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중요한 날이나 기념일에 컨디션이 안 좋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냥 푹 쉬고 지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컨디션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볼 수도 있다.
2021년 10월 2일은 아내의 생일이었다. 점심에 일식당을 11시 30분에 예약해 두었기에 아침에 서둘러야 했다. 아이들은 처가댁에 잠시 맡기기로 했다.
문제는 당사자인 아내의 컨디션이었다.
“속 괜찮아?”
“안 괜찮아, 머리도 아프고”
전날 생일 기념으로 마신 와인이 문제였다. 도수가 낮은 것으로 샀어야 했는데 높은 것으로 산 내 잘못이었다.
“바나나 먹었는데도 그러네, 김치찌개라도 어서 먹어”
“아니야 안 먹을래”
전에 바나나가 숙취에 좋다는 글을 봐서 먹었는데 효과가 좋았었다. 그래서 아침에 아내에게 바나나를 줘서 먹었는데도 속이 좋지 않다고 했었다. 억지로 김치찌개에 밥을 좀 먹게 하였다.
“오늘 가는 데 비싼 데야?”
“싸진 않지”
밥을 먹어도 아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여 예약한 식당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다음 식사 타임에는 이미 좋은 자리는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했다.
“그냥 가야될 것 같아, 다음 타임에는 좋은 자리가 없대”
결국 좋지 않은 컨디션이었지만 그대로 식당에 가기로 했다. 아이들 밥을 간단히 먹이고 챙겨 나왔다. 아이들을 처가댁에 맡긴 뒤 나온 시간은 10시 30분,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어보니 약 5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왔다.
“거의 딱 맞춰 가겠다. 얼른 가자”
차를 몰고 자유로로 들어섰다. 잘 뚫리나 싶었는데 여의도로 가는 길목에 차가 길게 늘어섰다. 마음 같아서는 엑셀레이터를 밟고 차 사이를 뚫고 가고 싶었지만 불가능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아내는 피곤한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순간 마음을 바꿔 먹었다.
‘그래, 어차피 내가 초조해하던 아니던 도착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자나’
마음을 편히 먹고 운전을 하자 초조했던 마음이 조용히 사라졌다.
“다 왔다”
11시 31분, 1분이 지나 목적지인 63빌딩에 도착했다. 주차를 한 뒤 고층엘리베이터를 타고 58층이 왔었다. 결혼한 해인 2015년에 63빌딩의 다른 식당에서 프로포즈를 했었다. 같은 식당은 아니지만 뭔가 기분이 묘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열체크 하고 이리로 오세요”
입구부터 직원들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자리에 앉으니 셰프님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 주신다.
창밖을 보니 가까운 여의도공원과 한강이 보였다. 하늘이 약간 구름이 껴서 어두워보였지만 그래도 경치가 좋으니 밥맛이 한결 좋을 것 같았다.
우리가 먹기로 한 것은 오마카세 요리, 이는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손님이 요리사에게 메뉴 선택을 온전히 맡기고 요리사는 가장 신선한 식재료로 제철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한다.
셰프님은 앞에서 직접 회를 가르고 스시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양 손에 물을 뭍여 ‘탁’하고 물기를 털어낸다. 밥알을 뭉친 뒤 회칼로 자른 생선을 올려준다. 스시에 소금을 살짝 묻힌 뒤 입에 넣어보았다. ‘요리왕 비룡’이라는 만화책의 주인공처럼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음, 맛있다”
“맛있어?”
옆에서 먹던 아내도 맛있다며 눈을 크게 떴다. 다행히 아내 속이 괜찮아져서 음식을 먹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하나씩 하나씩 스시 요리가 나올 때마다 셰프님은 어떤 재료로 먹고 어떻게 먹는지 설명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간단히 설명을 해주다가 아내가 잘 호응해주자 농담도 하고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해서 저희가 케잌을 준비했습니다. 초는 두 개만 준비했는데 20대 맞으시죠?”
“네?”
“10대 신가요”
“아니요, 호호”
앞에 있던 셰프님의 농담에 아내가 즐거워했다.
생일이라고 미니케이크를 준비해주셔서 초에 불을 켜고 사진을 찍었다. 직접 사진도 찍어 주시고, 네잎클로버도 선물로 주셨다.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결제를 하는데 마침 카드 할인으로 10프로 할인까지 받았다.
“카드 할인 되는 것 알고 있었어?”
“아니, 몰랐지”
아내와 나는 더 기분이 좋았다.
“오늘 정말 맛있었어, 잘 먹었어”
아내가 옆에서 잘 먹었다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식당에 오기까지 아내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까봐 걱정을 했었다. 다행히 속이 좋아져 음식을 즐기는 데 문제가 없어 너무 다행이었다. 억지로라도 바나나와 김치찌개를 먹은 효과인 것일까? 어쨌건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집에 있었으면 기념일이 아쉽게 지나갔을 것이다.
“다음에 또 오면 안 돼?”
“되지, 다음에 또 오자”
아내는 음식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내년에도 또 오자. 내년에는 생일 전날에 미리 컨디션 꼭 조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