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환기재단 40주년>환기미술관_2019.7.7
거의 반년만에 환기미술관을 다시 방문했다. 두 번째 방문이었다. 깊은 인상을 준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관람자에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환기 미술관의 특별함은 거기에 있다. 늘 존재한다는 것. 경복궁 역에서 부암동으로 가는 버스 밖 차창 풍경에는 몸을 낮춘 건물들 위로 푸른 하늘이 선명하게 뭉게구름을 수놓고 있었다. 더운 날씨였지만 설렘을 주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개관 40주년 기념 전시에는 작가의 후기 작품들이 많았다. 그가 삶의 황혼기에 이룩한 점묘화 스타일이 주는 적절한 긴장감과 그 이전에 그렸던 구상화의 편안함이 뒤섞인 미술관 풍경은 시각적인 휴식을 가져다주었다. 그동안 몸에 지니고 있던 보이지 않던 긴장감과 피로감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 조카들의 그림을 선물로 받았다. 거기에는 끝없이 펼쳐진 무질서와 아이의 욕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동심이라는 것은 너무도 복잡해서 때론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혼란을 주기도 한다. 김환기 작가의 구상작들이 주는 편안함은 뭔가 달랐다. 그것은 누군가 정성스럽게 마련해준 휴식의 공간이었다. 작가의 삶과 의식, 무의식,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온 것이다. 그래서 느껴진 편안함에는 어떤 숭고함이 존재했다.
빼곡한 점들로 이루어진 그림들 또한 위압 감 없이 편안했다. 1층에 노란 배경의 그림 속에는 제각각 인듯한 네모가 수놓아져 있었다. 불규칙한 점들은 커다란 캔버스 속에서 더욱 익살스럽고 다정했다.
3층에 전시된 커다란 작품은 거대한 자연경관을 맞이했을 때의 감흥을 그대로 안겨 주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끝없이 포개진 산, 부서지는 파도와 무심히 떨궈지는 나뭇잎의 형상이 생각났다. 지치지 않고 자라나는 풀들과 쉼 없이 이어지는 생명력이 느껴졌다. 세밀하게 펼쳐진 파란 점의 반복은 저마다의 변화를 머금은 채 일렁였다. 자연은 늘 어제와 같은 듯 존재 하지만 언제나 변화의 순간에 있다. 그림 속에서 그런 자연을 느낀 것은 점 하나하나의 변화 때문인 듯했다. 움직이지 않지만 군집을 이룬 점들이 살아있는 듯한 우아한 동작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던 것 같다. 그 사이 많은 관람객이 오고 갔다. 그림을 보는 그들의 뒷모습이 그림과 포개질 때 그것은 다양한 표정으로 일렁였다. 젊음의 생동감이, 중년의 중후함이, 연인의 아름다움이, 고독한 그의 모습이, 요란한 수다스러움이 모두 그 안에 존재했다.
별관에는 김환기 작가의 글귀들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작가의 점묘화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무수히 많은 별 중에 하나가 나를 바라본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내가 그 별을 바라본다'
김환기 미술관은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미술관 주변 풍경이라도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곳곳을 촬영했다. 본관을 나오는 길에 보도블록 위에 나무 그림자가 새겨지면서 왠지 모르게 김환기 작가의 그림을 연상시켰다. 자연을 넘어 우주 저 멀리 수놓아진 그의 점들이 사실은 아주 가까이에서도 존재했던 것이다.
나중에 그를 다시 만날 땐 어떤 모습일지 헤어지는 순간에 궁금해졌다. 조만간 다시 그를 만나러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