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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을 가꾸는 건축가 Jul 15. 2021

나의 집을 그리다.

2020.6, 나의 집을 짓는 다는 것은

아무개의 집을 설계하고 시공과정을 감독하는 일을 줄곧 해왔지만, 정작 나는 내 건물을 신축하거나 심지어 주택을 관리해 본 경험조차 없었다. 단지,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만든 단독주택에 살았던 경험이 있고, 그런 부모님을 보며 건축사의 꿈을 꿔, 현재 건축사로 살게 되었다. 하지만, 나도 결국 중인지라, 내 머리 깎기는 커녕 만지지도 못하고 지금껏 남이 차린 밥상의 편리함 속에 취해 살아왔다. 그러다 한 3년째 아내와 함께 부부 건축가로 일을 하면서 직주 분리의 불편함과 출퇴근 시간의 무쓸모를 고민하던 차, 직주일치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아무개가 아닌 내가 쓸 공간을 계획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건축설계라 함은 클라이언트와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제반사항과 조건 등을 공유하여 이를 통해 건축사가 집의 컨셉을 만들고 대안을 제시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정해진 미팅과 시간 속에서 함께 건축물을 만들어 가는 일이며, 몇 번의 피드백을 통해 이견을 좁히고 수렴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건축주가 곧 설계자이다보니, 나와 이야기하고 나에게 보고하고 내가 판단해야 하는 원맨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원맨쇼 속에서 고민이 되는 첫 번째는 내가 나를 탐구해 집의 컨셉을 정하는 것이다. 건축사로 설계를 의뢰받으면 대화를 통해 의뢰인을 파악하게 되고 라이프스타일을 읽어내 설계를 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학창시절부터 타인은 탐구하는 일을 반복했을 뿐, 한 번도 나를 들여다 본 적은 없었다는 것과 내가 나를 상당히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우리 사무실 컨셉을 잡는 것이 어려웠다. 두 번째는 지나치게 꼼꼼한 내 성격과 자금현실에서 왔는데, 결국 내 주머니에서 이뤄지는 일이기에 자재를 결정할 때마다 전체 공사비를 반복적으로 리뷰 하는 결정장애를 만들었다. 세 번째는 눈높이와 현실의 문제였다. 눈높이와 완성도에 대한 욕심은 높지만, 실력과 경험의 한계와 예산문제는 간극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심도 있는 대화를 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었고, 정해진 예산 안에서 설계대로 준공하고자 층별 단계별 시공을 선택하였다. 살림집과 사무실은 봄-가을로 나눠 공사하기로 했고, 시공은 분야별 각각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공사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일단 사무실 한 층을 완성하였다. 나머지 살림집 부분은 가을까지 남은 숙제가 되었다. 때때로 좌절하고 때때로 보람을 느낀 이 일을 통해 클라이언트 입장을 배웠다. 아무리 의뢰인에게 최선을 다해 설계를 한다 해도, 직업인 건축사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클라이언트를 이해하게 된 것이 앞으로 우리에게 득이 될 수도,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앞으로 우리가 이 집을 만들어가고 관리해 나가는 건축주로서의 삶은 건축사로서 설계를 해 나가는 중에 분명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건축사가 될 수 있게 할 것이라 믿는다. 모든 건축사가 건축주가 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한 번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건축사, 마음을 읽어주는 건축사는 필요하다 생각한다.

*대한건축사신문 328호, 2020.6 발언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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