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대신에
현대인이라면 가벼운 정신질환 하나쯤은 누구나 있다고 했던가. 심리치료나 심리상담을 받는다는 사실을 오픈하는 사람들이 요즘은 꽤 많이 보인다. 마음에 감기가 걸리는 것과 같다고 상담받아보라는 말, 마치 상담이 만능 치료제인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나는 심리상담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상처받았다고 느껴졌다. 내담자와 상담자의 관계도 인간관계이니 잘 맞는 사람이 있고 잘 맞는 상담기법이 있고 케바케 겠지만 말이다.
문진표를 채우기 위한 무의미한 질문만 받았던 상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상담사가 원하는 답변만을 유도받았다고 느껴졌단 상담, 나의 말을 계속 끊으며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제받는다고 느껴졌던 상담, 특정 치료법을 계속 강요받았던 상담,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상담사에게서 똑같은 언행이 보이는 상담...
물론 심리상담이란 것이 어떤 문제가 있으니까 내가 찾아간 것이고, 상담 과정도 기록으로 남기고 문서화해서 정리해야 하니 일련의 순서가 있겠지만... 당시의 나의 상태로는 큰 용기 내서 상담받으러 간 것이었는데 상당히 거부감 느껴지면서 마음의 문이 꽁꽁 닫히는 기분이었다.
물론 좋은 분도 계셨다. 한국 문화를 잘 모르니 설명해주면 이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해주신 분, 나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쭉 들어주셨던 분, 내가 말 한마디 못 꺼내고 있어도 괜찮다고 해주신 분...
그러다 한 줄기 빛처럼 한 결혼 수업을 듣고 마음의 문이 녹아내렸다. 서포트 그룹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민을 나누고 응원해주는 그런 공간이었다. 다들 비슷한 상황이라 어떠한 편견도 평가도 없이 내 감정과 사고를 인정받고, 슬픔도 고통도 모두 공감받을 수 있었다.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잘 들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정말 큰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전 상담에 불만족스러웠던 이유는 내가 원하는 상담 방식이 있었는데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옛날에 받았던 상담은 내가 들을 준비가 안돼 있어서 오히려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상담사 잘못이 아니라 내가 못 들었던 것.
상담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듣고 싶었던 위로의 말들, 하고 싶었던 자잘한 이야기, 그리고 상담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결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아야 한다.
대면 상담, 화상 상담, 텍스트 상담, 어플 상담, 영어로 한국어로... 이리저리 나와 맞는 상담사를 찾아 떠돌았다. 하지만 당연히 나와 딱 맞는 상담사를 찾기는 어려웠고 비용도 점점 부담이 되려는 순간, 시기적절하게 나는 기분이 나아져버렸다.
비법은 바로 셀프케어. 나 스스로를 돌봐주고, 내 마음을 내가 헤아려주고, 내 감정을 나에게 털어놓고, 내가 듣고 싶은 위로를 나에게 말해주고, 하고 싶은 일들을 내가 이루어주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치유받았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나는 글을 썼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도, 치부도, 단점도, 후회도 모두 써 내려갔다. 어차피 내가 읽을 테니까 눈치 볼 것도 숨길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전부 드러낼 수 있었다. 나중에 또 이 글들을 보면서 내 마음을 정리하고 내 생각이 변한 것을 느끼고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깨달을 수도 있으니까.
작년 초,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영어로도 400장 가까이 적었었다. 그 일기를 책으로 만들어서 남편에게 내 마음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과거에 몰랐던 일들이나 나에게 알리지 않았던 남편의 입장을 알고나니 그 글들이 정말 아무 의미도 없게 느껴졌다. 내 진심을 쏟아내서 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위한 글이 아니라 남편을 위한 글이라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 내 글이 엉망이된다. 내 글은 내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남의 이야기를 따라하면 더이상 내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 생각 내 감정 내 의견 모두 내 언어의 틀 안에서 만들어진다. 내가 최선을 다해 내 마음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해 한다면 이 세상 전부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 나의 경험,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곳이 분명히 있다. 내가 뭔가를 해낸다면, 내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수십번 실패해도 다시 도전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이 안되면 다른 방법으로, 한 곳이 안되면 다른 곳으로, 한 사람에게 거절당하면 다른 사람에게, 지금이 안되면 나중에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딱 맞춘 셀프 심리상담. 상담사나 타인에게 기대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방식이 내가 원하는 데로 척척 진행되지는 않는다. 어쨌든 결국 다 내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변화를 기록하고 발전하는 모습에 용기를 얻기 위해 쓴 글들을 이 브런치 북에 모았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실시간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틀린 생각도 많고 고쳐야 할 부분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스스로 발견하고 깨닫는 것에 의의를 두고 그 과정을 기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