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기 Jun 27. 2020

서랍 속에서 발견한 우울

진단 101일째 - 우울 발굴


2020년 3월 19일.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러고 보면 오빠 우울이 예전부터 있었던 것 같아."


아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보관되어 있었던 나의 우울이 기억났다.

나는 우울을 묻어두고 일을 했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나서야 정신과의원을 찾았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다음은 3년 전의 기록이다.


아침에 나가기 전,

"삼겹살 냄새 장난 아닌데!"

아내의 말에 반사적으로

"미안."

그게 왜 미안하냐고 아내는 화를 낸다.

아내를 바래다주고 다시 집에 들어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옆을 보니까 그림자 있다. 빛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그림자의 머리 안이 텅 비어 보인다. 공허해 보인다. 불쌍해 보인다. 이런 마음을 아내한테 말해야 할까? 그러면 또 슬퍼할지도 모르는데, 그냥 내 응어리로 마음 구석에 내버려 두어야 할까?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왔다. 어제 쌓아둔 설거지를 한다. 밥통 먼저 씻어서 쌀을 퍼 담는다.

쌀통에는 그만큼 쌀이 줄어든다. 쌀을 씻어 압력밥솥에 얹혔다. 취사 버튼을 누르고 다시 설거지를 하러 싱크대 앞에 섰다. 밥솥에서 띠리링 신호음이 울리고.


'백미 취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설거지를 하는데 눈물이 자꾸 흐른다. 때가 되면 배가 고파지는, 먹고살겠다고, 꾸역꾸역 잘도 먹는 내가 혐오스럽다. 치킨을, 아이스크림을, 족발을 먹고 싶어 하는 내가, 어딜 가서 음식을 먹으면 깨끗하게 그릇을 싹 다 비우는 내가 경멸스럽다. 어제 삼겹살을 굽는데 썼던 프라이 팬을 씻어내며 눈물을 훔친다. 자꾸 울컥하고 울음이 나온다.


설거지를 끝내고 세탁기를 돌리고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해도 눈물이 난다. 집에서 뭐라도 할 일을 찾아다니는 내가 자꾸 울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안 되니까 무어라도 자꾸 하려는 내가 슬프다. 우울한데 나는 우울하면 안 된다고 버티고 있는 내가 슬프다. 내가 우울하면 더 우울해할지도 모르는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자 울컥하고 터지는 울음을 참을 수 없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내가 미안하다. 그래서 자꾸 나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나온다. 미안한 저 안에는 우울한 내가 웅크리고 있다. 또 슬프고 그래서 또 미안해진다. 밥솥에게 일을 시킨 내가 혐오스러웠다.



빨래를 널고 빈 방에 들어가 누웠다. 희멀건 천장을 보면서 눈물을 닦았다. 미안하면서도 저 깊숙이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하는 내가 있어서, 그래서 더 미안하고, 미안해하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아내 때문에 또 미안하고 슬펐다. 아니, 그런데 난 아니다. 내 존재 자체로 미안하다. 미안하다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내게 환멸을 느낀다. 우울한 생각이 반복된다. 계속 눈물이 난다.


침대에 누웠다. 병원을 가봐야 할까? 좀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잠을 청한다.


자고 일어났더니 아내의 문자가 와있다.

'오빠 아침 먹었나요.'

아내는 내 표정만 보고도 뭔가 알아채고 내가 걱정됐을 것이다. 그래서 문자를 보냈겠지. 답장을 못했다. 밥을 먹기도 싫고 그렇다고 먹었다고 거짓말하기도 싫어서. 눈이 따끔거렸다. 미열이 났다. 샤워기로 찬물을 머리에 맞았다.


떠나고 싶다. 어디 고즈넉하고 조용한 곳에 머물고 싶다. 아내와 손을 잡고 출렁이는 바닷물에 해파리처럼, 투명하고 예쁜 해파리까지는 안되더라도 미역줄기만큼만 너울너울 부유하고 싶다. 아무것도 아닌, 누가 건져 먹지도 않을 미역줄기처럼 너울너울


비가 왔다. 전화가 왔다. 지인이 일거리가 있다고 했다. 나는 좋다고 했다. 일 할 수 있다고. 시작할 날짜가 확정되면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다.


"네. 그래요."


전화를 끊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우울한 내가 있는 저 깊숙한 구멍을 다시 막는다.


'그래. 거기 가만히 있어.'

 

축축하게 젖은 맨홀 뚜껑처럼 무겁고 커다란 뚜껑으로 또 닫아 둔다.


냉장고를 열었다. 삼겹살이 있다. 어제까지가 유통기한이라서 반값으로 샀던 삼겹살 한 뭉텅이가 남아있다. 오늘 먹어버려야 할 텐데 김치찌개를 끓여 먹을까. 아침에 이미 취사가 완료된 밥솥 안에 밥은 그대로 있겠지. 뚜껑을 열어야 하나. 아직은 손이 쉽게 가지 않는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먹은 지 100일이 지났다

오늘이 101일째.

호전되었다. 그러나 아직 정상인지 모르겠다. 

어느 정도를 정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예전의 저 글을 봐도 너무 슬퍼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제 내 우울에 대한 것들을 써 볼 참이다.





작가의 이전글 흉터 이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