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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을 가꾸는 건축가 Dec 10. 2021

평평한 슬래브로 갇힌 공간

아파트 주단면도 도면

단위세대 주단면도

상기도면은 아파트의 단면도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주단면도’의 일부이다. 아파트 도면을 그리면서 이 ‘주단면도’만큼 아파트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도면도 없다. 특히 이 도면은 상하부를 생략해서 그려진다. 이것은 위아래가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동일한 단면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상하부가 동일한 상태이므로 몇 세대의 아파트단지이건 상관없이 동일한 단면을 가지기 때문에 이 표준단면 이외에 더 이상의 구체적인 단면이 필요하지 않다. 그만큼 대표성을 가지면서도 단순, 단일하다.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아파트라는 상품이 광범위하여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통상 사람들은 아파트를 ‘닭장 아파트’라고 부르며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1년 현재 좋은 자리에 아파트를 가진 사람만이 부의 축적에서 승리를 했고, 나머지 변두리의 아파트나 빌라 등의 다른 부동산을 가진 사람은 속칭 ‘루저’가 돼 버렸다. 그 가격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이제 따라갈 수 조차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비난해도 이 시대에 성공한 자는 좋은 자리에 있는 아파트를 가진자이다. 술자리에서도 회사에서도 그자가 승리한 자로 속으로 배 아파하면서도 겉으로는 부러워하고 궁금해한다.     

아파트 전경

주단면도는 이 비난받지만 부러운 ‘닭장’을 너무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단면도는 그리기도 매우 쉽다. 1개 층만 그리면, 전체층이 모두 동일하다. 10층이던 50층이던 그냥 복사해서 붙여넣기만 하면 주단면도라는 도면이 완성되는 아주 단순한 도면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단면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째 이 단면도를 보고 있으면, 위와 아래세대와 전혀 소통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210mm의 콘크리트 슬래브에 막혀서 적대적으로, 절대적으로 상하부와 소통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윗집이나 아랫집을 갈 수 없다. 가려면 철재로 만든 방화기능을 가진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실 문을 열고, 위층에 가서 다시 위층 현관문을 누군가 열어주어야 갈 수 있다. 사실 층간소음에 항의하러 가지 않는 이상 윗집에 갈일은 거의 없다. 누가 살던지 관계없고 알 필요도 없다.     


둘째, 단면도의 바닥부터 살펴보자. 바닥슬래브는 210mm이다. 왜 200mm도 아니고, 220mm도 아닌 210mm가 되었는지는 층간소음과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층간소음에 관한 문제가 상당히 많다. 그 이유로 아파트의 구조가 벽식 구조이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근본적인 원인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파트를 건설하는데, 벽식구조만큼 경제적이고, 편리한 방식은 없기 때문에, - 그것보다 좋은 방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 찾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 벽식구조를 유지한 채로 바닥의 구조를 고민해서 층간소음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바닥슬래브는 210mm이다.     

표준바닥구조

  

우리나라에서 층간소음의 사회적 스트레스는 상당히 오래되었으나, 2014년이 되어서야 법규가 만들어지고, 바닥구조의 기준은 2015년에 만들어졌다. 이 법규는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과 ‘소음방지를 위한 층간 바닥충격음 차단구조기준’이다. 이 기준에 의해서 210mm슬래브 위에는 20mm의 완충재를 넣고, 40mm의 경량기포콘크리트, 40mm의 마감모르타르가 들어가고 그 위에 바닥마감재(장판, 마루 등)가 설치된다. 기둥보 방식의 구조이면 바닥슬래브는 150mm를 해도 되는데, 소음을 방지하고자 슬래브를 60mm를 증가시키고, 그 위에 20mm의 기능을 가진 스티로폼을 넣어서 소음을 추가로 방지하는 구조이다. 그 위의 시공하는 경량기포와 마감모르타르는 바닥 난방을 위한 구조이기 때문에 소음방지와는 무관하다.   

  

셋째, 바닥을 지나서 올라오면 이제 우리가 쓰는 공간이다. 바닥부터 천정까지는 2300mm이다. 이 높이의 역사는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부터 이러하였다. 아파트 확장의 역사적 시점으로 보는 아파트 한강맨션, 반포주공1, 여의도시범인데, 이중 가장 먼저 건설되었던 1971년에 준공한 한강맨션도 천정고가 2300mm이었다. 이렇게 정해진 천정고는 50년 동안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으니, 매우 우직한 치수이다. 조금은 변할만도 한데, 아마 추측하건데 우리나라에 현재도 건축되고 있는 아파트의 90%이상은 천정고가 2300mm일 것이다. 1970년과 2021년 한국인의 평균키가 꽤나 커졌을텐데 그대로인 것을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1971년 한강맨션 주단면도 도면

   

넷째, 그 다음은 층고이다. 바닥슬래브 바닥면부터 상층부의 슬래브 상단면까지를 통상 ‘층고’라고 부르는데, 이 층고는 2800mm이다. 이 층고도 역사가 길다. 앞서 언급한 한강맨션의 층고는 2700mm이다. 그때에 비해서 달라진 것은 슬래브 두께가 두꺼워지고, 천정 속에 소방 및 환기설비가 설치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아니 대부분의 아파트의 층고는 2800mm이다. 이것은 천정고 2300mm과 연관된 치수이다. 층고 2800mm에서 천정고 2300mm을 빼면 500mm가 남고, 여기서 바닥슬래브 210mm와 완충재, 경량기포, 모르타르, 바닥재 120mm를 빼면, 170mm가 남는다. 170mm안에서 천정재를 설치하고, 스프링클러 및 환기덕트를 설치하고, 전등을 설치한다. 10층 아파트도 50층 아파트도 모두 2800mm의 층고로 설계하고 건축되고 있다. 당연히 천정속 공간도 동일하다.  

    

2800 = 슬래브 210 + 완충재, 경량기포, 모르타르, 바닥재 120mm + 천정고 2300 + 천정속공간 170 (단위mm)     


다섯째, 위아래가 막혀 있는 것과 같이 앞뒤도 막혀있고, 일부 벽면에 창문이 있다. 양쪽으로 창문이 있으나, 창문을 열면 나갈 수 없다. 낭떠러지다. 콘크리트 벽면에 창문이 있을 경우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1,200mm높이의 난간이 있고 그 위에 창문이 있거나, 바닥부터 창문이 있는 곳은 외부에 가로 100mm간격으로 철재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앞뒤로 열려있지만, 그냥 앞에 있는 아파트의 뒤통수만 볼 뿐이다. 2005년 발코니확장 합법화 이후 아파트는 더욱 폐쇄적으로 변했다. 위아래뿐만 아니라 앞뒤도 완충공간없이 실내외가 바로 만난다. 단면도의 좌우측에 수직으로 생긴 2줄의 점선은 발코니 확장전의 가상벽체의 라인이다. 발코니 존재의 흔적만이 남겨져 있는 것이다.     

아파트 배면 사진(하남 미사지구의 어느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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