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전어회 먹자. 낮에 먹으려고 회는 떠왔는데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아,그리고 소라도 샀어!"
"그럼 저녁 먹고 갈까?"
전어회가 자취방으로 돌아가려는 아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것도 비릿한 바다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들의 발목을.
가을 하면 전어,전어하면 전어구이-라기보다는 전어회다. 가을이 살갗에 닿으면 벌써 군침을 흘린다. 끈적거렸던 여름을 툭 털어버릴 만큼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쌀랑이면 어느새텔레비전은 수족관 안에서 은빛 비늘을 떨구어가며 성미 급한 헤엄을 치는 전어를 보여준다. 입맛이 동한다.아는 맛은 참을 수가 없다.
며칠 전부터 전어회를 먹어야 한다고 벼르고 있었다. 마침 두 아들이 온다니 날을 잡았다. 새해 첫날 떡국을 먹듯 가을 첫머리쯤전어회 한 접시쯤은 비워줘야 한다는 생각은 언제부터인지 우리에게 자연스럽다.맛도 맛이지만 아마도 20대 젊은 날을 잊지 못하는 향수가 한몫하는 듯하다.
이제 거의 30여 년이 다 되어가는이십 대 중반, 근무지였던 그곳은 가을이면 전어배를 꾸리던 어부들이 살고 있는 포구마을이었다. 그래서가을 첫머리부터식당 근처에는 주차하기가 힘들 만큼 전어회를 찾아온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전어회가 그저 달갑지만은 않았다. 전어 시즌 내내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이면 전어회를 먹겠다고 찾아오는 지인들 때문에 몸살을 앓기 때문이었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계산을 하라고 하는 것은 조금 겸연쩍은 일이었기에 가벼워가는 주머니 사정을 읽느라 난처할 때도 있었다. 해수욕장과 녹차해수탕이 있어 여름 손님을 치르느라 반쯤 기쁘고 그 나머지 반은 하소연할만한 일들로 분주했던 직원들은, 가을이 시작되자 이젠 전어가 사람을 귀찮게 한다며 또다시 기쁨과 괴로움이 반반인 투정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인들의 방문을 내치지 않았던것으로 보아 아주 싫지만은 않았고, 전어회나 한 접시 하자고 먼저 청하는 직원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전어가 아주 몹쓸 생선은 아니었던듯하다.가진 자, 아니 줄 수 있는 자의 행복이 묻은 푸념쯤이었으리라.
직원들 대부분이 거의 고향인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인데 반해 타 지역에서 온 나는 고작해야 발령동기들이나 가을이면 전어회를 먹겠다고 달려와줄 정도이니 푸념하는 직원들과는 달리 그저 반가울 뿐인 가을이었다.
그리고 그 가을, 전어배가들어와 하역하는 작업을 보는 것도한 재미였다. 이차선 도로가 지나는 사무실 바로 앞이 바다였고,그곳 방파제에서 전어배는 닻을 내리고 작업을 했다. 살아있는 전어는 주욱 늘어선 활어차로 옮겨 바로 전국 이곳저곳으로 출발하느라 바빴고, 이미 죽어 횟감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들은 방파제 앞 공터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 작업이란 것은 전어의 내장을 빼내는 일이었다. 산처럼 쌓여있는 전어더미 앞에 인근 마을의 엄마들은 엉덩이에 깔개를 걸치고 앉아 도마 위에서 전어 내장을 꺼냈다. 동그마한 전어배를 칼질 한 번에 가르고 칼끝으로 내장을 쓱 발라 도마 한쪽에 모아두고, 또다시 전어 한 마리가 도마 위에 올라오고 뱃속의 내장이 발리고 하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손끝에서 오는 리듬감에 바닷냄새 생선비린내가 춤을 추었다. 전어 내장이 빨간 고무대야에 시나브로 쌓여갈 때 속 빠진 전어는 갯벌과도 같은 내장이 묻은 채 한쪽 구석에 던져졌다. 전어 내장은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소량으로 소금을 질러 숙성시키면 귀하디 귀한 전어속젓이 되었다. 돔베젓 또는 전어밤젓이라 불리던 전어속젓은 쌉싸름한 맛의 젓갈로 인기가 좋아 비싼 값에 팔렸다. (몇 년 후 결혼을 하고 비싸고 귀하다는 이름으로 시댁에 선물했지만 그리 환영받지 못했던 걸로 보아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기는 했다. 물론 나도 돔베젓 참맛을 알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오고 말았다.)
그렇게 속을 빼낸 전어는 천덕꾸러기처럼 던져져 쌓였다. 그제야전어는한 대야씩 먹고 싶은 대로 얻어다 먹을 수 있는 인심이 되었다.그때 얻어온 전어는 사무실 뒤쪽에 피워진 숯불 위에서 퇴근하려던 직원들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사나운 기운이 빠져나가고 얌전해진 불위에 올려진 전어는 굵은 소금을 먹고 누렇게 익어가며 참깨가 서말이라는 제몸안에 있던 기름을 태워 지글거렸다.때마침 바다에는 파닥이던 전어 비늘 같은 저무는 햇살이 떠다니고 있었고, 가을은 해저녁 바람을 일으켜 퇴근길직원들의 발목을 붙잡고 소주 한잔 기울이라고 어깨를 툭 쳤다.그곳에서 자취하던 몇몇은 코앞에 출렁이는 가을 바다에 전어냄새를 띄우고 소주잔을 부딪혔다. 갯내음 나는 청춘이었다.
사무실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위치한단골 식당이 있었다. 직접 담은 감식초로 만든 초장에 야채 듬뿍 , 뼈채 썬 전어를 빨갛게 버무려 고소한 참기름을 입히고 깨소금을 뿌려놓은 전어회, 뜨거운 밥 한 공기비벼먹는 그 한 끼에 가을이 익는 소리를 냈다. 거기다 청양고추를 넣어 슴슴하고 칼칼한 바지락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면 전어가 바닷물에서 파드닥거렸듯 내 몸이 전어가 되어 헤엄을 친다. 그리고 서비스로 노르스름하게 구워져 나란히 곱게 누워 시식을 기다리는 전어구이는 이미 냄새로 코를 간지럽히고 이내 입속에 들어가 고소함을 확인시킨다.
전어로 그나마 감사함을 전할 수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전어철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 사무실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괜히 울적해지는 그런 날이었다. 사무실 앞에 버스가 몇 대 멈췄다. 어떤 분이 사무실로 들어와 총무계장님을 찾았다. 별 관심 없이 바다를 등진 자리에서 일을 하다 왠지 모를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았다. 아, 아는 분이었다. 정확히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얼결에 인사를 했고 선생님도 놀라셨다. 인근 고등학교에 근무하시던 선생님은 버스로 아이들과 소풍을 가다 비를 만나 마땅히 앉아서 점심 먹을 곳을 찾던 중이었다. 다행히 계장님은 이층 회의실에 자리를 내드렸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그곳에서 점심을 드셨다.
아직 사회초년생이었던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아직 누군가를 대접한다는 것에도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걱정스러웠지만 가장 만만한 전어회를 나름 넉넉하게 주문해서 이층 회의실로 배달을 부탁했다. 주변 선배언니들이 이번달 과용한다며 내게 웃으며 농을 건넸다. 덩달아 웃어가며 우리 선생님이시니 특별히 맛있게 해달라고 단골로 다니던 식당에 부탁을 했다. 혹시 넉넉하다고 했으나 이는 내 기준이므로 내가 들인 정성에 비해 좋아하시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너 명의 친구들과 퇴임하신 선생님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그날 선생님의 어깨가 많이 올라갔다고 하셨다.약간 반골기질이 있어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기에상사의눈밖에 나는 일이 많았다고 말씀하시는선생님은 내 제자가 사는 것이니 맛나게 드시라고 큰소리 좀 치셨다고 한다. 전어회가 제몫을 톡톡히 했다.
점점 몸값이 올라가고 있는 전어도 한때는 생선취급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함께 근무했던, 그곳에서 나고 자라 사무실 담장너머가 바로 제집이던인 그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줘도 안 먹고 발에 차이는 게 전어였여"라고.
남편에게도 그런 모양이었다. 수문, 장둑, 아사리판, 숭어, 흰새우, 망둥어 낚시라는 그의 지난 일대기를 듣다 보면 전어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알고 보니 전어는 고기 취급을 안 하기 때문에 아예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이란다.
그런데 그 전어가 대접을 받았다. 신혼 초, 아직 자유롭게 주말부부로 지내던 어느 날, 남편은 시어머니와 큰 시누이를 모시고 내가 근무하는 남해안 바닷가에왔다. 그리고 구운 전어와 전어회 비빔밥을 바지락 국물 한 모금과 번갈아가며 깨끗하게 비웠다. 그 뒤로도 어머니와 큰 시누이는 몇 번 그때 이야기를 하셨다. 쳐다보지도 않던 전어가 그렇게 귀한 음식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남해안을 떠나 서해안에서 자리를 잡게 된 이후 내가 직접 전어회무침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아들이 전어회를 먹고 가겠다며 반나절을 기다린 저녁, 전어회를 무치기 위해 바쁜 저녁식사 준비에도 불구하고 참깨를 씻어 땀을 닦아가며 깨를 볶았다. 나는 참깨에 진심이다. 오이, 양파, 깻잎, 당근, 고추와 전어회 떠온 것을 새콤달콤한 초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시골에서 가져온 참기름 옷을 입혔다. 방금 볶은 참깨를 아들 손바닥에 올려서 맞은편 손바닥을 덮고 비틀어 고소함이 배가 되도록 손바닥 맷돌에서 나온 참깨가루를 뿌려주었다. 내가 만든 먹거리의 화룡점정은 늘 참깨가 담당한다. 부족한 맛을 덮을 수 있는 묘수이기도 하다.
전어회 무침을 해낸 그릇은 바로 회덮밥 그릇이 되어 밥솥에서 바로 밥을 대여섯 주걱 담아 전어회무침과 비벼준다. 개인 그릇에 옮겨 담아 먹는 아이들과 남편의 목넘이 소리가 꾸울꺽, 가을이 제대로 왔다.
대접받지 못했던 전어는 언제부터인지 가을이면 잊지 않고 꼭 먹어줘야 할 생선으로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며 식객을 잡아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뼈를 발라 떠온 회를 빨갛게 버무리고 고소한 참기름과 참깨를 뿌려 한상 올리고 맛있게 뜨는 한 숟갈을 바라보며 흡족해한다. 길 떠나려던 아들도 앉아 가을 첫머리 이 의식에 참여하고 있다. 이렇듯 전어회는 내게 대접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알게 해주는 음식이자,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가 되었다.
(원전오염수 방류 중인데...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꿀꺽 한입 한다. 내년에는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소심한 걱정을 하면서도 표 나지 않는 사이 스며들 위험을 모른 채 또 한입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