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哀痛’
사전적 의미로는 슬퍼하고 가슴 아파함, 슬피 울부짖음. 또는 슬프게 한탄함.
살아가다 보면 때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애통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낼 때, 정말 원하던 어떤 무엇을 놓쳤을 때,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소중한 이의 투병생활을 지켜볼 때,
그 무엇보다 빛나던 연인과의 관계가 빛을 잃어 아무것도 없는 무로 돌아갈 때..
사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다.
컨트롤할 수도 없으며, 원하는 대로 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진실로 원하고 모든 마음을 다 쏟아부어도,
원하지 않는 결과 값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이 온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무기력감,
내 손으로 바꿀 수 없는 무엇들, 그렇기에 우리는 슬픔을 넘어 애통함을 느끼지 않을까.
나는 애통함이나 슬픔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살아왔다.
하루하루 바쁘고 지치고 치열하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 나를 구겨 넣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한 번은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너는 내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사람 같다고
너무 차갑고 냉정하다고, 정이 없다고, 감정을 못 느끼는 사람 같다고”
자기 뱃속에서 나아 길러준 나의 부모님의 입에서 나에 대한 평가는 그랬다.
뭐 사실이 그랬다. 나는 감정을 잘 표현을 하지 못했다.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다. 기쁨도 표현을 못했고,
좋아함도 표현을 못했다. 늘 때론 모자라게, 아니면 지나치고 무응답으로 대신했다.
그렇다 보니 슬픔도 표현을 하지 못했다.
남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애통함을 표현할 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게 그렇게 슬픈가.. 왜 슬퍼할까..’
말로는 위로를 건네며 속으로는 공감하지 못했다.
가족에게도, 연인에게도, 친구에게도, 직장에서도 그랬다.
눈물을 흘려야 하는 순간에 나는 울지 못했다.
함께 애통해해야 할 때에도 끝내 공감을 하지 못했다.
애통함, 슬픔과 우울감은 좀 다른 것 같다.
우울감은 애통하고 슬플 그런 기운조차 없다.
그냥 우울감에 취해 다른 감정을 느끼기가 힘들다.
희, 노, 애, 락 이 들어올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난 어느 순간 감정이라는 것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보통의 일상을 보내고 자기 전 샤워를 했다.
얼굴에 뜨거운 물을 맞고 있었다.
뜨거운 물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얼굴을 적셨다. 눈을 만지니 뜨거웠다.
거울을 보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흐른 눈물은 어느새 울부짖음이 되었고 나는 거의 한 시간가량 울고 또 울었다.
무엇이 기폭제가 되었을까. 그날부터 나는 혼자서 가끔 울부짖고 있다.
한참을 울고 나면 개운하달까.. 그냥 무언가 응어리진 것들이 풀리는 느낌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가끔 샤워를 할 때 혼자 울곤 한다.
가끔은 슬픔과 애통함을 풀어주는 것도 괜찮은 걸까 생각해 본다.
그런 방법은 어떨까? 억지로 슬픈 영화를 본다.
이를테면 온갖 클리셰로 범벅이 되어
‘자 지금부터 진짜 슬픈 거 나오거든요? 무조건 눈물 흘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울어보세요. 울려 드릴게’
하는 그런 영화를 본다. 그냥 그런 순간 한번 울어본다.
'그래 울어 드릴게 하고.'
애통함도 참지 말자라는 생각을 해본다.
애통함도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자.
내 감정을 소중이 해보자.
애통함은 아프지만, 그 고통을 겪고 나면 더 깊고 성숙한 인간적인 통찰을 얻게 되며, 그것이 우리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줄 수 거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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