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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z eon Jun 19. 2021

비둘기, 너는 죽었다 (1)

‘꾸륵 꾸륵 꾸륵..’


제길.. 끝도 없구나...


지금.. 몇 시지.. 지금은 새벽 2시 28분.

며칠 째지 오늘이..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비둘기 울음 소리.


일기예보에서 내일 많은 양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다. 비둘기.. 너는 오늘 죽었다.


고시원에 들어와 산지 1년이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이 비좁고 답답한 1평짜리 공간에서 나름 잘 적응했구나.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을 무렵, 그 일이 터졌다.


내가 살고 있는 고시원 방은 학교를 바라보고 외창이 나있었다. 특이하게 외창과 내창 사이에는 손바닥 한 뼘 정도의 공간이 존재했고 여름이면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답답함에 내창에 미세먼지 차단 필터막을 설치했다. 그리고 대부분 창을 열어 놓고 생활했다. 시끄러워 잠을 제대로 자 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답답한 것보다는 나았다.


건물 밖 난간에 자리 잡고 있는 비둘기들은 비가 오면 종종 이 외창과 내창 사이로 들어와 비를 피했다. 난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고 비가 그치거나 아주 자그마한 인기척이 들려도 곧장 그 공간을 벗어나길래 비를 홀딱 맞은 모습에 마음이 악해져 그들을 적극적으로내쫓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방에서 참기 힘든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고 필터막을 걷고 창문 내부를 살폈다.. 온몸에 먼지를 덮은 비둘기 한 마리가 언제 어디서 물어온 지 감조차 오지 않는 나뭇가지들 위에 잔뜩 긴장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 암흑기에 클라이막스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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