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Jun 15. 2022

낄끼빠빠, 어디까지 해봤니?

낄 데와 빠질 데의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낄끼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의 줄임말로 분위기 파악을 하고 융통성 있게 행동하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신조어.


요즘 나의 가장 큰 생각거리. 시간이 많으니까 이런저런 잡다한 상념에 잠긴다.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얼마만큼 말해야 진심이 전달될까? 어떻게 해야 꼰대, 오지랖, 진지병, 설명충, 십선비, 프로 불편러,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그런 꼴불견이 안 될까?


그러니까 대놓고 진상 부리는 이런 거 말고. 누군가에게는 선을 넘는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이제까지 내가 있었던 환경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새로운 환경에서는 욕먹을 수도 있다는 걸 상상도 못 할 그런 애매모호한 회색지대 말이다.


예를 들어 한 토크쇼에서 소개됐던, 학부모 모임에서 전업주부 어머님들께 명함을 돌려 자녀가 왕따 당했다는 한의사의 일화처럼. 특강쇼에 나왔던 것처럼 자식이 좋은 대학교에 입학해서 한턱 쏘는 자리에서 안부차 질문했던 다른 사람의 자식이 더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고 대답해 버리면 찬물을 한 바가지 붓는다는 이야기처럼.


또는 어차피 안 입는 옷을 지인에게 염가에 중고로 팔았는데도 고맙다고 밥 한 번 산 적 없다는 험담이나, 거절하지 않고 부탁을 계속 들어주면서 그런 부탁을 할 생각 자체를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불평하는 상황 같은.


그런 상황을 잘 대처하고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입담이나 말솜씨가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선은 어디에...


어느 집단에서 정해진 규칙이 있다면 그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서 당연히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정해진 규칙보다는 상식이나 눈치, 센스, 싹싹함, 예의, 배려 등의 무형의 성격으로 판단되는 거라면, 과연 그 선은 어디일까? 상대의 기분에 따라,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당시의 구성원에 따라 매번 바뀐다면, 그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상대에게 얼마나 이야기하는 것이 적당할까?


예를 들어 법을 어기는 상황이라면 말해줘야 할까? 내가 경찰도 아닌데. 벌금 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언질을 줘야 할까? 안 걸리면 상관없는데...


섬세한 문화 차이를 이야기해 줘야 할까? 내가 그 문화의 전문가도 아닌데. 문화라는 것 자체가 케바케 사바사일 수도 있는데. 그리고 상대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보다 자신의 문화를 고수하는 것을 선택했을 수도 있는데.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고쳐줘야 할까? 사소한 주제라면 굳이 알아도 인생에 큰 변화가 없지 않을까? 자잘하게 팩트라고 알려줘 봤자 의미가 있을까? 그 사람이 사실을 알고 싶어 할까?


더 효율적인 방법, 내가 효과를 봤던 방법, 너무 좋아서 강추하고 싶은 서비스, 좋은 물건을 싸게 득템 할 수 있는 곳... 알려주면 좋을까? 사실 나에게만 좋았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필요도 없을지도 모르는데 말해줄 필요가 있을까?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고민을 말했을 때, 좋은 해결 방법을 알고 있다면 공유해야 할까? 괜히 부담 주는 건 아닐까? 어쩌면 본인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을 수도 있으니까.


아주 미세한 차이로 잘못 이해하신 내용을 바로 말해 알려드렸는데,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나중에 혹시나 그것 때문에 원하는 사항을 이루지 못하거나 불이익을 보게 된다면 어떡하지?


실제 내가 썼던 모든 정보와 자료를 공유해드렸는데, 각종 이유로 다 확인해보지 못하고 계속 모른 채 계신다면? 내가 시간을 조금만 더 들여서 요점 정리하고 중요한 부분 알려드렸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무슨 일이든 어차피 자신의 인생이니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도와줄 수 있다면 먼저 손 내밀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에이, 이미 다 잘 알고 계시겠지. 괜히 오지랖 부리지 말자.'


그렇게 아무 말 안 하고 방관하면, 그럴 때마다 정말 얄궂게도 그분께서 "나는 몰랐는데 이러이러해야 해서 못했어" 하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주신다.


한참을 고민하면서 시간을 한참 흘러 보내고 어떤 분께 자료를 공유드렸을 때는 "진작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답변을 듣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 오지랖이더라도 알려드릴걸! 하는 후회가 몰려오지만 이미 때는 늦었지.







모난 돌의 특별함


상대에게 강요를 해서 상대를 바꾸거나 고치려고 한다면 오지랖일 수도 있다. 그러나 로켓단의 명언처럼 "묻는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일까? 그때에도 얼마나 대답해야 좋은 걸까? 상대가 듣고 싶어 할 말만 대답하는 게 맞는 걸까?


그래도 "이건 이거야" 말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알려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몰라서 어떤 행동을 했는데, 내가 이유도 모른 채 잘못을 하고 있다면, 알려주면 바로 고칠 것이니까. 그렇게 쉽게 문제 상황이 해결될 텐데, 내가 민망할까 봐 안 알려준다면... 그건 누구를 위한 배려일까?


"도움이 필요해?" 라고 물어봤을 때, 거절한다면 당연히 오케이다. 그런데 거절을 안 하고, 이건 이래서 못하고 저건 저래서 못하고 결론적으로 안돼... 라고 하면서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못한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다른 방법도 많은데 계속 알려줘야 할까? 혹시 도움을 받기가 싫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데 진짜 애매하게도... 상대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청했고 나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해도 어디까지가 적당할까?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알려주면 되는데 말 한마디 안 하고 뚱해 있다면 내가 알아서 설설 기어서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 스무고개로 알아내야 하는 걸까?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우리의 특별한 성격, 각자 다른 생각과 감정, 스스로 정의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 등이 모두 깎여진 것 같다.


유행은 국룰이 되어 사회 전반적으로 획일화되고, 성공의 '공식'에 맞춰 살아가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되고, '정답'이 있으니 그 외의 답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믿음이 생긴 것 같다.


집단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은 삼가고, 다른 사람들의 수준에 자신을 맞춰 겸손해야만 하며, 타인이 말하기도 전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서 준비해주고,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속으로 참고.


각자의 개성을 서로 존중하며 맘껏 뽐내며 살 수는 없을까? 남의 눈치를 꼭 봐야만 할까?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왜 흔들려야 할까? 왜 거절은 해도 안되고 받아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됐을까?


어쩌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삼키고, 보고 싶다는 표현 사랑한다는 표현도 참고, 진심을 전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이 된 걸까? 어쩌다가 돌려 말하기, 내가 원하는 답변을 이끌어내는 식의 대화를 비비 꼬아서 하게 된 걸까?




내가 속으로 뭔가를 생각하거나 느꼈을 때,  같은 생각과 감정을 옆사람이 나에게 말해줬을 때! 마음이 통했다는 유대감이 형성된다. 그 짜릿한 공감! 찌찌뽕의 순간! 한층 더 가까워지는 관계, 웃음을 나누는 순간... 하루의 그런 한 장면 한 장면이 나는 참 좋다.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 사전 에 따르면 '오지랖이 넓다' 는 표현은 남을 배려하고 감싸는 마음의 폭이 넓다는 것도 의미한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방관하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무시하거나, 별 일도 아닌 거 가지고 유난 떤다고 치부해버린다면... 안 그래도 힘든 세상 너무 각박한 세상이 될 것 같다. ㅠㅠ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낙화> 이형기


관련 숙어로 1절만 하자와 손뼉 칠 때 떠나라가 있다고 한다. 물론 본인이 스스로 원해서 떠난다면 최고의 상황이겠지만 눈치에 분위기에 떠밀리듯 사라지는 거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취업포털에서 조사한 직장인들이 사내 왕따를 당하는 이유 중 1위가 눈치가 없고 답답한 성격이라고 한다. 조직에 어울리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조직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해서, 텃세 문화가 심해서 등등...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 문제로 왕따를 당하다니/시키다니 너무 유감이다.


그게 결국 사회에서 배제시키고, 차별하는 게 아닐까? 개성을 죽이고, 남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기는 삶을 살아야 하다니. 이게 사회 전반에 걸쳐 공유되는 정서라면 조금은 섬뜩하다.


선인들의 "애는 착혀~" 하는 이해심이 조금은 필요할 때가 아닐까...?







내가 브런치를 쓰는 이유


상대가 나에게 한 말과, 상대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밝혔던 그의 선호도가 또 달라서... 그냥 내가 받아들이기에 모순인 것이지 실제 상대의 마음은 나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  쓴 글.


그래도 나에게 직접 해준 말을 믿어야겠지.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나에게 솔직하게 말해줬을 것이라고 믿어야지. 그리고 나도 진심을 다해 행동했으면 충분하다고.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내가 통제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나의 내면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살다 보니 이런 얘기할 친구가 곁에 없어서. 쭈굴쭈굴한 나를 전부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나 혼자 동네방네 떠드는 독백.




쓸데없는 잡생각에 어젯밤에도 깝깝했는데 처음으로 받은 연락! 너무 감격이라 쭈구리될 때마다 댓글이랑 쪽지랑 모아놓고 봐야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https://brunch.co.kr/@kim0064789/102


https://brunch.co.kr/@kim0064789/252


https://link.inpock.co.kr/loveyourlife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특별함을 타인에게 허락받을 필요는 없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