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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Jan 03. 2024

새해에도 늘 건강하세요.

무병장수 팥죽을 올립니다.

왜 그런 적이  없었던가! 서러움이 또 다른 서러움을 불러내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섧고 애타고 슬픈 기억과 이룰 수 없는 희망을  찾아내어  머리를  맞대고  어깨동무를  한채  동굴 속에  앉아  엉엉  울어버린 날.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시선이  머무르고 있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무엇하나 바꿔줄 수 없는 나는 그저 당신의  다리와  발바닥을  주무르고  쓰다듬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 세밑, 2023년과 2024년을 구분 짓느라 괜스레 몸도 맘도 어수선한 연말이었다. 거실 소파에 기대  평균나이  59세 인순이, 신효범, 이은미, 박미경 가수들로  이루어진 골든걸스 노래에  빠져있었다. '날 막는 게  바로  나인가?, 안 해본 도전은 다 실패야, 망설인 기회는 다 낭비야!'라는 가사를 곱씹어보며  뎅굴거리다  이제  잘 시간이 된 것 같아 엄마 방문을  열었다. 불을  끄고  앉아 다리에  두 손을  가져다  놓은 채 엎드려있는 엄마가 거실에서  들어온  불빛을 따라 희미하게 보였다. 비가 오려는지  눈이 오려는지  잔뜩  찌푸린 하늘 때문이리라. 방바닥에  앉아 이불속으로  손을  넣어  엄마 다리에  주물렀다. 많이  아프냐고  묻는데  보청기를 빼놓은 당신은 말없이 어서 가서 자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런데  엄마의  눈빛이  놓아주질  않아서  머뭇거리며  손가락에  말랑거리는  당신의  다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사람노릇 못할 모양이어야... 집에서 설 쇠기도  글렀고..."

더 이상 말을 걸면  눈물 많은  , 가둬둔  보가 터질 것 같아서 조물조룰  주무르던  손을  거두고  주무시라하고  나왔다.

 

이를 닦고  잘 준비를  마치고 다시  엄마  방문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주무시는 듯하면 그냥  뒤돌아서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섧게  울었다. 들어갈까  말까를  망설이다  문을 열고  불을 켰다. 엄마는 앉아서 두 다리를  잡고  엉엉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어른이  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 왜..."

 달리  할 말이  없어  스스로에게  내뱉듯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다리를  주물렀다. 엄마는 보여주기  싫었는지  손을  내저었다. 다행이었다. 엄마가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음이. 그저 가는 종아리를  주무르고 발바닥 쓸었다. 조금씩  잦아들었다.

이번  명절은  시골집에서  오랜만에  다들  모여  보낼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와, 요즘 들어 힘이 더  빠져가는 다리에 저녁이면  찾아오는  통증이  엄마 맘을 헤집어놓은 듯했다. 엄마가  아프면서  서울 큰아들네로  옮겨간  제사와  명절을  이번 설날부터는 다시  시골집에서  보내야겠다고  당신 큰며느리가  말할 때, 엄마는 큰 희망을 걸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다시 큰아들이 승진을  했지만  연휴에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임무를  맡으면서  엄마의  작은  희망은  깨지고  말았다.


"왜 그래? 다 그러고  살아! 엄마  생각만 해?"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애써  다독거린다고 내뱉은 말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데 그닥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해 흐른 지금, 서러울 땐  그저 그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후련하게  우는 것도  약이 된다고,  이도저도  해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저 바닥 깊이  고여있던  눈물방울을 다  토해낼 수 있다면, 그저  울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싶다. 다  울고  나면  잠이  올 것이고  그러면  또  새 날이  올 것이니까.


그 사이  재재가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방문을  들여다보았다. 씻고 나서  잘 줄 알았던 내가  나타나지 않자 무슨 일인가 싶어 들여다보고,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한 발도  움직이지 않고  쳐다보고 있다 다시 사라졌다 오길 몇 번째였다. 분위기를  깨뜨리기 위해  할머니옆으로  오라는  요청에도 섞이기 싫어선지 계속 왔다 갔다 방황했다. 이제  누워서  자겠다고 그만  나가보라고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나는 그만 주무시라고 나왔다. 재재는 우리를 멀거니 지켜보고  있다가 내가 일어서는 것을  보더니 쫄랑거리며 따라왔다.

 

 재재가 올라올 자리를  남겨두고  먼저  누웠다. 오른손으로 침대바닥을 톡톡 쳤다. 어서 와서 자자라는 우리의 신호였다. 곧 자밤자밤  발자국 소리에 이어  침대에  사뿐 올라오는 가벼운  소리가 날것이라 여기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방바닥에  떨어져 내리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침대에  뛰어오르다  떨어진 재재, 핸드폰  프레쉬를  켜고  녀석을  찾아보니  나를  바라보고 있다. 황망한  표정? 숨기고 싶은  마음? 그런 듯해 보여  계단을  가리키며  이곳으로 올라오라고  해보는데  녀석은  괜스레  이쪽으로  저쪽으로  걸어 다니며 아닌 척해보다  계단 중간쯤 멈춰서  오를 생각을  않는다. 모른 척해야  올라올 듯해 고개를  돌려주었다. 어느 새 내 발치 쪽으로 가서 엎드렸다.


발등에  녀석의  등이 닿았다. 여덟 살 미니푸들, 4.3킬로, 소형견  나이계산기에 따르면  태어난 지 2년 동안은  1년에  12살, 2년 후부터든 1년에  4살이라는  공식에  의하면  (2×12+6×4=48) 사람나이 48세라고 볼 수 있다. 어둠 속 핸드폰  푸른 조명으로 재재의 나이를  계산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다행히  어젯밤  그늘은  걷은 듯 아침 식탁에서  치즈도  찾으셨다. 퇴근 후 목욕을 시켜드렸더니 일상으로  회복된듯했다. 재재도  새해맞이 목욕을  치렀다. 그리고 흐리거나, 맑거나, 우중충하거나, 해사했던  일 년은 넘어갔다. 이제  여덟 살이 되는  재재와 아흔이  되는  엄마에게도 새해가  찾아왔다.


한 해 끝자락, 보내는  마음은  늘 서운하다. 애틋하다. 더  잘할걸, 더  애써볼걸, 더 노력해 볼 걸 그랬어, 후회가 앞선다. 하지만 새해를 맞이하며 그 많은 안타까움은 모두 털어내고, 이루지 못한 많은 욕심들 중 가장 먼저 건강을 손안에 그러쥐어 본다. 주변 상황과 오십 대 중반을 달리는 거울 속 내 얼굴을 바라보며 새해 출발선에서 가장 먼저 건강을 희망해 본다. 가능하다면 북유럽 신화 속  청춘의 신, 이둔의 황금사과를 훔쳐오고 싶은 마음 가득하지만, 현실 속 젊음의 사과는 적당한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 그리고 매일 먹는 웃음이 아닐까?  욕심부리지 않고 물푸레나무로 만든 바구니 안에 넣어두고 조금씩 꾸준하게 먹어볼 계획을 세웠다.


침대 위로 단박에  오르지 못한 그날 이후, 재재는 계단을 이용해 침대에  올랐다. 하지만  내려갈 때는  여전히  풀쩍  뛰어내렸다. 게다가 계단으로  저벅저벅  오르지 않고  토끼처럼  풀쩍풀쩍  모둠발로 뛰어오른다. 재재도 나도 어색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뿐이었다. 다시  계단을  사용하지 않는다. 슬개골 탈구를 예방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지만  아프고 난 뒤에야  습관을  바꿔보려는 어리석은 나처럼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강아지는 주인을  닮는다는 말, 역시나  맞는 듯하다.


 

모든 작가님들도  

새해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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