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초능력 일기 06.
큰 일교차에 짙은 안개가 골목을 덮은 새벽 네 시. 주차된 검은색 차 한 대에 해미와 서빈이 앉아 있었다.
미친놈아.
해미가 가차 없이 말했다. 서빈이 타격 없이 빙그르르 웃고서 해줄 거지? 하고 대답했다.
안 해주면 또 내 피규어 부술 거라고 협박할 거잖아. 해미가 한숨을 내쉬며 창문을 내렸다. 으아-추워, 하고 푸념을 하며 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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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빈과의 악연은 5년 전 놀이공원에서 시작되었다. 해미는 인형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한 손 가득 풍선을 들고, 걸어 다니며 손을 흔드는 인형탈. 그날 아침은 어느 때보다 안개가 자욱해서 걸어 다니기도 힘들었다. 안 그래도 좁은 시야가 더 좁아지는 느낌이라 잠시 쉬려는 참이었다. 손에 쥔 풍선은 벤치 난간에 묶어두고 인형탈을 벗는데.
억-! 깜짝이야.
옆에 누가 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걸 보면 아르바이트생인데. 벤치에 누가 앉아있는 줄도 모를 만큼 좁게 보고 있었다니. 해미는 짧게 사과를 건네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상황에 누가 풍선을 받으러 올 수나 있겠어? 혼자 중얼거리며 습관적으로 손을 뻗었다. 몇 번 손을 내젓자 주변의 안개가 뭉근해지더니 손에 실처럼 감겼다. 해미 주변의 안개가 옅어졌다. 옆에 앉은 사람은 해미의 손을 한참을 보고 있다가 오-? 하는 짧은 감탄을 내뱉을 뿐이었다. 해미는 한참을 손을 내젓다가 양손에 적당한 크기의 솜뭉치 두 개가 만들어졌을 때, 자신을 구경하던 이에게 한 팔을 내밀었다.
“드실래요?”
아, 이상한 건 아니고…. 해미는 팔을 구부려 오른손에 감긴 솜뭉치를 입으로 물었다. 솜뭉치는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해미가 베어문 부분은, 작은 알갱이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솜사탕이에요.”
쓸없능. 모든 사람이 쓸모없는 초능력 하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 해미의 초능력은 안개를 솜사탕으로 만드는 능력이었다. 해봐야 손이 닿는 거리의 안개를 바꾸는 게 전부지만, 시야가 답답할 때는 꽤 쓸만한 능력이었다. 해가 뜨면 안개는 사라지니, 자주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 솜사탕 먹고 싶으니까 빨리 만들어줘.”
아르바이트생은 그날 이후로 안개가 짙은 날이면 해미를 불러댔다. 그렇게 5년째. 네, 네이-. 다른 사람 능력을 잘 써먹는 녀석 앞에서 능력을 보여준 게 잘못이었다. 해미는 시키는 대로 짙은 안개를 붙잡았다.
<끝.>
photo. 김라면
write. 김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