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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이너 Mar 15. 2020

연봉 1억 대형로펌 변호사에서 백수로

미치지 않고서야...

<내 법대로 산다 - 봄 편> - 프롤로그






며칠 전 3년간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평일에 출근을 하지 않아 좀 헛헛한 마음이 들어도 아직은 긴 휴가를 받은 것처럼 퇴사라는 게, 내가 백수가 되었다는 게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여느 때처럼 아직 연결이 끊어지지 않은 회사 메일들을 나도 모르게 확인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좋든 싫든 회사와 이별해야 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대형로펌에 다니던 전도유망한 변호사였는데, 아니 그러한 알량한 자존심을 훈장처럼 갖고 살았었지만 이제 그러한 훈장은 반납해야 한다.  

작금의 현실은 100만 청년 실업자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 그것도 자발적으로. 


회사에서 퇴사를 하겠다고 고했을 때 선배, 동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당장 버거운 일에서부터 해방되니 일시적으로(웃음) 부럽다는 치기어린 반응부터, 그러한 용기와 패기가 멋있고 대단하다는 반응, 자기도 좀더 젊고 처자식이 없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텐데 하는 회한 어린 반응까지. 


그렇지만 가장 많았던 반응은 이 좋은 직장을 아무 대안도 없이 그만둔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고생해왔던 시간들이 아깝지 않느냐는 반응이었다. 그 말에 그간 3년 동안 고생했던 시간들이 머릿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이제 다 무슨 소용이람.  


주위 사람들의 그러한 반응은 사실 내가 퇴사를 고민했던 몇개월 동안 내 마음 속에서 이미 수차례 검토되고 엎어지고 재검토되었던 것이다. 많은 생각들 가운데서도 확실한 것은 나의 퇴사가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가히 미치지 않고서야 하기 힘든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내 말이 호들갑 떠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퇴사 전 과거 상태와 퇴사 후 현재 상태를 객관적으로 비교해보면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 더 와닿을 것이다.



<퇴사 전 과거 상태> 
- 4년차 대형로펌 변호사
- 연봉 세후 약 1억원
- 서울이 훤히 보이는 뷰를 가진 고급진 사무실 
- 주말 포함 삼시세끼 식비 지원, 휴대폰비 지원 
- 2~3년 후 유학 보장(학비 및 생활비 지원)
<퇴사 후 현재 상태> 
- 청년 백수
- 소득 0원 
- 식비, 휴대폰비, 생활비 다 모아둔 돈에서 까먹고 있음...




이렇다 보니 회사에서 퇴사할 무렵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나의 선택에 대해 그 사람들로부터 허락을 받거나 그들을 설득시킬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이 미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나의 퇴사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변들을 구상해야 했다. 그 FAQ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Q. 혹시 짤린 것 아닌가?


충분히 가능한 질문이다. 도통 이해가 되지 않으니 말이다. 김마이너가 회사에서 망나니질을 좀 하긴 했지만 해고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이 나를 보호했다. 즉 짤린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Q.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기 위한 것 아닌가? 


이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질문이다. 감사하게도 몇군데 오퍼가 들어온 적이 있었지만 이직을 위한 것도 아니다. 다른 회사로 이직할 생각은 지금도 전혀 없다. 


Q.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많나? 


뭔가 있으니까 나갈 수 있는 거라고 의심하던 선배들이 몇 있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슬프게도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고액연봉 대형로펌이라지만 3년 일하고 그런 경제적 자유를 취한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기대되기 어렵다.  


Q. 회사에서 혹시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나? 


내 주위에도 그런 케이스를 흔히 볼 수 있다. 회사에서는 일보다 인간관계가 더 어려운 법이다. 내 경우에도 같이 일을 많이 하는 선배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가 너무 일을 많이 시켜서 자기 때문에 나가는 것이냐며 조심스럽게 물어보기도 했다. 절대 아닙니다 선배님(웃음). 김마이너가 회사 사람들과 두루 잘 어울렸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수의 마음 맞는 사람들과 회사를 잘 다니고 있었다. 


Q. 흔하디 흔한 힐링 혹은 일탈을 위한 퇴사인가? 


힘든 회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아니면 일탈을 위해 퇴사를 하는 경우는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몇년 전부터 퇴사 열풍이 불고 있다. 주위 동료들도 퇴사 후 한동안 푹 쉴 수 있어서 정말 부럽다고 하지만, 김마이너가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퇴사하자마자 신나게 여행부터 다니며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을 터인데(물론 가고 싶어도 코로나 때문에 가지도 못한다) 어찌 지금도 회사를 다닐 때만큼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회사생활 4년만에 특이점에 다다른 것인가. 아니면 자기 전 즐겨보던 2005년 '무모한 도전' 이라도 따라하려고 하는 것인가.


김마이너가 그 좋은 회사를 뒤로 하고 자발적으로 백수가 된 이유는 따로 있다.

로펌에서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부럽고 멋있어 보일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거추장스럽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좀 해졌더라도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입는 것처럼 떳떳한 백수가 되어 사회가 아니라 나 자신이 제정한 '법'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김마이너가 사는 법, 퇴사의 이유,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진실된 기자와 같은 마음으로 차근차근 기록하려고 한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바쁘게 열심히 살아왔지만 왠지 모르게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되고 의문이 드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나의 선택이 좋은 방향일지, 나쁜 방향일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먼저 어떤 선택을 한 사람의 후일담 정도로 참고해주면 좋겠다.  


그럼 이 이야기의 시작은 대학교 복학생 시절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예고).


* 커버이미지 : 장 줄리앙의 일러스트

https://www.goodreads.com/book/show/30807005-modern-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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