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꽃 피울 그날을 기대하며

by 키안다리


태국의 동북부는 몇 달간 지속된 우기가 끝나면 건기로 들어간다.
건기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사라진다.
바람은 건조해지고, 온도도 내려가 조금 시원해진다.


몇 달간의 우기는 나에게 있어 버텨내는 시간이다.
나는 원래 비 오는 날씨보다 화창한 날씨를 좋아한다.
게다가 우기에는 습도가 너무 높아서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생긴다.
가구, 싱크대 주변, 화장실 등 집안 곳곳에 생긴 곰팡이를 닦고 관리하며
언제 건기가 오려나 기다린다.


드디어 10월 말쯤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 시원함이 가미되며
건기가 왔음을 알려준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긴 우기가 끝나고 건기에 들어가면서 기분 전환 차원으로 꽃 화분을 하나 샀다.
건기에 특히 잘 자라는 핑크 국화를 사서 집 앞에 두었다.
화사한 색의 꽃이 가득한 화분이 새로 들어오니
오갈 때마다 눈을 즐겁게 해 준다.


건기를 기다리면서도 기다리고 싶지 않은 이유가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건기가 오면 한 해가 끝나 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 한 살을 먹는다는 것이 싫어
건기가 늦게 왔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어김없이 건기가 오고 날씨가 시원해지자
한 해가 마무리되고 새해가 된다.


건기에 접어들면서 사 두었던 핑크색 국화들은 서서히 색을 잃어간다.
이제는 온통 시든 꽃으로 가득하다.
꽃이 다 시들고 나니 보기가 안 좋아
화분을 저쪽 구석으로 옮길까 생각하다가
깜빡 잊기를 여러 번.
여전히 문 앞,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놓여 있다.


그런데 어느 아침,
시든 꽃들 사이로 예쁜 분홍꽃이 새로 고개를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시든 꽃들 아래로
새 꽃을 품은 봉오리들이 가득하다.
이제 시들어 누렇게 변한 꽃들이 다 떨어지고 나면
새로운 분홍색 꽃들이 만발하려나 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꽃은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다.


꽃을 보며 고아원에서 만난 한 아이가 떠올랐다.
오래전에 어머니를 잃고,
얼마 전에는 아버지마저 잃은 그 아이가 바라보는 이 세상은 어떨까?
다 시든 꽃 화분을 바라보던 내 시선처럼,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그 아이에게 책을 선물했다.
내가 청소년기에 많이 읽었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였다.
마침 이 책이 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이 책을 줄 누군가를 떠올렸는데,
바로 고아원에서 만난 그 아이였다.
아이는 책을 받으며 어리둥절해했다.
생일도, 특별한 날도 아닌데
선물을 내미는 내가 이상했나 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야.
너에게 주고 싶었어.”


책을 건네며 조용히 소망해 본다.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에,
다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아직 예쁜 꽃을 피워 낼 봉우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음을.

그 봉우리들이 피워 낼 미래를 바라보며
달콤한 꿈을 꾸며 잠들 수 있기를.


다 끝났다고 이제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절망한 적이 있다면,
이 꽃을 떠올려 보세요.
시든 꽃들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예쁜 핑크색 꽃처럼,
당신에게도 다시 꽃 피울 날이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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