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단무지, 효도를 잇는 셀프서비스
2020년 4월, 당시 나는 응급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한 나는 자칫 쉽게 죽음에 대해 생각했지만, 사실 실행할 수 있는 용기조차 없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한 달, 두 달을 보냈다. 처방받은 약은 생명유지장치처럼 밤에는 잠이 오게 해 줬고 낮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도록 해줬다.
천조국의 우울증은 스케일도 달라서 약물중독자도 많고 노숙자도 많고... 또 상상을 초월하는 인간관계도 많아 폴리아모리나 오픈 메리지 등등 모두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으니까.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 정상인이라 느꼈는데 이곳에서는 내가 정신병이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게 숨 막히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숨은 막혀도 나는 계속 숨을 쉬고 있었다. 일어나기 싫어도 아침이면 눈이 떠졌다. 삶은 계속된다. 나는 오늘도 살아있었다. 절망적이었지만 또 하루가 갔다. 그렇게 똑같은 날이 반복되었다.
의사 선생님의 처방 하에 약물치료를 중단하면서 더 이상 그 선생님께 진료받을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처방은 이랬다.
Be realistic
Stay active
Take care of yourself
상담이 끝나고 이 처방을 받고 얼마나 허무하던지... 이 처방을 받으려고 그 비싼 상담료를 들였나? 이건 나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건데? 알고 있지만 할 수 없다고 느껴져서, 그만큼 절실해서 상담을 찾은 건데...?
더 자세한 내용도 있었다.
작은 일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
고립하지 않고 주위 사람에게 상태를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중요한 결정은 잠시 뒤로 미루기.
시간이 걸리지만 분명히 나아질 것. 인내심을 가져라.
충분한 수면, 건강한 식습관, 정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약 복용하기. 알코올과 마약 금지.
그렇게 헛된 기대를 안고 상담을 여러 번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상담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상담에서는 단순히 길을 제시해주실 뿐이고, 결국 내가 극복해야 할 일이었다. 내 의지가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정말 소름 돋게도.
우울감에 허우적거렸던 것도, 우울증에서 빠져나와야 할 사람은 나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하는 것도 나였고, 우울증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나였고, 감정적인 독립과 주체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나였다. 내 결혼이 행복하지 않다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걸어 나가야 했던 것이었다.
누군가가 곁에서 나를 살뜰히 챙겨주며, 함께 영화도 보러 가주고, 외식도 나가고, 운동도 같이 해주고, 모임에도 데리고 가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아무도 안해주면 내가 해야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잘 될 수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은 좋아질 것이다. 내가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나의 감정은 풍부해질 것이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나의 세계가 커질 것이다.
사실 인생 물 속 깊숙히 빠져서 숨 쉬기 조차 어려울 때는 아무 소리도 안들리지만 수면 위로 코만 빼꼼히 나와도 아 그 때 그런 의미였구나 하고 그 이야기가 이제야 들린다. 그런 수 많은 조언과 충고와 위로들은 소리로 울림으로 남아 이제야 내 귀속으로 들어온다.
인생은 셀프. 우울증 극복도 셀프. 그렇게 다들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