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서울 출장 갈 일이 생겨 오늘 새벽차로 서울에 올라왔다. 서울은 업무차 몇 번, 경조사 몇 번 와 본 것이 전부라 올 때마다 어색하다. 친구들과 놀기 위해 올라온 적도 단 한 번도 없어 서울은 내게 늘 낯설기만 하다.
특히 지하철을 이용할 때가 가장 두렵다. 일단 타고나면 의자에 앉던지 서서 가던지 하며 몸을 맡기면 되는데, 어디서 표를 끊고(혹은 어디에 카드를 갖다 대고), 어디로 들어가서 어디로 나가야 되는지 없던 공황장애가 생길 것 같다. 지하철이 없는 지방에서 살다 보니 더욱 적응이 안 된다.
아내는 나를 서울로 보내며 살짝 신난 것 같다. 다 큰 아들 서울 처음 보내는 기분이라나 뭐라나. 그러고 보니 지금의 아내를 소개받고 처음 연락했을 때 아내는 서울에 있었다. 혼자 뮤지컬을 보러 올라가 첫 카톡 답장 후 3시간 동안 답장이 없어 나는 카톡 프로필 보고 금세 차인 줄 알았었다. 알고 보니 뮤지컬 보고 연락하려고 했다는 것.
어찌 되었든 서울은 내게 정말 낯선 공간이고, 신세계이다.
나는 서울에 잠깐 올 때 높이 솟은 빌딩과 넓은 도로를 눈에 주워 담는다. 대한민국의 심장 속으로 들어와 몰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중심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 그런데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을 보는 것이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관찰한다. 그리고 눈빛을 본다. 한 손에는 커피가 한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있다. 카페 창가에 앉은 젊은이들은 연신 노트북을 두드리며 무언가에 열중한다. 버스터미널 대합실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 내 앞의 청년은 손으로 무언가 적어가며 중얼거리고 있다. 아마 중요한 공부를 하고 있는 듯하다. 10시 방향에 앉은 남성도 노트북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저마다 하는 일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다. 옷도 다르고 취향도 다를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아마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걸어서 이동하고 자차를 이용하는 시간이 많은 지방에 사는 직장인인 나는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이 참 힘들다. 그래서 내 생활에만 너무 매몰되는 것은 아닌가 문득 걱정이 될 때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한 번쯤 멀리 나와서 머리를 식히는 것도 내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초 저녁 7시 20분에 예약되어 있던 버스표를 8시 30분으로 바꾸었다. 출장일정이 늦게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다시 일찍 마치게 되어 버스표를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나 버스표 7시 20분으로 바꿀까? 밥 먹고 나면 시간이 많이 남을 것 같은데?"
그러자 아내가 대답했다.
"밥 너무 급하게 먹지 말고, 시간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먹고 보고 싶은 영화도 보고 즐기다 와요. 좋아하는 글도 좀 쓰고"
그리고 이어 말했다. "모처럼 서울 갔잖아요"
나는 아내의 말에 투정 부리듯이 말했다. "서울이래 봤자 버스터미널에 계속 갇혀 있어야 하잖아"
그러자 아내가 쐐기를 박았다. "거기도 서울이잖아"
머리가 띵했다. 그리고 솔직히 일찍 가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내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천천히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지경을 넓혀 주었고,
자리에 앉아 영상도 잠시 보게 해 주었고,
지금 이렇게 태블릿 pc와 키보드를 꺼내어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오늘 유달리 글이 써지지 않는 그런 피곤한 날이었다. 글 3편 분량을 썼다가 모조리 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