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과 나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같은 반으로 배정되는 우연에 좋든 싫은 여럿 경험을 공유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선생이 담임으로 임용되어 사소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동급생과 다툼이 일어나서 일방적으로 얻어터진다거나 하는 감추고 싶은 단면도 어김없이 서로의 기억 속에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이라는 실감이 안 날 정도로 일상처럼 초등학교 졸업식을 하고 (이때 나는 모든 게 끝나고 나서야 감정이 북받쳐서 방에 들어가 울었다.) 중학교로 입학하기 위해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들은 외투를 입고 목도리나 장갑을 끼고 놀이터에서 만나 그네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배고프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나왔더니 꼬르륵 소리가 나" 내가 말했다.
바닥에 발끝을 고정시켜서 흔들거리며 그네를 타던 팝콘이 입김을 내뱉으며 말했다.
"나도 물 한잔 마시고 온 거야. 우리 집 갈래? 컵라면 있을 거야"
"부모님은?"
"두 분 다 일가셨어."
"늦게 오시려나?"내가 물었다.
나는 팝콘 옆에 바싹 붙어 걸었다. 겨울이지만 옷을 껴입은 탓에 그다지 춥지 않았다. 골목길 가장자리에는 자동차가 열 맞춰서 다닥다닥 주차되어 있었다.
"나 예전에, 네가 전학 오기 전에 겪은 일인데 들어볼래? 집에 가는데 어떤 여자애가 인사를 하는 거야. 처음 보는데 얼굴은 엄청 고집 세게 생겨서는 뭔가 기분 나쁜 분위기를 풍겼어. 나도 인사를 하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집을 갔어.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또 그 애를 만났는데 집에 가는 나를 뒤따라오면서 백 원을 달라면서 손을 내미는 거야."
"백 원을?"
"응, 백 원. 왜 갑작스럽게 돈을 달라고 하는 건지 나야 모르지만 줄 수 없다고 했지. 내가 왜 줘야 해?라고 물어봐도 정확히 대답을 안 해, 물론 정확히 말해도 주진 않았겠지만. 그래서 그냥 무시하고 가려는데 뒤에서 같은 방향이라 종종 보던 동생이 뛰어오면서 그 여자애를 가리키면서 형, 얘 알아요? 그러는 거야. 나는 모른다고 했지."
"이상한 애였나 봐?" 길거리를 유심히 보던 팝콘이 말했다. 팝콘은 길거리를 유심히 보다가 버려진 것 중에 맘에 들거나 쓸만한 물건이 있으면 줍기도 했는데 옆에서 봤을 때 잘 주웠네 싶은 물건과 왜 주웠는지 모르는 물건이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내려놔’라고 말했다.
"맞아. 이상한 여자애였어. 동생을 보더니 먼저 가버리더라고 그래서 물어봤지 ‘너 아는 애야?’하고 그랬더니 자기 집까지 계속 따라왔던 여자애라고 말하더라고"
"계속 따라왔던?"
"그래, 계속 자기 집까지 계속 따라가던 여자애. 돈을 달라고 손 내밀어서 거절했더니 자기 집까지 따라 들어올 기세라 주머니에서 꺼내서 백 원을 줬대. 받고 나서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그게 다야?"
"아니 뒷얘기가 더 있어, 근데 너희 집에 가서 얘기해 줄게 추워서 입이 얼어버릴 것 같아."
나는 입을 다물고 팝콘을 따라 걸었다. 커다란 슈퍼를 지나고 골목을 지나서 팝콘 집에 도착했다. 그는 문 앞에 있는 화분을 들어 받침대에 숨어있던 열쇠를 꺼내더니 문을 열었다. 집안의 온기가 느껴졌다. 신발을 벗고 그의 방으로 들어가서 바닥에 앉았다. 그는 컵라면에 부을 물을 끓인다며 거실로 가 주전자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를 켜고 올려두었다. 나는 주위를 살피며 책상 위에 난잡하게 널브러져 있는 필기도구와 책장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액자를 봤다. 액자 주변에는 말라비틀어진 꽃. 편지로 보이는 종이가 놓여 있었다. 팝콘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목도리나 겉옷 벗지 그래? 답답하지 않아?’라고 말해서 나는 목도리와 겉옷을 벗어서 옆에 겹겹이 쌓아두었다. 방안은 시곗바늘 소리만 들릴 만큼 고요했다. "조용하다." 내가 말했다.
그는 의자에 앉아서 책장을 보다가 얼마 안 있어서 삐이익 소리를 듣고 거실로 가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주전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나를 불렀다. 나와 팝콘은 거실에 있는 식탁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었다. 다 먹고 나서 식탁을 치우고 오렌지 주스를 따른 컵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포개서 벗어두었던 겉옷을 들어서 다리 위에 덮고 앉았다. 팝콘은 아까와 똑같이 의자에 앉아서는 책장을 뒤적거리며 유리병을 꺼내더니 흔들면서 ‘이거 봐’하고 말했다. 유리병 안에는 소라 껍데기가 들어있었다.
팝콘은 달그락달그락거리는 유리병을 내 쪽으로 갖다 대며 말했다.
"예쁘지? 바닷가에 갔을 때 내 동생 유혁이랑 해안가를 걸으며 파도를 보다가 모래 사이에서 발견한 거야."
"정말 예뻐 처음 보는 모양 같아. 그런데 동생이 있었어?" 내가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유리병을 흔들며 그 안을 주시하고 있었다.
"네게 처음 듣는 것 같아 동생은 어디 간 거야?" 내가 재차 물었다.
"이걸 주을 때 내 동생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다시 그 자리에 놔두래 소라 껍데기가 불쌍하다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소라껍데기가 왜 불쌍해? 하고 물어봤지 그랬더니 친구들과 같이 있는데 우리가 가져가면 외롭기 때문에 놔둬야 한다는 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코웃음 치며 그냥 들고 와서는 작은 유리병에 넣어두었어. 동생의 말 안 듣고 가져오길 잘한 게 그때를 회상할 수 있다는 거야. 보고 있으면 파도소리가 들려. 옆에 있었던 동생의 말이 녹음기를 틀은 것처럼 반복해서 울리고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이건 비밀인데 사실은 내 동생은 이제 없어. 자동차가 들이받아서 붕 뜨더니 그대로 죽어버렸어 그래서 공공연하게 퍼진 소문을 견디지 못해서 도망치듯 전학을 오게 된 거고 옆에서 손잡고 있었던 나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이대로 살고 있고" 팝콘은 달그락거리던 유리병을 책상 위에 놓은 채 작은 목소리로 "비밀이야"라고 한 번 더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장난인지 진담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잘 판단이 되지 않았다.
팝콘은 책장에 있는 액자를 꺼낸 뒤 ‘내 동생’이라고 말하며 내게 건넸다.
"많이 닮았네 눈이 너랑 똑같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사진 속 동생은 죽음이라는 것과는 동떨어져 보일 정도로 해바라기 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액자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놔두고 팝콘의 손을 잡고 ‘내 옆에 앉아봐’라고 말한 뒤에 안아주었다.
그러자 팝콘이 어깨에 기대고 있던 고개를 들어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우리들은 서로의 눈동자만 계속해서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상한 무언가가 일어날 것 같았다. 어두운 천이 나를 감싸며 두려움이 느껴졌다.
나는 그를 보며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고 컵을 들어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팝콘과 나는 나란히 앉아서 침묵만을 지켰다. 얼마 안 있어서 팝콘이 곧 엄마가 올 시간이라고 말해서 나는 포개져 있는 옷을 하나씩 주워 입었다. 그러자 팝콘이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아. 그 백 원 달라고 하던 여자애는 어떻게 됐어?'
"아 얘기를 하다가 말았었지. 나중에 또 나를 따라와서는 손 내밀고 돈 달라고 해서 순간적으로 엄청난 공포심이 들었어. 마치 인간의 탈을 쓴 다른 종족처럼. 내 말은 듣고 있으면서 무시하니까. 돌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았어. 무서워서 따라오지 말라고 소리치면서 밀쳤는데 넘어지면서 울더라고 근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그걸 봐버린 거야. 그래서 엄청 혼나고 울고 있는 그 여자애한테도 사과하고 그 뒤로 보지 못했어. 다시 보기도 싫고."
팝콘이 무표정으로 읊조렸다. ‘까마귀랑 비슷할 뻔했네.’
‘까마귀?’
‘그런 게 있어. 교활하게 숨어서 있는 새’
나는 옷을 다 입고 목도리도 돌돌 말아서 코밑까지 가렸다. 팝콘에게 인사를 한 뒤에 현관으로 가서 차갑게 젖은 신발을 신고 문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