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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면 Dec 16. 2024

그 걸음을 멈추지 마오.

쓸모없는 초능력 일기 08.

쓸없능. 쓸모없는 초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사는 사회에서 찬의 능력은 굉장히 쓸모 있는 편이었다. 어딜 가도 감각으로 방향을 알 수 있다. 설령 안내 표지판이 망가져 다른 방향을 가리켜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정확한 방향을 안내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경복궁으로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면 감각으로 느껴지는 정도였다. 곧장 이 길로 가면 되는구나, 하고.

그탓에 서빈과 여행을 할 때 찬은 지도 담당이었다.

대만 가오슝의 어느 한 복판을 걷고 있을 때도 서빈은 대뜸 바다냄새가 맡고 싶단 말이지, 하고 중얼거렸고, 찬의 감각은 그 중얼거림을 입력해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어딘지는 모르나 어찌 되었건 바다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그 감각이 안내한 곳은 정말 뜬금없는 횟집이었지만.


그래도 있어서 편한 능력이긴 했다. 찬의 능력의 범주를 몇 번 가늠해 보던 서빈이 장난을 친답시고 자전거가 보고 싶어, 구름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줘, 아찔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라는 등의 쓸모없는 말을 덧붙이는 바람에 이곳저곳을 쏘다닌 것 외엔.


너 때문에 내가 능력 낭비를 하고 있잖아.

윤찬, 때문이 아니라 나 덕분에 알차게 쓰고 있는 거야, 멍청아.


조사는 맞게 붙여야지-하는 바람에 몇 번이나 투닥거렸던가.


덕분에 다른 사람 안 가는 길로, 재밌게 잘 다녀왔잖아?


서빈이 뻔뻔하게 중얼거렸다. 맥도널드 햄버거를 입 안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그러곤 손가락으로 창 밖을 가리켰다.


저기 부러진 안내판보다 네가 낫다.

쟤도 그래도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데.

저 지하철을 타려면 하늘로 가야 하는 거지. 네가 안내할 수 있지?

미친놈. 죽으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죽여줄까?


그렇게 헤드락을 걸고, 감자튀김도 던졌다가 다시 찬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 와서 웬 한숨이야, 하는 핀잔이 날아들었다. 그냥. 찬이 말했다. 


그냥, 길 안내 말고 내 인생을 먼저 안내해 주는 능력이었으면 더 편했을까 싶어서.


어디로 걸어가면 정답인지, 어디로 가면 고생을 덜하는지 그런 거 말이야, 하고 진지하게 덧붙이는 말에 서빈이 답했다.


"잘 걷고 있잖아, 멍청아."


그러니까 그런 능력은 필요 없지.

감자튀김이나 먹어, 하는 손이 찬의 입가에 닿았다. 짠 감자튀김이 뭉텅이로 찬의 입에 몰려들었다.



<끝.>


photo. 김라면

write. 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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