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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을 가꾸는 건축가 Jun 20. 2021

관교택지, 마당 있는 다가구주택

마당 있는 주택     

이 주택은 인천 남구 관교동에 위치한 D가 살았던 집이다. 이 집은 인천 미추홀 구(옛 지명 남구) 관교동에 위치하고 있다. 관교동(官校洞)의 지명은 인접한 문학동에 위치한 인천도호부 관아와 인천향교에서 유래되었다. 관교동은 1992년에 관교 택지개발지구로 아파트와 단독주택부지가 개발된 곳으로 이곳에서 중고등학교 시설을 보냈다고 한다. 관교 택지개발지구는 1991년에 준공되었고, 그의 집은 택지조성이 완료된 바로 다음 해인 1992년에 이곳에 이사를 왔으니, 그 당시는 주변이 공사장이거나, 빈 대지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사하고 초기에는 가로등도 없고, 길도 포장이 잘 되어 있지 않아 매우 불편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던 비어있는 택지개발지구에서 점점 도시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과정이 도시와 건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주변에 비어있던 대지에 집이 하나둘씩 지어지고, 공사현장을 지나다니며 자연스럽게 보았다. 다 지어진 건물에 하나둘씩 가게가 생기고, 사람들이 들어가 살면서 점점 동네가 완성되어가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버스도 다니지 않다가, 거의 폐차 수준의 마을버스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점점 교통도 좋아졌다.     


집을 짓다              

이 집은 그의 부모님께서 직접 땅을 구입하시고, 집을 지으셨다고 한다. 그의 가족 모두 집 평면을 같이 고민했던 기억이 있어, 처음으로 건축계획에 참여했던 집이기도 하다. 건축사는 있었지만 허가 수준의 작업을 하였고, 먼 친척 중에 시공사를 운영하시는 분이 있어 그분이 설계와 시공을 같이 담당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설 당시 집 짓는 과정이 녹녹지 않았고, 그의 부모님은 공사 중에 자주 현장을 방문하여 공사 과정을 직접 챙기시곤 했다.

택지개발지구의 단독주택부지 한가운데 위치한 집으로 주택들로 둘러싸여 있어 매우 조용한 주택지였고, 남쪽으로는 상당히 넓은 마당도 있어 계절마다 피는 꽃들로 다채로운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외관은 붉은 벽돌집으로 벽은 내력벽인 조적조, 슬래브는 콘크리트조로 연와조 건물이다. 벽은 외부의 붉은 벽돌 한 장과 중간에 단열재, 그리고 안쪽에는 시멘트 벽돌 한 장이 쌓여 있는 형태이다. 지금도 이런 방식을 중단열, 중간 단열구조라고 부른다. 외부의 붉은 벽돌은 구조적으로 하중을 받는 벽돌이면서 외관의 모습을 형성하는 치장 재이 기도 했다.

이 집은 2층 집으로 1층에서 D의 가족들이 살았다. 남측에 보이는 큰 대문을 통해서 집으로 들어오면 마당이 있고, 몇 단의 계단을 올라가서 현관이 있다. 1층과 마당을 그의 가족들이 사용했다. 대문은 작은 문과 큰 문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작은 문은 일상적인 출입문이었고, 큰 문은 2짝으로 만들어진 대문이었는데, 이 문을 열고 차를 주차하려고 만들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큰 문안 쪽에는 일정 공간 시멘트 바닥이 만들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도 대문을 열고 안쪽에 주차를 한적은 없었다고 한다. 원래 주차공간으로 쓰이고자 했던 시멘트 바닥은 식재료를 말리거나, 평상을 놓고 여름에 썼다. 대문으로 들어와서 마당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이 있었다.

2층은 2가구가 있었는데, 뒤쪽의 작은 문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2층 외부 복도를 통해서 2가구가 출입할 수 있었다. 옥상에는 물탱크를 넣기 위한 구조물이 있었고, 그 안에 물탱크가 있었다. 수압이 약하고 단수가 빈번하던 시설 물탱크는 필수적인 시설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안테나가 설치되었다. 옥상은 2층 안쪽에 위치한 집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어서 옥상에 올라가 보았던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거실과 안방, 작은방 2개, 그리고 부엌. 화장실 2개로 구성된 아주 전형적인 가정집의 평면이다. 현관의 위치가 조금 상이한 것 빼고는 당시의 2-BAY아파트 평면과 거의 유사하다. 현관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거실이 있다. 거실은 남쪽으로 커다란 창이 있어 햇살을 가득 받는 곳이었고, 특히 앞쪽에 마당이 있어 하루 종일 햇살이 잘 들어오는 공간이었다. 또한 거실과 주방이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어 집의 면적에 비해서 상당히 넓어 보였다. 방은 3개로 안방과 작은방 2개로 구성되었다. 현관으로 들어와서 오른쪽에 바로 안방이 있었다. 안방에는 침대와 장롱이 있는 부모님의 공간이다. 안방에는 특별히 베이 윈도가 있었다. 이 창문의 형태는 창문이 벽면보다 돌출되어 있어 방에서 1개의 창을 열면 약 30cm 정도 깊이의 공간이 있고, 또 1개의 창을 열면 외부이다. 그곳에 보통 화분을 놓고 길렀다고 한다. 현재는 이런 형태의 창을 만들지 않지만, 이 당시까지만 해도 돌출된 모양의 창을 만드는 것이 통상적인 일이었다. 안방에는 세면대와 변기가 있는 부부욕실이 있었다. 특이한 것은 부부욕실과 공용욕실 사이의 벽이 완전하게 막혀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키높이 정도까지만 벽을 쌓았고, 위쪽을 뚫려있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의 부모님이 설계를 할 때 공용욕실의 환기를 위해서 2개의 욕실을 연결했다고 한다. 작은방 하나는 거실에서 바로 연결되어 있어 물건들은 수납하는 창고처럼 쓰였고, 주방에 연결된 방은 D의 공부방으로 썼다고 한다. 주방 뒤편으로 발코니를 두어 주방의 창고 및 장독을 두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당시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서 발코니에 보일러와 큰 기름탱크가 있었고 이후 도시가스가 동네 전체에 설치되면서 발코니의 커다란 기름탱크는 사라졌다. 안방 아래쪽으로 지하실도 있었다. 마당 안쪽으로 가면 집과 담장 사이에 좁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D의 기억 속에 지하실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으로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꿈을 키운 집     

D에게 있어서 이 집은 미래의 꿈을 키우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그의 가족이 이곳에 이사 왔을 때는 주변에 그의 집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택지개발지구가 개발되고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도시와 건축의 변화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지금 D가 건축일을 하는데 바탕이 되었다. 이것과 더불어 마당이 있는 집으로 나무와 자연에 관심이 많았다. D의 부모님께서는 주택부지에 마당이 없이 집으로 채울 수도 있었는데, 집은 북쪽에 붙여서 한쪽에만 짓고, 남쪽에 대지의 절반만큼 마당을 만들어서 1년 내내 자연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마당에는 꽃사과나무, 사과나무, 감나무, 모과나무, 단풍나무, 앵두나무 등이 있었다. 특히 봄에는 현관 앞에  꽃사과 나무가 있어 흰꽃이 하얗게 만개하였고, 시큼한 사과꽃 향기가 가득했다. 마당 끝에는 앵두나무가 있어 앵두 열매를 심심치 않게 따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 살면서 조경가의 꿈을 키웠던 곳이기도 하다. 그전까지는 나무이름을 하나도 몰랐는데, 이곳에 살면서 집에 심긴 나무 이름도 공부하게 되고, 나무를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를 공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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