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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Oct 18. 2020

어떤 기억은 사라진다

"명진아, 오랜만이다."     

 커피를 계산하려 카드를 꺼낼 때였다. 카페 사장이 받아든 카드를 포스기에 넣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키가 크고 눈이 지나치게 동그란 남자. 내가 아는 이 중 저런 눈과 큰 키를 가진 사람이 있었던가. 머릿속을 뒤져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저를 아세요?"     

"알지. 너 나랑 중학교 때 친구였잖아."     

 중학교 친구였구나. 내 기억 속 중학교 친구들은 하나같이 훌쩍 커버린 키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동그란 눈은 없었다. 어서 내 이름을 불러보라는 듯한 남자의 눈. 그 앞에서 나는 입을 벌린 채로 얼어버렸다.     


 "나 기억 안 나는구나. 나 우성이야."     

노우성, 짙은 쌍꺼풀에 눈이 툭 튀어나올 것 같았던 통통한 아이. 모든 곳에서 여드름이 올라오고 있던 나와 달리 우성이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하얬다. 여드름 안 나오는 비결이 뭐냐 물어보면 우성이는 타고난 거라며 일부러 익살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와 키가 비슷했던 우성이는 고개를 들어 봐야 할 만큼 훌쩍 커져 있었다.     


 나는 우성이와 게임으로 친해졌다. 피시방이 생기고 컴퓨터가 집마다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남자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에 푹 빠지게 된 때였다. 우리 중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쉬는 시간만 되면 모여 앉아 어떤 게임이 재밌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지 목소리 높여 말했다. 나는 철 지난 게임 CD를 부록으로 주는 게임피아라는 잡지를 매달 샀기에 가지고 있는 게임이 많았다. 내가 재밌게 했던 게임을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CD를 빌려 달라며 내게 부탁했다. 나는 순번을 정하고 돌려가면서 하라고 CD 여러 장을 아이들에게 나눠서 빌려줬다.    

  

 우성이는 최근에 아버지가 사 준 컴퓨터에 황금도끼라는 게임이 깔려있으니 자신이 원하는 CD를 빌려주는 대가로 복사해가라고 내게 제안했다. 잡지에서 본 적이 있다. 황금도끼는 야만 용사가 앞으로 나아가며 적을 무찌르는 액션 게임이었다. 기자는 자신도 매일 하고 있다며 게임을 좋아한다면 꼭 해야 한다고 소개했다. 나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학교 끝나고 우성이 집으로 향했다.      


 옆으로 기다란 녹색 대문을 열자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에는 컨테이너 건물이 있었고 안에서는 컨베이어 벨트가 윙윙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내가 귀를 반쯤 막자 우성이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전병 공장이며 나오는 전병들은 드라마 왕초에도 나오는 제품이라 자랑했다. 전병은 원 없이 먹겠구나. 달콤한 향이 나는 공장을 뒤로하고 우성이 방으로 들어갔다. 꽤 넓었다. 책상이 내 것보다 두 배는 길었고 혼자 자는 침대는 동생과 같이 쓰는 내 침대보다 넓었다. 컴퓨터는 최신형이라 내 것보다 사양이 좋았다. 우성이네는 부자구나. 눈이 휘둥그레진 나를 보며 우성이는 아버지 사업이 요새 잘 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놀란 마음을 들킬까 봐 속으로 삼키며 가져온 게임 CD를 컴퓨터에 깔았다.     


 플로피 디스크에 복사한 황금도끼는 실행되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져 왜 안되는지 찾아보았다. 초보들은 바로 가기 아이콘이 게임 자체인 줄 알고 복사해 나는 게임 파일이 아니라 바로 가기 버튼을 복사해 온 것이다. 나는 황망해 다시 우성이 집으로 갔지만 황금도끼는 내 디스크로 복사하기엔 용량이 너무 컸다. 더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시무룩한 나를 보더니, 우성이는 황금도끼가 하고 싶으면 언제든 놀러 오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우성이 집에 두 번 가고 우리는 친해졌다. 이후 나는 우성이를 통해 만나는 친구의 범위가 넓어졌다. 우성이는 누구와도 잘 지내는 아이였다. 먼저 다가갔고 밝게 웃었다. 많은 아이가 막역하지는 않더라도 우성이와 가벼운 장난을 칠 정도였다. 나는 그런 우성이를 따라다니며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알아갔다. 그러다 우성이와 성민이가 마주쳤고 가까워졌다. 나는 성민이가 껄끄러워 거리를 뒀다.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더라, 퇴학당한 형들과 어울리더라 같은 소문이 들려오는 아이였다. 즐겁고 원만하게 흘러가도 침입할 수 있는 작은 틈만 생기면 어그러지는 게 중학교 생활이었다. 성민이의 존재가 균열의 시작일 수 있다는 불안감,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걱정과 달리 둘은 잘 지냈다. 무서운 소문이 있었지만, 성민이는 애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저 목소리가 컸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시끄러운 곳을 찾아다니는 까부는 말썽꾸러기였다. 우성이도 성민이와 어울리며 목소리를 키웠고 더 까불며 장난쳤다. 그러다 성민이의 장난이 심해졌다. 우성이를 슬쩍 찌르는 게 꼬집는 게 되고 어깨를 토닥이는 게 팔뚝을 치는 게 되었다. 성민이의 장난은 더는 장난이 아니었다. 폭력이 되어 있었다. 둘 사이를 지탱하던 친구라는 균형이 허물어졌고 우성이는 그걸 다시 돌리지 못했다. 잘 웃던 우성이의 얼굴은 굳어져 갔다.  

    

 어느 날, 우성이가 1층으로 같이 가달라고 했다. 전화할 곳이 있는데 나보고 옆에 있어 달라면서. 우리는 1층 중앙에 있는 공중전화기로 갔다. 우성이는 전화를 걸고 공손하게 말하다 잠깐 침묵했다. 무언가 말하려는데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와야 할 말인데 목에 걸려 나오지 않은 말. 우성이는 숨을 한 번 몰아쉬고 힘껏 그 말을 꺼냈다. “같은 학년 친구가 저를 괴롭혀요.” 첫 마디를 내뱉으며 눈물이 떨어졌다. 우성이는 매인 목으로 성민이가 자신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상세히 말했다. 나는 눈물이 떨어질 때부터 어찌할 바 몰라 옆에 서 있기만 했다. 다가가 위로한다거나 슬픈 표정을 짓지도 않고 그냥 서 있었다. 우성이의 눈물이 터져 나온 순간부터 생각이 정지해버렸다.

       

 IMF가 터졌다. 많은 친구의 집이 기울었고 학교는 조용해졌다. 우성이마저. 전화 통화 후 성민이의 괴롭힘은 줄어들었지만, IMF는 우성이 아버지의 사업을 무너뜨렸다. 어두웠던 우성이는 더 어두워졌다. 여기서부터 내 기억은 끊겼다. 우성이는 조용히 떠났고 우리는 같이 졸업하지 못했다는 것만 남은 채 우성이에 대한 기억은 너무 흐릿해서 파편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우성이가 버틸 수 있게 도와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기억이 사라진 건 아닐까. 

     

"아! 노우성! 진짜 오랜만이다. 중학교 이후로 처음이네. 잘 지냈어?"     

"응, 잘 지내. 난 카페 하면서 커피 원두 다루고 있어. 너는?"     

"나는 군대 갔다 공부해서 대학교 들어갔어."     

 "그렇구나, 좋아 보인다."     

 짧은 대화가 오갔고 커피를 받은 후 자리에 앉았다. 수년간 잊힌 이름과 얼굴이 방금 내 앞에 나타나며 전화기 앞에서 눈물이 쏟아진 순간이 떠올랐다. 무력해서 너무나 초라했던 내 모습까지. 나는 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 같은 친구를 꺼내주지 못했다. 미웠다. 내가 너무 미웠다. 생각을 잠깐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나에게 우성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친구였지만 도와주지 못해 기억에서 지워버린 존재. 기억이 불완전한 존재. 이런 걸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커피는 썼고 나는 일어섰다.      


"나 이제 갈게. 우성아, 다시 봐서 반가웠다."     

"명진아, 잘 가."     

 그 뒤로 우성이 연락처로 짧게 인사했지만, 우성이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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