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마이너 May 07. 2020

네 법대로 살아라!

전직 대형로펌 변호사의 발칙한 백수 생활기, 그 시작

<내 법대로 산다 - 봄 편> - 프롤로그






시작하기에 앞서 이 이야기는 어떤 희망찬 시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대단한 도전기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흔하디 흔한 퇴사일기로 읽힐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시작이라기보다는 끝에 가까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란 공모전 주제를 보자마자 딱 지금의 나를 위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달반 전, 나는 3년간의 로펌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어렵게 로펌에 입사했고 그 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돈도 많이 벌었고 유능하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이대로만 간다면 나도 상류층의 끄트머리 쯤에 편입될 수 있겠지... 그렇지만 그 곳에서의 삶은 이상하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10, 20년 후의 내 모습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다. 결국 몇 달간의 어려운 고민끝에 사직서를 냈다. 한순간에 연봉 1억을 받는 전도유망한 대형로펌 변호사에서 무소득 백수가 된 것이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사실 난 살면서 빈둥거림 없이 항상 어떤 목표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온 것 같다. 학창시절에는 명문대 입학을 위해, 대학교 시절에는 로스쿨 입학을 위해, 로스쿨 시절에는 로펌 취직과 변호사시험 합격을 위해. 운좋게 때마다 성취의 열매들을 맛보았고 내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뭐라도 된 것마냥 우쭐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그 대가로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생신을 챙기거나 친구들과 평생 갈 추억을 만드는 것과 같은. 그런 것들은 일단 성공을 한 다음으로 미루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심지어 변호사시험 두달 전 돌아가신 삼촌의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달려와서 서른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로펌에 입사했다. 로펌에 들어간 후에도 끼니를 샌드위치로 때우며 바쁘게 일했다. 야근은 당연하고 밤을 새는 날도 다반사였다. 쉬는 날에도 머릿속에는 업무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출근 준비를 하던 어느날 아침, 샤워를 하다가 시야가 흐릿해지고 물의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는 특이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고속도로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처럼 빠르게, 바쁘게, 너무 열심히 살아온 탓에 뇌 어딘가가 고장나기라도 한 것일까.




그러던 중 우연히 <월든>이란 책을 보게 되었다. 하버드 대학을 나온 수재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이란 이름의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2년 동안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한 후 그 생활을 기록한 책이다. 책을 읽다 다음 구절이 내 머리를 ‘탕’ 하고 쳤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젊은이들이 당장에 인생을 실험해보는 것보다 사는 법을 더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는가?


소로가 살았던 아름다운 월든 호수




나는 변호사로서 수많은 법지식으로 내 시간도 없이 고객들의 인생을 같이 걱정해주고 도와줬지만, 정작 내 인생을 사는 법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싶은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어디에서 살고 어떤 이들과 어울리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그저 세상 사람들이 떠드는 방법과 기준들에 순종하며 모범생처럼 그 길을 걸어왔을 뿐.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소로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인생을 건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 회사를 때려치고 당분간, 딱 1년만이라도 세상의 법이 아니라 나만의 법을 찾고 또 온전히 그 법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퇴사 후, 숲 속까진 아니지만 빌딩숲 강남에서 벗어나 옛동네 서촌으로 이사했고, 지금은 백수가 되어 반강제적으로 소박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평생 안 해보던 요리도 손수 해보고, 정처 없이 동네를 걸어보기도 하고, 길에 바보같이 멈춰서서 참새를 구경하기도 하고, 그간 멀어졌던 친구들에게 용기내서 먼저 연락도 한다. 마치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법을 하루하루 배워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생생한 과정을 이 곳, 이 글과 동명의 매거진에 기록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벗어난 이 샛길에서 나는 앞으로 어떤 것들을 마주치게 될까?

  이 길의 끝에는 월든과 같은 아름다운 호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것들을 내 여정에 기록하게 될까?

      기록하고 싶은 일도, 기록하고 싶지 않은 일도 일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이든지 나는 그저 '내 법대로' 살아갈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