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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May 02. 2019

따뜻한 슬픔들

남화연<임진가와> 영상, 24 min 백남준아트센터 2019년 2월에

 그날 난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복잡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아침부터 두통이 심했다. 직접 주최한 전시였기 때문에 취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백남준 작가의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은 존재하지 않았다. 똘끼 충만한 (전위적인) 작가의 철학 세계를 감상하기엔 다소 집중력과 에너지가 필요했지만 그런 축복을 누릴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날 하루가 시간이 흐르듯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1층에 백남준 작가의 전시에서 다양한 작품이 존재했다. 붐비는 사람들을 피해서 2층으로 향했다.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영상작품이 많았는데, 우연히 다큐멘터리 <임진가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떤 의지로 그곳에 갔는가에 대해서 모르겠다. 단지 노래가 흘러나와 본능적으로 들어갔다. 혼란스러워도 음악은 귀에 선명하게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늑한 공간이 외부와 단절되어 있어 마음에 안정감을 주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작가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듣게 된 ‘임진가와’라는 일본 노래에서 한반도에 존재하는 ‘임진강’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가사에 쓰이게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되는 이 곡에 대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해방이 후, 그리고 다시 한국전쟁이 후, 분단에 대한 슬픔에 대해 노래한 이곡은 북쪽에서 불려진 노래다. 일본에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여전히 머물던 조선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타국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며 하천가에서 생활하곤 했는데 이때 이 노래가 그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를 우연히 들은 일본인들이 따라 불렀고, 제일 조선학교에서  도시바 레코드에서 일본어로 이 노래를 바꾸어 당시 가수 ‘더 포크 크루세이더스’에 의해 발매한다. 음반사에선 이 노래가 출처 없는 동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총련은 자신들 조국의 노래라고 항의서를 보내고 작사에 박세영, 작곡에 고종환이라는 명백한 출처를 밝히라고 한다. 이에 원작자를 밝히고 이 노래는 일본에 들려진다’


 한때 사상적 이유로 일본 내에서 금지곡이 되기도 한다. 이 노래를 추적하는 작가는, 도시바 레코드가 음반 발매를 하기 전에도 일본인들에 의해 불려진 것을 알게 된다. 인터뷰를 하는 일본인들은 이 노래가 구슬프고, 사랑의 감정이 느껴져 조촐한 술자리에서 이따금 부르곤 했다고 한다.


 노래 ‘임진강’은 그렇게 분단의 현실을 노래한 북쪽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구전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의 언어로 불려지고, 우리나라(남쪽)에서도 여러 가수에 의해 불려졌다. 노래는 국경과 전쟁과 이념을 초월해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암울하고 혼란스러운 현실들이 펼쳐진 순간에도 아름다운 멜로디는 어딘가에서 계속해서 누군가에 의해 퍼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끝나갈 무렵 이 노래가 다시 흘러나오는데 순간 영상은 암전 된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 보니 작가가 영상을 통해 전하지 못한 감정이 무엇인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파편화된 슬픔들이 어둠 속에서 완전히 하나가 되는 듯했다. 노래는 그렇게 내 안에 들어와 다시 한번 생명을 이어갔다. 그날 다가온 슬픔이라는 것은 지쳐버린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어떻게 슬픔이라는 것이 그렇게 따뜻할 수 있었을까. 뜨거운 것이 눈에 번졌다. 어둠 속에선 누구에게도 그 모습을 들키지 않았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콧물을 훌쩍 거리며 장막을 걷고 나왔을 때, 내 하루는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임진가와_이랑 (작가 남화연의 다큐멘터리를 위해 제작됨)

https://www.youtube.com/watch?v=qhBQinebAp0


임진강_양희은

https://www.youtube.com/watch?v=qxVW-aMwbqo


임진강_포크 크루세이더스


https://www.youtube.com/watch?v=M6I7byV5Zu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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