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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Dec 03. 2023

엄마 행복하자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말은 엄마의 방식과 삶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내가 엄마와 다른 사람이기에 나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 보겠다는 내안의 의지가 담긴 말이었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by 열쇠책방


인생엔 프롤로그가 있고 긴 본문을 지나서야 에필로그가 있다.

내 인생의 프롤로그, 내 인생의 에필로그

by 열쇠책방




딸이 커갈수록 딸을 향한 나의 애착이 늘어가는 기분이다. 훌쩍 자란 딸에게서 내 모습을 보고 있다. ​나는 어느새 딸과 내가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나 보다. 내가 딸을 나의 분신으로 보기 시작했을까?  

이렇게 나도 영락없이 딸에게 기대는 엄마가 되어가나 보다. 딸이 커갈수록 보게 될 나의 모습들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는 어떤 엄마이고 대체 엄마에게는 어떤 딸이었을까?​ 



엄만 왜 늘 걱정만 달고 살고,
내게도 걱정만 실어다 줄까?
너무 싫었던 시기를 지나왔다.

어릴 때 내가 엄마에게 나와 좀 놀아달라고 속으로 외쳤던 것처럼 엄마도 지금 자기를 좀 봐달라고, 사랑해 달라고 으로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모른 체하기도 한다.

투정 안 부리는 착한 딸이 외로움 타는 딸이었던 걸 엄만 모는다. 내 가정 꾸리고 사느라 외로운 엄마를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내 미안하다. 둘 다 서로에게 미안해하며 사랑은 잘 표현하지 못하는 존재로 사는데  미안함도 사랑일까? 아니면 그저 변명일까?

엄마가 언제나 내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안다. 내가 최대한 신경 안 쓰게 하려고 별일이 없으면 연락을 하지 않는다. 10번 전화할 것도 참고 한 번으로 줄인다. 사소한 일을 물어보고 싶어도 엄만 일단 참는다. 그걸 알아챈 게 얼마 되지 않았다.

 엄마는 어느새 잊고 자기 딸만 바라보고 있는 내가 엄마에겐 어떻게 보였을까?​나중에 내 딸이 그렇게 나를 먼발치에 둔다면 나는 어떨까?내리 사랑이라고 다 이해해줄까?


엄만 기대고 싶어 하는데, 내가 곁을 멀리 두었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어쩌면 엄마가 너라도 맘 편히 살라고 내어준 거리이기도 하다. 난 애써 그 거리를 좁히려하지 않았고 그것이 미안하다.


생각들이 정리됨 없이 날아다닌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 한 권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
"딱 너 같은 딸을 낳아 봐라!"

딸의 이름으로 70년, 엄마의 이름으로 45년을 산 시인 신달자의 에세이가 왜 이렇게 아프냐!

가장 멀고도 가까운 사이
눈물이 나는 그 이름
엄마와 딸 세상 모든 여자들의 이야기

딸이 아닐 수 없는 세상의 여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글들로 가득하다.  우리 엄마 나이대의 저자의 글에서 많은 위로도 받았고 평생 잘못 생각하고 있던 부분들을 바로 잡아도 본다.


P.86-87
어떤 소리를 들어도 그냥 엄마였다. 가슴 무너지고 눈이 팽 돌고 가던 걸음을 멈추고 눈물을 닦고 온몸이 쑤시고 열이 높아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음식을 만들던 엄마. 어쩌면 그 헬 수 없는 윽박지름과 상처와 고통이 딱지를 떼기도 전에 다시 상처를 내고 피를 내는 동안 엄마는 엄마가 되었는지 모른다.
엄마의 마음 근육은 울면서 다져지고, 엄마의 가슴 근육은 서럽고 억울하여 펄펄 뛰면서 굳어지고, 엄마의 채워지지 않는 소망은 언제나 배고프면서 그 허기를 견디느라 단단한 근육으로 자리 잡으며 엄마가 되어 갔을 것이다.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 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니~
양희은 - 엄마가 딸에게 가사 중에서



엄마가 행복한 모습을 보아야 나도 행복할 것 같다.

엄만 언제가 행복해?



엄마~

나는 엄마의 행복을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슬퍼요.

우리~ 아무것도 못해봤잖아요.



언젠가는 엄마가 내 곁을 떠다는 것이

사실이란 걸 떠올릴 때마다

조바심이 나서 펜을 들어요.

내 안에 풀어야 할 실타래들이 가득한걸요.



내가 그날을 미리 알 수 있다 해도

그래도 절대 말하지 못할 것들만

여기에 가득해요.

그런 가슴의 이야기들은 끝까지

엄마에게 닿지 못하고 말 거예요.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매일 매 순간 생각했어요.

그때마다 이상하게도

다시 마음의 문이 닫히곤 해서

돌아섰습니다.


결코 닿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할 걸음 한 걸음으로

그날까지 걷다가 운이 좋으면

책으로 엮어서 늦지 않게

엄마에게 드리고 싶어요.


엄마 앞에선 내 모습은

늘 아슬아슬하고 볼품없었지만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니었어요.

이건 엄마의 생각도 아니죠.

나 혼자 키워둔 생각일 거예요.



내가 알고 있는 엄마도

엄마가 생각하는

엄마 자신은 아니었을 거예요.



우린 진짜의 모습으로는 만나지 못했어요.

엄마의 딸로 살았고

딸의 엄마로 평생을 살았는데

서로 미안하고 안타까워하죠.


뭔가가 꼭 필요했던 것도 아닌데

온전히 웃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이젠 정말 그런 것들이 아쉬워요.​



서로의 마음의 짐을

자기의 짐보다 무겁게 여기며

대신 들어주지 못해서 아파했죠.


서로의 행복을 바라면서

나 자신의 행복은 신경 쓰지 못한 채

서로를 오래도록 아파했어요.


우리 이젠 그냥 웃어요~

엄마의 행복을 의심했어요.

행복하지 않은 여자라 생각하며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했어요.



우린 그냥 있는 그대로

서로를 껴안아야 했어요.

서로 미안해하지 않고

당당해야 했어요.


내 소원은 늘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였어요.

엄마 입에서 행복하다는 소리

들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우리를 챙기는 것보다

엄마가 엄마를 더 사랑하고 챙기고

아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되려 원망한 시간들도 있었어요.

내 죄책감을 덜고 싶어서 쓴 생떼죠.​


아닌데, 그게 아닌데...

어리석었어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그럴 수 있는 엄마가 어디 있겠어요.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기였을 때

엄마가 내게 내밀어 주던 손과 가슴을

이제는 내가 내어드렸어야 했는데

뭐가 부끄러운 걸까요?

왜 철들기 두려워하는 걸까요?


엄마의 빈자리를 보며

얼마나 울려고 이러는 걸까요?

엄마~ 항상 미안했어요.



엄마가 그렇게 버텨주어서

내가 이렇게 웃고 살았어요.

오늘도 많은 것들을 버티고 있는 엄마~


그래도 이제는

엄마가 행복하다고 믿고 싶어요.

이 모든 것이 엄마의 행복이었음을 믿고

미안하지 않는 마음으로

엄마 밥 먹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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