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심씨네서(3일째)
폭염에도 안팎에는 꽃들이 난무하다. 길심씨의 집 마당가에는 나리꽃, 채송화, 제라늄, 호박 꽃, 참깨 꽃, 오이꽃 등이 제 나름의 지태를 뽐내고 있다. 안방에서도 꽃들의 전쟁, 화투로 길심씨의 돈 내놓으라는 큰소리와 아버지의 얼버무리는 웃음이 폴폴 날린다. 두 분이서 날마다 치는 화투 놀음인데도 처음인 듯 흥미진진하다. 그렇게도 재미있을까 싶지만 진짜 재미있게 꽃으로 싸운다.
"엄마 그렇게 재밌어?"
하고 물으니 화투패에서 눈도 떼지 않고
"치매에 좋다니 치제"
한다. 너무나도 재밌게 화투를 치면서 말로는 어쩔 수 없이 친다는 말투다. 딸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꽃그림에 빠졌다.
"자, 얼른 쳐! 뭐해? 치는 사람 어디 갔으까잉?"
"가만있어"
가만히 보니 길심씨가 화투를 칠 때에는 아버지에게 반말을 한다. 전에 없던 일이다. 깜짝 놀랐다. 아버지도 친구처럼 너냐, 나냐 반말을 한다. 내가 왜 화투 칠 때는 반말을 하냐고 물었더니 놀음판에서는 그러는 거란다.
나도 팔순 즈음엔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으로도 여유롭고 평생 살던 곳, 익숙한 곳에서 살며 자식들이 속 썩이지 않으니 이만한 삶이 있겠는가. 자식이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 그보다 더 큰 성공이 있을까. 부모님과 시골에서 함께 한지 며칠이 지났다. 나는 어릴 적에는 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일상을 엿보고 있다.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골살이 백미 중의 백미는 안과 밖에서 보는 꽃들의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