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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면 Dec 09. 2024

이마저도 괜찮다면.

쓸모없는 초능력 일기 07.

쓸없능. 모두가 쓸모없는 초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서후는 가장 쓸모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초능력을 줄 세운다면 1위를 할 자신도 있다고 말했더니, 형인 서빈은 ‘의외로 아닐지도?’라는 미적지근한 대답을 내놓았지만.


서빈은 친구들의 ‘정말 쓸모없는’ 초능력을 온갖 곳에 이용하고 있었다. 달팽이 구분하는 능력은 자신의 반려달팽이를 산책시키는 일에, 마우스 클릭 빨리 하는 능력은 티켓팅에 부려먹고 있으니. 서후는 어쩌면 자신의 능력도 서빈이 써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제발 어떤 형태로든 이용해서 조그만 쓸모라도 발견할 수 있게 해 주길.


그렇지만 서빈은 서후에게 부탁을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의외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만 할 뿐 어떤 해결책도 제안도 제시해주지 않았다.


춥다.

손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서후는 정거장 옆에 놓인 쓰레기통으로 시선을 보냈다. 몸 안에 있던 따뜻한 공기가 손과 맞닿으며 손을 데웠지만 아주 잠시. 바람 한 번에 온기가 후룩- 날아가버렸다.

쓰레기를 따뜻하게 만드는 능력.

서후의 능력이었다. 이 겨울날에 쓰레기를 데워 손에 잡고 있을 것이 아니라면 쓸모없는 능력이었다. 불태울 수도 없다. 만졌을 때 뜨겁지 않은 온도까지만 높일 수 있고 그저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따뜻한 쓰레기.


버스가 정거장에 멈춰 서고, 차가운 바람이 몰아쳤을 때 맞은편 건물 벽면에 숨어있는 생명체가 눈에 들어왔다. 젖소무늬를 한 아직 작은 고양이. 나무판자 위에 잔뜩 몸을 구긴 채 앉아있는 그 고양이를 보다가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을 다시 보고, 시선을 내려 고양이를 다시 바라보고선 서후는 건너편으로 발을 내디뎠다.


형은 도착하면 전화하겠지.


서후가 골목 앞에 도착하자 고양이는 건물 끝까지 도망쳐 몸을 숨겼다. 주변에 쓸모 있는 것은 없었다. 전부 엉망으로 버려진 상자이거나, 밀대, 쓰레받기, 플라스틱, 캔 같은 이 골목 같은 것들. 서후는 밀대를 주워 벽면에 기대어 세우고 손을 가져다 댔다. 온기가 느껴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일어섰다. 다시 버스 정거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데-


"너 어디 있었어?"


서빈이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서빈의 어깨너머를 살폈다. 고양이의 그림자가 일렁인 것 같기도 하고. 밀대 위에 잘 앉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쓸모 좀 찾으려고."


쓸모를 찾은 것 같기도 하고.

서후는 손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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