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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Apr 04. 2021

떡국은 이것으로 끓여야 맛있제에

 택배가 도착했다. 나의 길심씨가 보낸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시골에서 엄마의 영혼이 들어간 택배를 받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으다) 택배이다. 굽은 허리로 택배를 보내기 위해 며칠을 준비했을 것을 알기 때문에 영끌 택배라는 것이다. 매번 받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그토록 보내지 말라 했는데 왜? 황송할 따름이다. 어떤 말로도 부족하다.     


  택배상자를 들여 열어보니 오지가지 보물단지 같다. 봄동 배추, 숯불구이 김, 간하여 살짝 말린 조기, 떡국 떡, 닭장조림, 신건지(동치미), 냉이나물 무침, 수정과, 도라지 등등. 이것만 가지고도 설을 쇨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저녁에 조기를 튀기고 냉이나물과 신건지(동치미)를 썰어 밥상을 차렸다. 고향의 맛, 엄마의 맛이 식탁에 가득하다. 맛나게 먹으면서도 엄마의 종종걸음이 눈앞에 선하여 가슴이 아리다. 텃밭에서 배추를 캐고, 아궁이에서 김을 굽고, 담가놓은 신건지를 덜어 김치 통에 담고, 수정과도 만들고, 도라지도 캐다 씻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꼬박 며칠은 걸렸을 것이다. 그것도 두 딸에게 똑같이 보냈으니.    


  이번 택배는 특별하다. 코로나로 오지 말라는, 안 와도 괜찮다며 미리서부터 택배를 보냈는데 이 중에 특별한 것이 들어있다. 다른 때에는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구정이라서 특별히 보낸 것이다. 우리가 내려갔더라도 분명히 싸 주었을 테지만 받고 보니 이것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딸, 사위 손주들 새해 떡국 먹고 복 많이 받으라는 길심씨의 메시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닭장조림’이다. 전라도에서는 새해 아침 떡국을 끓일 때면 꼭 미리 만들어 놓은 닭장을 한 국자 푹 퍼서 금세 끓여낸다.    


  어렸을 때부터 닭장으로 끓여낸 떡국을 먹었던지라 소고기나 멸치육수를 내어 끓인 떡국은 간에 기별이 안 간다. 그래도 닭장을 내가 스스로 끓여 본적은 이제껏 서울 살면서 아마도 한두 번. 맛은 알고 할 수도 있지만 잘 하지 않게 된다. 아마도 엄마가 만든 닭장을 넘어 설 수도 없으려니와 시골의 촌닭을 구할 수 없어서다. 토종닭이라고 마트에서도 살 수는 있지만 내가 본 시골 닭하고는 다르다. 우리의 길심씨는 다른 건 다 아끼고 피가 나게 살림을 하지만 먹는 거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길심씨의 근원을 파보면 아마 나의 외갓집, 길심씨의 결혼전 집이 잘 살았기 때문이다.     


  올해 팔순인 길심씨의 친정은 아주 잘 살았다. 내가 어렸을 적 외갓집 부엌에는 돼지고기 한쪽 다리가 천장에 걸려 있었다. 외숙모는 거기서 돼지고기를 베어다 국을 끓였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길심씨는 고기보이다. 나의 아버지는 찢어지게 가난해서 못 먹고 자라서 위가 작아졌는지 암튼 소식을 하는 분이다. 외할아버지는 가난한 아버지 집안이 양반이라고 시집을 보냈다. 그놈의 양반 때문에 길심씨는 개고생을 했다. 신씨도 양반이더구만... 외할아버지는 왜 양반을 따졌을까.     


  고기 맛을 아는 엄마는 시골에서 먹기 힘든 낙지도, 장어도 잘 사다 먹는다. 닭고기도 놓아 키운 촌닭만 사다 먹는다. 그 덕에 우리는 시골에 가면 좋은 것만 실컷 먹고 온다. 이번에 보내 온 닭장은 커다란 꿀 병에 담겨져 왔다. 열어보니 커다란 닭다리가 들어 있다. 닭다리가 크고 살이 쫀쫀한 걸 보니 큰 토종닭으로 만든 것이 틀림없다.     


  설 연휴에 T.V프로그램 <수미네 반찬2>에서 닭장을 만들어 떡국을 끓이는 걸 보니 그 과정이 어렵지 않게 보인다. 시중에 파는 토막 난 닭을 사다 한다면 간단하겠지만 길심씨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시골 영암 5일장의 즉석에서 잡아 주는 살아있는 토종닭을 산다. 행여 5일장에 닭이 없으면 토종닭을 놓아기르는 집을 알아내어 찾아가기까지 한다. 고기나, 생선 음식 맛은 재료의 신선함이 절반이다. 아니 다 일수도 있다. 이렇듯 시골에서 나는 좋은 재료만으로 음식을 만드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엄마 음식의 기본은 뭐든 좋은 재료만을 고집하며 아끼지 않는 통 큰 맛과 시간을 들이는 정성이 합쳐져 저절로 손맛이 난다.  

    

 길심씨의 닭장은 <수미네 반찬2>에서 하는 닭장에 비하면 투박하다. 닭고기를 결대로 찢지도 않았고 뼈다귀도 들어 있다. 심지어 큰 닭다리가 그대로 들어있다. 사위를 위한 길심씨의 센스였을지도 모른다. 길심씨의 무한한 사위사랑을 알기에 떡국을 끓여 남편 그릇에 닭다리를 그대로 올려주었다. 닭다리 근육이 튼실하게 보인다. 길심씨표 닭장의 백미는 토종닭이기도 하지만 두 번째는 맛있는 집간장일 것이다. 직접 기른 콩으로 메주를 쑤어 만든 간장으로 닭고기를 조렸으니 그 맛이 어디 갈까. 닭장으로 만든 떡국은 여타의 떡국보다는 간간하게 먹어야 더 맛나다. 당연히 집 간장으로만 만들었으니 길심씨의 인생처럼 간간하니 깊은 맛을 낸다.


사진 찍는 거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이번 만큼은 안타깝다. 길심씨의 보물단지 상자를 그대로 사진으로 남겨두었어야 하는데 말이다. 거기다 닭장 떡국은 여러차례 끓여서 먹기만 했지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 길심씨의 사랑을 저장하고 기억하고 추억해야 하는데... 늘 자식이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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