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어색한 침묵이 있었다.
아내가 떠나갔다. 아이들 엄마가 이젠 없다.
아내는 긴 투병이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아이들도 장성했고 가정을 꾸려 예쁜 손녀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던 추억이 있었기에 아내의 삶은 행복했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미안한 감정과 아쉬운 나의 맘은 걷잡을 수 없었다.
아이들 앞에서 드러낼 수 없었지만 슬펐다. 아니 괴로웠다. 하지만 평안하게 세상을 떠나는 아내를 보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렇다 감사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나의 아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의 죄책감도 조금도 내려놓아졌다.
긴 투병기간이였기에 혼자 밥을 차려먹고 생활하는 것은 다를 바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누워있었지만 텅 빈 집이 날 삼켰다. 눈을 감았지만 내 머릿속은 폭풍 속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의 중심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어졌고 하루종일 탁구를 치며 시간을 보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서 편할 생활인데 아내가 투병하며 병원에 있을 때면 언제나 그렇게 지냈었는데 나의 삶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나의 친구는 나를 계속 불러냈다. 그렇게 여행도 다니고 모임도 시작했다.
그래도 나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나에게 아내가 얼마나 큰 위로였으며 의지였는지.... 아내가 살아있을 때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왔다.
그사이 아이들이 아침저녁으로 전화로 나의 안부를 묻었지만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냥 잘 지낸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내가 이겨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사이 나에겐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나를 챙겨주고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한두 번 만났던 사람인데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래서 모임이 있을 때면 같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였다. 세월의 조건이 여의치 않아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다.
만남이 잦아지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맘이 편하지 않았다. 난 홀연단신 나만이 아닌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직 아내를 그리워하고 그 안에서 살고 있기에 나의 이런 새로운 출발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다가 딸아이에게 큰 맘을 먹고 전화를 걸었다. 아들에게는 아직 말할 자신이 없었다.
몇 번을 망설였다.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어렵고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루기엔 그녀와의 사이가 점점 깊어져갔다. 맘이 커져갔다.
"여보세요? 아빠 무슨 일 있어?"
일과 중이던 딸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평상시와 같이 일상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나도모를 정적이 흘렀다.
"딸 아빠가 할 말이 있는데...."
말하다 보니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이미 만나는 사람이 있고 그 맘이 깊어졌다고 말하려고 했었던 건데 아이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그 말 대신 아이의 생각을 물었다.
"다들 만나보라는데 어떻게 생각해?"
비겁했다. 나의 마음을 말하는 대신 에둘러 말했다. 아이가 싫어할까 부정할까 무서웠다.
아이는 잠시 말을 흐리더니 말했다.
"좋은 사람이라면 아빠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괜찮지. 아빠가 행복하다면.... 그런데 엄마가 떠난 지 너무 얼마 안돼서 나도 생각을 못해봤어. 그런데 좋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흔들렸지만 나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았다.
부정은 아니었으니 그거라면 됐다. 생각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 한편이 편안해졌다.
아직 아들에겐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큰 산을 하나 넘은 느낌이었다. 오늘 밤은 조금은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