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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Dec 07. 2023

다만 하나, 행복한 엄마이고 싶어서

낮과 밤

https://brunch.co.kr/@kih451145/7



자식을 따뜻하게 품을 줄 모르는 .

무섭고 재미없는 아빠로부터의 보호막이 엄마였다. 엄마는 따뜻한 온기이며 웃음이었고

엄마는 '척하면 척' 나를 읽어 주는 신이었다.


엄마는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하느라 늘 바빴다. 오빠와 내가 아주 어릴 땐 우리를 길 곳이 없었다. 집에서 부업 같은 돈 안 되고 고된 일을 하루종일 했다. 나는 늘 엄마 옆에 앉아 말 벗이 되었던 것 같다. 엄마는 손을 바쁘게 움직이면서 이 얘기 저 얘기들을 해주었다. 엄마가 힘들었던 이야기, 좋았던 이야기, 자기가 건사해 온 생들에 관한 이야기부터 동네 아주머니들과의 이야기들도 줄줄이 이어졌다. 엄마와 함께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그냥 엄마 옆이 무조건 내 자리였다. 그래서 같이 밤도 까고 스티커도 붙이고 일을 재미로 배웠다.


우리가 조금 커서는 엄마가 부업을 접고 공장으로 일을 다니셨다. 그 시대의 여성이라고 다 그렇진 않았을 텐데.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와서도 집안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려면 밤을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밤이 되면 피곤한 엄마는 아이를 품에 끌어들여 잠을 청해주다가 먼저 잠이 들곤 했고, 어린 딸은 엄마의 손, 팔뚝이나 허벅지를 부여잡고 체온을 느낀다.

엄마도 가 잠든 줄 아셨지.
잠든 엄마 곁에서 엄마 냄새를 맡는다. 너무 가까워 엄마가 푸~ 할 때 나도 푸~ 해야 숨이 쉬어진다.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밤이 되면 엄마의 숨 박자를 새는 것이 외로웠다. '엄마를 깨우면 안 돼.' 투정 부릴 수 없는 밤이라 어린 나이에도 괜히 쓸쓸했다. 혹시 엄마는 죽은 걸까. 푸~ 하고 숨을 쉬면 안도한다.


딸이 따뜻하다며 내 허벅지에 엉길 때면 이거 무슨 데자뷔인가 싶어서 아차 싶어 진다.
내가 엄마가 됐네 ~

더구나 일하는 엄마네~
내 딸도 외로울까? 생각해 다.

스마트폰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아이들은 애착 인형 대신 스마트폰을 쥐고 있어서 외로움을 덜 타는 걸까? 엄마바라기 할 시간이 어디 있어. 자기가 더 바쁜데...


나는 다 자라도록 엄마 치마 꽁무니만 따라다니는 말없고 조용한 착한 아이로만 컸다. 아쉽다. 사고도 좀 치고, 떼도 쓰고, 나 좀 봐주고 놀아달라고 할걸? 그러면 엄마도 일 안 하고 쉬었을지 모른다. 의 기억과 엄마의 기억은 아마 많이 다를 것이다. 가 과장되거나 왜곡되게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다. 더 착한 아이로 외로운  아이로 말이다.


아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일 수 있을까?
그것이 많이 고민스럽. 다만 하나 행복한 엄마이고 싶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고, 잠깐 동안은 내가 겪은 마음의 갈등들이 전해질까 봐 겁이 났다. 그건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아님을 알았다. 성장과정이고 인간이 겪는 모든 길이다. 스스로 겪고 생각해서 움직여야 자라는 것이. 나의 기준은 이미 지나간 시대 아닌가. 아이의 길에 부모의 지지와 응원과 관심, 적절한 칭찬이 있다면 아이가 결핍 없이 충분히 자신의 싹을 틔워 나갈 것이라 생각다. 싸우지 않는 다정한 부모를 보며 자라는 것. 그것으로 족한지도 모른다. 충분히 마음대로 해봐도 좋다고 아이에게 얘기해 주고 싶. 너의 도화지에 마음껏 그려 넣으라고.  엄마 아빠 마음에 들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힘들 때 덩그러니 혼자 있게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책이라는 것을 아이도 잘 안다. 일기를 쓰고 다이어리 꾸미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안다. 아이도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고 독서 동아리에도 스스로 참여했다. 엄마처럼 될 거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엄마가 행복해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엄마가 책 읽으라고 설거지해주는 다정한 아빠가 있다는 것도 아이에게 자랑거리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도 좋겠지만 이게 먼저라는 생각에 나도 내가 부끄럽지 않다.



엄마가 책 읽고 서평 쓰고 인플루언서가 되는 과정을 아이도 보았다. 이달의 블로거로 네이버에서 선물 키트가 올 때마다 집은 잔치분위기였다.  그러다가 글을 쓰고 싶다고 아이에게 선언했다.



여성들이 솔직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사실 그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있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며 21세기를 살고 있다. 18세기 이전은 생각하기도 싫고 19세기만 해도 여성들은 참 어둡고 쓸쓸한 방에서 가사노동과 생계를 위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생각에 지금의 여유가 너무 빛나 보였다. 지금의 여성들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고 부캐도 있다.



우리 엄마에게 자기의 방이 있었더라면, 매달 돈 걱정 하지 않고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먹고 입히는 걱정이 없었더라면, 그랬다면 본인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분명 많은 것들이 달랐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이 이런 이야기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감동이 커서 쉽사리 말하지 못하겠는 마음. 다시 읽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무튼 내가 [자기만의 방]을 되씹고 소화시키는 동안 버지니아 울프가 언급한 여성 작가들에 관심이 쏠렸다. 깊은 뿌리에서부터 우러나온 일상의 글이 어떤 감동을 주는지 독서에 대한 생각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는 기분이다.


박완서 님이 불 꺼진 방에서 식구들이 깰세라 이불을 덮어쓰고 써가던 글의 가치를 이제 알듯하다. 우리의 일기나 그 어떤 글도 나 자신뿐 아니라 후대에게 유익한 산물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분위기를 바꿔 놓는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가족에게 영향을 주게 될 테니까.​


(박완서 -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우리나라의 최초의 여성작가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허난설헌, 신사임당의 이름을 보았고 궁중 일기를 쓴 혜경궁 홍씨가 검색된다. 교과서에서 만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감정으로 그분들이 쓴 글을 만나보고 싶어 진다.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특별한 시작이었다. 세상에 없던 스마트폰이 생긴 것만큼이나 세상을 달라지게 한 '무엇'이 된 것이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슴에만 쌓았던 것이 아프다. 희로애락을 똑같이 겪고 사는 인간인데 그것을 표현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 그 표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문화와 배경, 언어가 없었다는 것은 이렇게 아프구나.


자기만의 방의 모든 문장이 내게 콕콕 박히듯, 작은 아씨들의 장면들이 그랬다. 울컥울컥 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가치들로 가득했다. 내가 미처 익히지 못한 배움이 들어 있었고 여태껏 극찬해 오던 빨강머리 앤보다 조금 더 성숙한 느낌이었다.


여성의 글이란 이런 것이구나, 많은 제약들 속에서 피어난 설란 같은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 어슴프레 알았다.


글을 쓰는 것이 내 삶이라고 말하는 조를 보며 작은 아씨들을 왜 읽어야 하는지 처음 알게 되었고 영화를 보며 순간순간 눈물이 비쳤다. 아름답고도 꼭 필요한 글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다른 것들은 기억하지 못해도 이것만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에 있지 않은가.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다만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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