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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Sep 14. 2023

다 된 밥에 허리부상 당하기

소방관이 되는 길 두 번째, 체력측정

소방관이 되기 위해서 그동안 공부도, 일도, 운동도 열심히 해왔다.


첫 번째 관문은 필기시험이었고, 표본조사 결과 운 좋게 최상위권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필기와 체력, 면접 점수를 각각 일정 비율로 합산하여 합격여부를 결정하는데, 필기가 70, 체력이 20, 면접이 10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말인즉슨 필기시험을 잘 치면, 체력과 면접은 비교적 수월해진다는 이야기다.


체력은 60점이 만점이었는데, 본인의 피지컬에 따라 50점을 받는 것이 쉬운 사람도 있고 어려운 사람도 있다. 요령도 꽤 필요한 분야라 피지컬이 좋다고 무조건 50점을 넘게 받는 것은 아니었다. 아, 필기시험 점수를 커트라인 플러스 5점 정도 받았다고 하면 체력은 50점 이상을 넘겨야 아슬아슬하게 합격하는 분위기.


내 점수가 필기 상위권이니 산술적으로는 체력시험에서 과락한계선인 30점만 받아도 합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인원을 적게 뽑는 탓에 리스크도 있지만 필기점수가 월등히 높아 변수는 크게 없을 듯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어떻게 시작한 공부인데. 이 소중한 기회를 허투루 날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OMR 마킹을 하다가 실수로 밀려 썼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답을 다 외우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다 틀렸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운동을 하다가 다치면 어떻게 다른 종목으로 만회할 것인가?


무엇하나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없지 않은가. 절대,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하기 위해 체력학원에 가면 늘 앞장서 시험 동기들을 모아 몸을 풀고, 지쳐 보이는 동료들이 있으면 일으켜 세웠다. 운동을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단톡방을 개설해 수업일정을 공유하고, 원생들과 계속 소통해 나갔다. 그렇게 소통한 인원만 수십 명 즈음되었는데, 주기적으로 식사자리도 마련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적당히 운동하고, 놀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나, 필기시험이 끝난 후에도 대리운전을 계속해야만 했고, 집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 했으므로 휴식 따위는 최종 합격 발표 후에나 잠깐 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토요일 오후 원장님이 안 계시던 시간 대에 제자리 멀리 뛰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 차례가 아니었지만, 한 번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디딤판 위에 올라갔고, 팔을 앞 뒤로 흔들다 순간적으로 앞으로 날아갔다. 이제 두 팔과 다리를 앞으로 쭈욱 뻗으며, 착지를 하려고 발을 땅에 딛는 순간,


"아악!!!!!!!!!!!!!!!!!!!!!!!!!!!!"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연신 뱉으며 일어나려고 해 보았으나 움직여지지 않았다. 손과 목만 겨우 움직여지고 어떤 방향으로도 눕거나 앉거나 일어서는 것이 되지 않았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소방 시험을 준비하면서 소방서에 신고할 생각을 못했던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신 비명을 지르며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 선생님의 진단 결과를 기다렸다.


"흔히들 디스크 있다고 하잖아요.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네.. 그겁니다."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마치 터널로 날 다시 끌고 가려고 하는 저승사자 같았다. 언제든지 다칠 수도 있고, 또 치료하면 된다. 허리 다치는 것쯤이야.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인생을 걸고 준비하고 있는 시험. 소방공무원 채용시험. 갑자기 주워진 마지막 기회. 하반기 시험.


그 중요한 시험의 두 번째 관문인 체력측정이 약 10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곧바로 충격파 치료와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했다.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의원과 병원을 들락날락하였다. 낮에는 온탕과 냉탕도 들락날락하며 근육을 풀어갔다. 치료를 하며 드는 병원비는 대리운전을 조금씩 하며 해결해 나갔고, 일부는 할부를 끊어 버텼다.


시험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컴퓨터 앞에 어정쩌정하게 앉아 엑셀(EXCEL)을 켰다. 전략을 세웠다.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전략 1. 목표환기 : 시험 합격이 최종 목적이지, 체력측정 고득점이 목적은 아니다.

전략 2. 따라서 체력측정은 과락만 면하는 것으로 한다. 목표는 30점이나 만약을 기해 40점으로 잡는다.

전략 3. 시험장에서 자칫 잘못하면 디스크가 터져버릴 수 있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자.

전략 4. 포기하지 못할 수도 있는 나를 믿지 말자. 믿을 건 자료뿐. 엑셀을 활용하자.

전략 5. 종목별 허리에 부담되는 것과 덜 되는 것을 구분하자.



위와 같은 방식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해 출력했다. 그리고 틈틈이 읽으며 측정 당시에 흥분하지 않도록 마음을 많이 다스렸다. 포기할 것을 포기 못해 29점이라도 받으면 내년을 다시 기약해야 하기 때문이며, 이제 허리까지 부상을 입어, 당분간 일이며 공부며 체력 준비를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체력 시험 당일.


학원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시험장에 도착했다. 많은 수험생들이 긴장된 얼굴로 몸을 풀거나 저마다 가져온 음료나 바나나를 섭취하며 긴장감을 해소하고 있었다. 나도 얼른 우리 학원 동료들을 모아 몸을 풀고 서로를 응원했다.



강당에 모인 우리는 인사채용담당자의 안내사항을 듣고 있었다. 우리 주위로는 즉 정기구와 감독관의 의자가 비치되어 있었다. 종목순서를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하늘이 도운 건지 내가 허리가 가장 부담되지 않는 전략으로 종목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한참을 감탄하며 측정기구를 바라보던 그때 담당자가 말했다.


"체력측정은 조를 나누어해야 하는데, 조마다 시작하는 종목이 다릅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정했으면 하는데 각 줄에서 대표로 한 명씩 나와 주시겠습니까?"


나는 내가 준비한 전략표를 계속 보며, 제발 처음 계산한 것처럼 윗몸일으키기나 악력을 하기를 원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안 나오실 건가요?"


"저요!" 번쩍 손을 든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였다. 내 운명을 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나 때문에 피해를 보는 수험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누가 붙냐 안 붙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것부터 시작하느냐의 문제였다.


가위바위보를 위해 뒤로 돌았다.


"가위! 바위! 보!" 인사채용담당자의 큰 목소리가 강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일순간 정적이 흐르더니 수험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한 목소리가 군중 사이를 틈타고 내 귀를 때렸다.


"와~ 형님! 대박인데요!"


같은 조에 배치된 같이 운동하던 동기였다.


"어? 헉!!!"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10여 명 가까이 되는 조 중에서 혼자 가위바위보를 이겨, 내가 순서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윗몸일으키기부터 하겠습니다"




1. 윗몸일으키기

 윗몸일으키기는 허리에 많은 부담을 주는 종목이다. 하지만 허벅지와 코어로 당기며 하는 게 요령이기 때문에, 연습한 대로 허벅지와 코어를 최대한 활용해 허리가 많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의 속도로만 시작했다. 10점 만점에 8점이라는 나쁘지 않은 점수를 획득하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다음 종목으로 가기 전 강당 바닥에 드러누웠다는 게 옥에 티이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웠다. 악력을 하기 위해 몸을 바닥에 질질 끌며 이동했다.


2. 악력

 악력은 허리가 필요 없는 종목! 동기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일어서 일순간에 기구를 쥐었다. 결과는 만점을 훨씬 웃돌며 10점을 챙겼다.

 다시 바닥으로 돌아간 나는 동기들의 눈을 보며 씩 웃고 있다. 그때 지나가던 감독관이 내게 말했다.


 "수험생! 바로 앉으세요!"


 "아! 넵! 죄송합니다. 저기.. 감독관님... 제가 허리를 크게 다쳐, 앉거나 눕거나 서 있는 게 많이 불편한데, 누워서 좀 이동하면 안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감독관님! 질서는 최대한 지키겠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니, 감독관은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안 다치게 조심하세요."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3. 배근력

 이제 윗몸일으키기로 타격을 받은 허리를 모두 다 써야 하는 시간이 왔다. 게임으로 치자면 모여있는 기를 모두 보내 필살기를 써야 하는 시간이다. 배근력이야 말로 허리를 다치게 할 수 있는 등과 허리의 힘을 측정하는 최고의 종목. 이번에도 동기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 둘, 세~엣!'


"8점입니다. 한 번 더 하시죠" 기회는 두 번이었다. 현재까지 윗몸 8점, 악력 10점, 배근력 8점으로 총 26점을 획득했다. 남은 건 4점. 좌전굴에서 척추가 망가져 0점이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식은땀이 엄청나게 흘러나왔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 감독관님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나를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한 번 더 당기면 마지막 허리 게이지가 다 소진되어 1점 더 받으려다가 좌전굴에서 0점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그래, 저것은 유혹이다. 한 번 더 당겨서 1점을 더 받거나 혹은 그대로라면, 좌전굴에서 0점을 받을 수도 있는 허리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자! 어차피 보스는 못 깬다. 내 목표는 오로지 통과!'


4. 좌전굴

대망의 좌전굴이 다가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좌전굴로 가는 길은 꽤 멀어서 강당바닥을 청소하며 천천히 두 팔로 기어갔다. 군에 있을 때 포복을 많이 해보았지만 지금의 포복은 그야말로 살기 위한 처절한 포복이었다.

감독관님이 다시 내게 왔다. "수험생, 허리 괜찮습니까?" "아, 네. 감독관님.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다음 종목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아무튼 조심하세요. 수험생" "네, 감독관님, 감사합니다."

잠깐의 대화를 끝내고 나니 어느새 내 차례가 다가왔다.

'후~ 후~ 가자!!!' 허리를 펴고 수영하는 자세를 취하며 힘껏 바(bar)를 밀었다.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잘하셨어요~ 9점입니다"


"네?"


"9점이요. 한 번 더 하실래요?"


'9점이면... 8점... 10점... 8점... 거기다 9점이면... 35점? 하... 됐다 이 정도면...'


눈시울이 붉어졌다.


"감사합니다. 감독관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5. 제자리멀리뛰기

종목 순서 선택에서 가장 마지막에 배치되었던 제자리멀리뛰기를 만났다. 나의 결정적 허리부상을 끌어냈던 바로 그 종목. 제멀! 악에 받쳐 상대해야 하는 대상임은 분명했지만, 오늘만은, 오늘만은 한 발 물러나야 했다. '이제 끝이다. 35점. 참자. 참자.'


"자 다음 차례 나오세요" "네" 감독관의 호출이 떨어졌다. 출발점 위에 선 나는 손을 들고 수험번호를 말했고, 팔을 휘저었다. '하나~ 둘~ 셋~! 영~차!'


'???'


원래도 뛰지 않을 생각이기는 했지만 허리 통증으로 아예 1cm도 나가지지 않았다.


"저는... 이렇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수험생, 괜찮겠어요?" "네, 감독관님,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네, 고생하셨어요~"


6. 왕복 오래 달리기

이미 35점을 받아놓았지만,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다가 벌이라도 줄까 봐 달려보기로 했다. 아니 걸어보기로 했다. 두 손으로 허리를 부여잡고 빠른 걸음으로 걷다시피 했는데, 조금 뛰다 보니 아드레날린이 조금씩 나왔고, 통증이 살짝 마취되었다. 조금 더 뛸 수 있겠다 싶어 32회 정도까지 뛰다가 도약을 위해 힘을 주었는데,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체.력.시.험.종.료.


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한 제2차 관문. 체력시험이 드디어 끝이 난 것이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그대로 쓰러져 이틀 동안 침대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갑작스레 부상당한 허리 때문에 극도의 우울감과 긴장감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필기점수를 올려놨더니 체력이 말썽을 부린다 싶어 아무 잘못도 없는 하늘에다 대고 삿대질도 했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최선의 전략을 수립하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한 결과 과락을 면하는 정도의 낮은 점수를 획득했지만, 원하는 목표는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누구에게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잘 가다가도 시련이라는 방지턱이 나타나 꼭 힘들게 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방지턱이 내가 다음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에는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나를 띄워주는 도약대라고 생각한다. 시련이라는 방지턱을 넘어 높게 날아올라 내가 이전에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높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전에 없었던 근육이 만들어지며 다음 스테이지는 보다 더 쉽게 깰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신은 당신에게 절대 풀지 못하는 문제를 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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