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을 수 없는 이유 2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좋을까?
당연히 둘이 잘 맞고 서로를 잘 이해하는 관계라면 최고겠지만 말이다. 만약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것 같다. 그게 배려고 센스라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반하기도 하고,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면서 나도 행복해지는 그런 관계를 추구하는 것 같다.
모두가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99번 잘해주다가도 한 번 못해주면 평가절하되니까.
한국에서는 다수가 공감하는 정서가 있다 보니 그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다행인 것 같다.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잘했다 못했다의 경계가 어느 정도는 통용되는 기준이 있으니 보편적인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안 하는 것으로도 중간은 가는 듯... 맞나?
그런데 정반대 방향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것을 기쁨으로 삼고 사랑 표현의 방식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고 싶어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장소를 소개해주고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공유했으면 좋겠는 그런 마음.
물론 사랑하는 마음이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나뉠 수도 없고, 둘 다 아우르는 그런 감정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둘 다 맞다. 뭐가 더 낫고 뭐가 더 잘 맞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테고 각자가 원하는 게 있거나 마음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장점만 보다가도 단점 하나 때문에 결국 헤어질 수도 있고, 단점이 수도 없이 많은데도 장점 하나로 커버칠 수도 있으니까.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내가 원하는 것만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색깔이 없으니 매력 떨어질 수도 있고, 취향도 많고 구체적이라 내가 원하는 것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보면 내게 맞춰주는 사람의 배려심에 다시 한번 반할 수도 있고, 상대가 좋아하는 구체적인 것이 있다면 선물 주거나 칭찬하는 데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 편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 취향 덕분에 나의 견문을 넓힐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 아휴. 사랑하는 방법에는 정답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걸 주는 것? 상대가 좋아하는 걸 주는 것? 다 사랑하니까 주고 싶어 하는 것 아니겠느냐. 아무튼 그래도 내가 이렇게 머리 쓰며 고민하는 이유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어서 그렇겠지.
그런 의미에서 남편(포함 시댁 가족)은 철저하게 개인주의이다. 자신의 감정에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당연한, 상대의 어떤 행동이라도 그것은 개인의 선택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어찌 보면 정말 대단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아오면 저런 쿨병(?) 냉혈한(?)이 자연스러워질까? 심리상담가인 어머니가 키우셨으니 미국인들 중에서도 특별히 더 독립적인 케이스인 것일까?
자신의 자유와 권리, 자신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기본인 남편은 상대의 자유와 권리, 인정과 존중을 해준다. 아내에게도 마찬가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내가 상처를 받았어도 자신의 자유는 자유고, 상처를 받은 나의 감정도 존중해주고, 왜냐 그것은 나의 선택이니까. 나의 자유의지이니까.
그 대신 내가 힘들고 괴로워할 때 조용히 동요나 자장가 캐롤을 불러준다. 내가 내 감정을 스스로 해소할 수 있도록. 그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것일까? 어릴 때 부모님이 그렇게 위로해준 것일까?
사실 한 개인이 상대의 신념이나 행동을 바꾸려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내가 본 드라마나 내가 겪은 사람에 한에서는, 상대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며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는데...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며, 그것도 못하면서 무슨 연애나 결혼을 하냐고. 그런 자발적인 희생이 자연스럽고 나만큼 상대도 희생한 것을 아니까 서로 고마워하며 위해주며 사는 그런 모습을 생각했는데. 남자라면, 연장자라면, 남편이라면, 어른이라면 뭐뭐 해야 한다는 생각도 결국 강요였던 것일까? 누군가를 틀에 맞춰서 바꾸려는 욕심이었을까?
그냥 내가 나 스스로를 희생했으면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이 없으니 내가 견디기 힘든 것일까? 그게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었나? 나는 남편에게 맞춰서 남편이 원하는 것을 주는데, 남편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니 우리 관계는 모두 남편에게 맞춰져 있는 것이었다. 나는 누가 생각해주나 내가 원하는 건 신경도 안 쓰나 하면서. 내가 원하는 걸 나도 모르면서. 내가 원하는 삶은 대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