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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Sep 06. 2021

귀한 대접을 받던 풍경

큰딸 아이랑 집에서 영화 <자산어보>를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흑백영화라 잠시 답답하기도 했지만 금세 그 아련한 묘미에 빠졌다. 목포, 나주, 영산포와 가까운 영암에 살았던 나로서는 배우들의 사투리 묘사가 보는 내내 흥미로 다가왔다. 더불어 가거댁(이정은 분)이 흑산도 생물 홍어를 손질해 정약전(설경구 분)에게 대접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한 입 먹고 싶어 침이 꼴깍 넘어갔다. 생물 홍어를 먹어본 기억이 없는데도 말이다. 창대(변요한  분)가 까칠한 듯 구수한 사투리를 장착하고 칼을 들고 가오리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어린 시절 길심씨가 샘가에 앉아 홍어 손질하던 아주 오래된 장면이 갑자기 살아나 겹쳐 보였다. 길심씨도 가거댁, 창대 못지않은 해산물 손질의 대가가 아니던가.    

    

길심씨는 잔칫날이면 삭힌 홍어를 꺼내 꿰차고 앉아 썰었다. 홍어는 내 고향 동네에서는 잔치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동네 당숙모들은 모여 앉아 음식을 만들었다. 이 날의 주인공은 당연히 홍어였다. 어떠한 공들인 다른 음식이 있어도 그것은 조연일 뿐이었다. 나는 마당의 덕석(멍석)위에 놓인 여러 개의 상마다 돌아가며 홍어, 삶은 돼지고기, 김치, 나물, 떡 등을 날랐다. 잔칫상에는 홍어무침도 아니고 홍어를 얇게 나박나박 썰어서 초장과 함께 내었다. 홍어가 빠지면 다른 음식을 아무리 잘 차려 내도 잘 먹었다는 소리는 절대 듣지 못했다. 막걸리 한 잔에 홍어를 초장에 푹 찍어 입에 넣은 어른들의 입에서는 홍어 맛에 대한 평가가 한 없이 오르내렸다. 상차림이 조금 소홀해도 홍어가 잘 삭혀져 맛있으면 그날의 잔칫상은 그 집 음식 잘 차렸다고, 잘 먹었다고 여러 날을 두고 동네에 말이 둥둥 떠돌아다녔다. 잘 삭힌 홍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암모니아 냄새처럼.     


25년 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나는 익산이 고향인 한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때도 길심씨는 잔치를 앞두고 목포에서 흑산도 홍어를 사다가 싸온 갈색 종이포대 그대로 항아리에 넣고 지푸라기를 넣어서 삭혔으리라. 내가 시골집에 없어서 보지는 못했지만 당연히 그랬으리라 짐작한다. 그 당시 남편도 나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지만 결혼식을 어디서 올릴 것 인가가 문제였다. 서울에서 치른다면 양가 모두 버스를 대절하여 상경해야 할 것인데 굳이 그럴 것 있겠느냐 한쪽이라도 경비를 절약하자는 차원에서 시댁이 있는 익산에서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다. 길심씨는 며칠 전부터 피로연에 차릴 음식을 준비하여 대절 버스에 싣고 결혼식장으로 왔다.     


지금이야 피로연 음식을 식당에서 맞춤으로 하지만 그때는 거의 대부분을 집에서 준비하여 차려냈다. 아니 특히 우리 고향에서는 그랬다. 나는 어머니가 준비해온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딱 한 가지만 생각난다. 서울에서 오신 직장 상사, 동료 분들의 입을 통해서 홍어가 진짜 맛있었다는 뒷이야기였다. 전라도가 고향이었던 분들은 더더욱 맛있었다고 하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큰딸 결혼식이라고 어머니는 흑산도 홍어를 사다가 삭혀 낸 것이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그 시절에 시골에서 먹었던 홍어는 모두가 목포에서 사 온 흑산도 홍어였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때는 홍어 맛을 잘 몰랐다. 나중에 서울에 살면서 알게 된 홍어삼합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그때도 홍어 맛을 알았다면 진짜 흑산도 홍어를 많이 먹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결혼식 날 어머니는 피로연에 낼 상차림 음식 외에도 시댁에 드릴 이바지 음식을 버스에 싣고 왔다. 그 이바지 음식은 커다란 흑산도 홍어 한 마리, 참외 한 상자, 떡 두 석작(대나무로 만든 뚜껑 있는 바구니) 등이었다고 한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 날 이바지 음식을 받은 시댁에서는 홍어를 손질할 사람도 없고 당일 피로연에서 잔치를 끝낸 셈이라 마을회관에 커다란 흑산도 홍어 한 마리를 통째로 덜썩 내놓았다고 들었다. 그러니 시댁 식구들은 귀한 홍어 한 점 맛도 보지 못한 셈이다. 나중에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길심씨의 정성이 헛된 것 같아 서운하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했다.     


내 고향 영암은 영산강 하굿둑을 막아 간척지가 생기기 전에는 낙지, 숭어, 짱뚱어, 맛조개, 대갱이 등 많은 해산물이 나왔다. 우리 동네는 바다와 거리가 있어 농사만 지었지만 먼 아랫마을에서는 해산물을 잡아 이른 아침부터 고무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이 집 저 집 맛조개, 돌게, 생선 등 팔러 다니는 아짐들이 많았다. 무슨 해산물이든 풍부하고 다 맛있던 시절이었다. 반면 익산은 어떤가? 나의 시댁은 행정구역상 익산시에 속하지만 예전에는 함열읍이었다. 함열읍은 비옥하고 광활한 농경지를 보유한 평야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니 해산물을 접해보지 못했던 터라 홍어가 이바지로 들어왔어도 시큰둥했을게 당연하다. 우리 고향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던 홍어가 시댁에서는 대접을 못 받았으니 지방마다의 특성이 있으니 어이 하겠나.    


아버지는 홍어도 좋아하지만 연세가 들어가면서 가오리(간재미) 회무침을 더 좋아한다. 영암 오일장에 간재미 1~2마리 사다가 길심씨가 뼈째 썰어 막걸리 식초로 맛을 냈다. 부엌 아궁이 부뚜막에 올려둔 큰 소주병에 들어 있는 식초를 넣어야만 제 맛이 난다고 길심씨는 말한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하고 구들장을 데울 때는 늘 부뚜막에 소주 큰 병이 자리하고 있었다. 집에서 만든 막걸리를 거르기 전의 술을 넣어 만든 식초병이었다. 따뜻한 부뚜막에 있어야 발효가 잘 되어 그리 했을 것이다. 그 병의 주둥이에는 솔잎 꽁지가 꽂아져 있었다. 솔잎을 꽂아 둔 이유는 공기가 통해야 식초가 익어간다고 한다. 부뚜막에서 익어간 자연의 막걸리 식초를 넣고 길심씨의 손맛으로 빠락빠락 주물러 만든 간자미 회무침이 어찌 맛이 없겠는가. 샘가 물이 흐르는 텃밭의 한 귀퉁이에 만든 미나리깡에서 뜯은 미나리가 간재미 회무침의 조연이 되기도 하고, 두툼하게 채 썰은 무가 또 다른 조연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인천의 연안부두 시장에 갔다가 어린 시절의 홍어가 생각나서 한 팩을 사 왔다. 남편이랑 막걸리 한 사발에 초장을 찍어 먹어봤지만 영암에서 먹던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버리기는 아깝고 다음에 한 번 더 먹자면 단단히 싸매서 냉동고 한쪽 구석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냉동고 문을 열 때마다 이상야릇한 냄새가 올라왔지만 몇 번을 그냥 문을 닫고는 했다. 어느 날은 작정하고 냉동실을 다 헤집었더니 구석에 꽁꽁 싸맨 홍어가 범인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귀신같이 꾸리꾸리 한 냄새로 본인의 존재를 알리는 홍어, 그리 좋아하지도 않던 홍어가 한 번씩 생각나는 것은 어렸을 적에 어른들에게서 귀한 대접을 받던 풍경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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