊이 고민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과 현실 속에 나 자신을 잃고 싶진 않았다. 어떤 순간이 와도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기에...
회사는 사직서를 반려하고 재고를 요청하였지만, 빠른 결정이 회사에게도 나에게도 맞는 길이라 판단했다. 미련일랑 없고 불안하지도 않다.
어찌, 산 입에 거미줄 치겠는가.
침대에서 탈출하여 다시 길 위에 오른다. '모든 답은 어떤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로부터 나온다.
슬그머니 온 불안은 물끄러미 바라보자.
불안은 넣어두고 다시 한걸음 용기를 꺼내보자.
꽃잎 지지 말라고 발 동동거리며 바라는 건 욕망이다. 그건 꽃잎의 선택이고 나무의 결정이다. 나무는 고요하게 자신의 시간을 걷는다. 불안해하지 않는다.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이 자연과 인간의 일이니 꽃이 진다고 불안해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봄이 속절없이 지나간들 내가 2025년 이 빛나는 봄을 잊을쏘냐. 불안에 떨지 말고 두려움에 쫄지 말자.
간직하고 선택하고 용기 내는 '나'는 불안보다 크다. 힘도 세다. 좋은 말로 어르고 달래서 서랍 속으로 안내하면 된다.
"불안의 반대말은 다시 걷는 한걸음이다."
오늘의 한 문장을 짓고 산책을 마무리한다. <길 위의 문장>에도 제법 어울리니 이 또한 근사하다.
방구석으로 돌아오는데, 이봐 자네. 누군가 부르시고는 한 말씀하신다.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겁먹고 있을 때, 스스로 파멸과 패배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나의 철학선생님 니체의 말이다. 용기 내어 너의 길을 걸으라는 말을 이렇게나 세게 말씀하시니, 역시 철학의 힘은 세다. 문학이 다정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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