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홍이 Sep 03. 2022

시어머니 문자에 답장해달라는 남편의 부탁을 받고

국제부부도 피해 갈 수 없는 단톡방의 사슬

7시 45분, 사무실로 출근해서 책상에 앉았습니다.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마시는데, 오늘따라 커피가 쓰네요. 




올여름도 남편은 혼자 시댁에 다녀왔습니다. 만사에 느려 터진 남편은 비행기로 7시간 걸리는 시댁에 가는 계획도 대충 1-2주 전에 표를 사거든요. 한국사람 8282인 저는 두세 달 전부터 여름 계획을 싹 다 세우는데, 두세 달 앞도 못(?) 안(?) 보는 남편은 제게 시댁 가자는 말을 안 했기 때문이죠.


변명을 하자면 저에게도 함께 가자고 했으면 갔을 텐데, 다만 두세 달 정도 미리 말해줘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했어요. 뭐든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하는 남편이 그렇게 미리미리 준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만큼 남편에게 중요하다는 뜻이니까요. 어쩌면 그 정도 정성을 보여야 내가 가주겠다는 저의 오만함일 수도 있고요.


물론 저도 한국 친정에 갈 때 남편에게 같이 가잔 말은 안 합니다. 이게 진정한 반반 결혼인가요 ㅎㅎ 삭막한 것 같기도 하지만 서로 마음 편하게 서로에게만 딱 집중할 수 있으니 오히려 저희 사이는 더 좋아졌어요. 아니, 더 좋아졌다는 저만의 착각일 수도...







제가 느끼기에 저희 시댁은 사람 좋아하고 북적북적 거리는 분위기 좋아하고 집안으로 손님들 초대해서 함께 시간 보내기 좋아하는 그런 따뜻한 가정입니다. 미드 프렌즈 느낌? ㅎㅎㅎ 회사 동료도 상사도 집으로, 제자도 집으로, 먼 친척 가까운 친척도 집으로, 부모님 친구도 아들 친구도 집으로, 사돈과 사돈의 팔촌도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그런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환경에서 자란 남편도 사람 참~ 좋아합니다. 친구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고, 자신이 도움 될 수 있는 일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회사에서도 어디 위원회 어디 모임 자리 하나씩 꿰차고 있어야 하죠. 




철이 없었죠, 며느라기가 좋아 시댁에서 부엌데기를 하다니.




다만 시댁 포함 남의 집에서 자는 거 싫어하고, 친구 폭이 좁고 깊은 제가 불편한 게 문제였죠. 


무려 20년 전 남편이 다녔던 고등학교의 선생님과 과학 선생님 부부께서 아들 며느리 내외와 함께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 찾아뵙고 함께 관광가는 것 까진 이해 했어요. 하지만, 마땅히 앉을 곳도 없어 바닥에 앉아야 되는 저희 단칸 신혼집에서 차라도 한 잔 대접해드려야 하는 건 이해가지 않았어요. 이 좁디좁은 집에서 뭐하는 짓인지, 어른을 모시는 자리니 차라리 근사한 레스토랑을 함께 가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저는 생각했죠. 아 물론 기숙사 학교였어서 선생님과 제자 간의 사이가 돈독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 좋아하는 남편, 저에게도 인사 한 번 대충 시켜주고 이제 친구 친구 하라는데 저도 만만치 않게 낯가리는 사람이라 남편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죠. 시댁에 가도 저희 부부만 쓸 수 있는 문 달린 침실이 없다면 근처 호텔에서 자고 싶다는 저와 시댁에서 자고 오자는 남편과의 갈등도 있었어요. 


웃긴 건, 시부모님은 아무 신경도 안 쓰시는데, 남편이 고집에 고집을 부려서 결국 저는 안 가는 것으로 결정해서 아직까지도 안 가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생각이 있긴 한 건지 모르겠지만요, 제가 가든 안 가든 어차피 아들은 본인이니 혼자서라도 가서 셀프 효도 많이 하고 오는 것 같아요. 악의를 가지고 며느리 부려먹겠다는 마음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기도 합니다.




정신 못 차리고 퍼다 주기만 하다가 본인만 허송세월 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까요?

그 시간에 자기 취직이나 하지 하는 저의 눈빛 공격을 의식했기 때문일까요?

현실 파악 100% 효율성 200% 안정성 300%. 

되는 것만 하는, 빠르고 즉각적인 성취를 추구하는 저와 7년을 함께 하면서 영향을 받은 걸까요? 


요즘 남편은 정신 차린 것 같아 보였습니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몇 년을 끌어온 일을 드디어 실행에 옮기는 것 같아 보였어요. 그렇게 저는 남편도 정신 차렸겠다, 시댁 스트레스 안 받고, 우리 둘의 결혼 생활에도 만족하며,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어요.




https://brunch.co.kr/@kim0064789/301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저는 시댁과 연락을 끊은 지 2년 만에 다시 시어머님의 단톡 문자에 포함되었습니다 ㅎㅎ 


남편이 꿈꾸는 가족은 하하호호 화목하고 러브러브 사랑이 넘치는 그런 모습이란 걸 알고는 있었어요. 


제가 봐온 시댁의 모습도 상대가 누구든 정말 애정과 관심으로 감싸주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제가 남편과 연애시절에도 인종차별 없이 환영해주셨고, 저와 미국에 살고 있는 제 동생들도 집에 놀러 오라고 초대해주시기까지 하셨죠. 남편의 친구도 여사친도 전여친도 당연히 초대하셨겠고, 동생의 여친도 전여친도 전여친의 현남친도 모두 초대하셨었어요. ㅎㅎㅎ 


한국인의 정과는 조금 다르죠? 정말 정이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




시댁 단톡방과 우리 집 단톡방




사건은 며칠 전, 시어머님의 단체 문자에 남편이 답장을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사 온 핸드폰을 쓸 때는 음성메시지나 단체문자 기능이 없어서 개별 답장밖에 못했었거든요 ㅋㅋㅋ 그런데 미국에서 핸드폰을 바꾸니 전화를 안 받으면 음성메시지를 남기시고, 단체 문자도 보낼 수 있게 됐어요 ㅜㅜ 그리고 그런 사실은 남편은 또 귀신같이 알고 있죠. 딴 건 백번 말해줘도 모르면서.


그 단체 문자에는 저와 남편, 시동생과 여친이 포함되어 있는데요. 답장을 '부탁' 받으면서 간장종지인 저의 마음에 돌이 하나 던져졌어요. 


시동생도 답장 안 하는데, 내가 왜? 

답장을 하려면 자식이 해드려야지, 왜 나한테만?

남편이 답장했으면 됐지, 굳이 나까지?

자기도 우리 부모님께 연락 안 하면서, 내. 가. 왜.?.




그래서 저도 남편에게 쏘아붙였어요. 


당신 동생도 답장 안 하는데, 나한테는 꼭 답장하라고 하네.


그러자 남편이 하는 말


네가 답장해주면 엄마도 좋아하실 거야. 

엄마에게는 큰 의미이자 행복이니까.

그리고 먼저 연락 주셨는데 답장하면 좋잖아.


그 대답을 듣고 저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어요. 




연락을 주고받는 건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인데, 저는 본질을 보지 못한 거죠. 저는 제가 또 상처받을까 봐 상대의 행동을 속단하고 있었어요. 


언제 또 상처 줄지 몰라

지금 이것도 밑밥 까는 거 아니야?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고!


(물론 어른에게 먼저 숙이고 들어가라 사과해라 며느리니까 이래라저래라 하는 그런 시댁과는 다른 문제라는 거 오해 없으시길) 


그래서 아쉬울 것 없는 시어머님께서 선의로 먼저 연락하셨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거죠. 물론 어머님께서도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먼저 손 내밀어 주신 것일 수도 있어요. 당신 친딸도 아니고 남의 집 딸, 그것도 태평양 건너온 동양인 여자가 얼마나 딸처럼 느껴지겠습니까만은, 어른이니까 감정 상하기 보다는 화해를 선택하신 거겠죠.




그런데 그 와중에도 저는 명분을 찾고 있었어요.


우리 집 단톡방에는 부모님과 우리 밖에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초대된 단톡방이 많아?

너는 내 동생들 연락처도 모르면서 내가 시동생이랑 이미 헤어진 전여친까지 알아야 돼? 

너는 우리 부모님께 얼마나 연락한다고 나에게 답장을 하라고 해? 

너 저번에 우리 엄마가 용돈 주신 거 감사 인사도 안 했으면서?

너는 하는 것도 없으면서 나한테 바라는 게 많아?







반면에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한 명분은 간단했어요.


옳은 일이니까

좋은 일이니까

맞는 일이니까


친구에게 또는 누구에게든 친절하면 좋으니까

지역사회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옳은 일이니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도와주는 게 맞는 일이니까




남편은 항상 길에 버려진 쓰레기도 줍고, 회사 탕비실 싱크대에서도 음식물 거름망을 깨끗하게 치워놓는 사람이었어요. 


치우면 깨끗하고 좋잖아.

누가 치우면 어때, 어려운 일도 아닌데.

누군가가 먼저 치워두면 다른 사람들도 깨끗하게 쓸 거야.


이런 남편의 마음가짐이 정말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저는 아 다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더럽게 쓰냐,

내 쓰레기도 아닌데 내가 왜 치워?

라고 생각하면서 제가 쓴 부분만 쏙 닦아두고 나왔거든요.


오늘 아침에 문득 그랬던 옛날의 남편이 생각났어요. 







결국 세상을 살리는 것도 그런 선한 영향력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기꺼이 해주는. 

돈 때문도 아니고 명예 때문도 아니고, 

순수하게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요.


제가 노숙자의 타깃이 돼서 공격을 당하고 있을 때, 

쳐다만 보고 있는 사람들과 직접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들의 차이


제가 수영하다가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 대고 있을 때,

내가 있는 곳까지 헤엄쳐 와서 나를 끌고 나가준 사람의 수고


어쩌면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제가 자꾸 명분을 찾고 시댁과 멀리하고 싶었던 마음도 이제는 잘 알아차려 줄 수 있었어요.


내가 상처받을까 봐 두렵다는 건, 상처받고 회복할 수 있는 나를 믿지 못한 것

내가 배신당할까 봐 두렵다는 건, 당당하게 걸어 나올 수 있는 나를 믿지 못한 것

내가 강요당할까 봐 두렵다는 건, 나의 선택권과 결정권을 나 스스로도 믿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요!


제가 저를 믿어주지 못했는데, 어떻게 상대가 상처 주지 않을 거라고 타인을 믿겠어요. 나 스스로부터 믿어줘야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있는데!




사실 시부모님은 저희를 당신만의 방법으로 항상 응원해주고 계셨어요. 


저희가 처음 신혼집에 들어오자 빨래할 때 쓰라며 쿼터를 잔뜩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저는 이걸 택배로 바다 건너 보내느니 그냥 돈으로 주시는 게 택배비 덜 들겠다 생각했는데, 사실 시부모님께서는 그 동전에 마음을 담아 보내주신 거였더라고요. 우리의 시작을 응원하는 마음, 생활에 꼭 필요한 부분을 챙겨주고 싶었던 마음이요. 


그리고 여전히 잡지나 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거리가 나오면 오려서 우편으로 보내주십니다. 그리고 저희는 간간히 그 기사나 만화를 보면서 얘기 나눠요. 옛날에는 뭐 이런 걸 보내시지 사진 찍어서 문자로 보내도 되지 않나 생각했는데,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라 우리와 갬성이 다르다는 걸 이제는 이해합니다.


미니멀 라이프 한다며 다 비워버린 지금에야, 시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어요. 




아픈 뒤 후유증으로 맛을 느끼지 못하는 단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겼어요.







그 후의 이야기: 

https://brunch.co.kr/@kim0064789/386


https://brunch.co.kr/@kim0064789/66


https://brunch.co.kr/@kim0064789/278




https://link.inpock.co.kr/loveyourlife


매거진의 이전글 그 아이는 커서...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