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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Dec 12. 2022

배우지도 않은 내용이 시험에 나와 부진아 취급받는다면?

우리가 친절하게 알려주면 어떨까요




어제 조금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렸을 때 잠깐 외국에서 살다 온 중학생 아이가 한국 학교에서 중간고사 영어문제를 틀렸대요. 영어 지문을 읽고 알 수 있는 교훈을 한국 속담 중에서 고르는 객관식 문항이 있었는데, 영어 지문은 모두 이해했지만 한국어 속담을 몰라 풀 수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아이의 주변 어른들에게

"네가 무식해서 그렇다."

"너는 한국인이, 그것도 중학생이나 되가지고, 이 속담 하나를 모르니!"

"교과 학습 부진과 기초 학습 부진 있는데, 속담은 기본적인 상식이니 기초 학습 부진이야. 네가 부진아 되는 거야."

라는 말을 들었대요.




물론...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서만 거주하시고, 한국의 교육 과정만을 겪은, 그런 어른들의 눈에는 우리나라 속담 정도는 당연히 알아야 하는 상식일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한민족, 단일민족으로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역사가 있어요.


한국에서 살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한국인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

한국을 좋아한다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한국인과 어울리려면 이 정도는 당연하지


같은 전제가 흔하게 화자 되기도 해요...


한국에 사는 외국인에게도,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도,

한국계 혼혈인 사람들에게도,

한국인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도...


어쩌면 다양성이 존중되지 못하는 사회일지도 몰라요.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초중고까지의 의무교육으로 교과서나 학습 내용도 획일화되어 있고, 한국 교육과정만을 모두 이수하는 학생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각 학년마다 단계별로 완성하는 학습 목표가 있잖아요.


이런 경우, 귀국학생처럼 다른 교과과정을 이수한 학생이 어떤 부분에서는 낙오되는 일이 생기기도 해요.


그런데...

배운 적이 있었더라면 이 아이도 분명 알았을 거예요. 문제도 풀 수 있었을 거예요.

영어 시험이지 한국 속담 시험이 아니니, 이 아이는 영어 지문은 이해했으니까요.


속담을 몰라서 문제를 못 풀었다고 용기 내 엄마께 고백했는데, "네가 무식해서 그래"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상처일까요.

영어 지문은 이해했다고 용기 내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속담을 모르는 건 기초 학습 부진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요.




어쩌면 이런 생각이 조금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알려주지 않아도) 네가 당연히 알아야지."


시험에 나올 내용이면 학생들에게 시험 대비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하고,

한국인이라서 당연히 알아야 할 내용이라면 가정교육으로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줬어야 하죠.


우리의 진심은 학생이 무식하고 부진하기를 원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의 진심은 학생이 잘 배워서 사회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가 되도록 도와주는 거잖아요! : )




"네가 외국에서 살다 와서 속담을 잘 모르는구나. 이번 기회에 한 번 제대로 배우면 좋겠다"


속담 때문에 문제를 틀렸다면 무식하고 부진하다고 낙인찍는 것보다,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모르는 걸 알려주는 게 교육이잖아요. 아이가 아무리 '어렸을 때' 외국에서 '아주 잠깐' 살다 왔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Photo by Valentin Antonucci: https://www.pexels.com/photo/two-person-holding-pinkies-1378723/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누군가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상대에게도 나의 의견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해요.

상대에게도 나를 배려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해요.


어쩌면 상대가 알았다면, 그런 언행을 그만할 수도 있어요.




친구라면 당연히 알아야지

연인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부모/자식이라면 이 정도는 당연하지

어른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이런 생각에 내 의견을 분명히 표현하기를 꺼릴 수도 있어요. 돌려 말하기, 간접화법, 비유, 완곡한 표현 등등... 청자가 알아들어야지만 내용이 전달되는 방법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걸 상대가 못 알아들은 경우, 상대에게 화가 날 수도 있죠. 몇 번의 경고 메시지를 보냈는데도 상대가 못 알아듣고 눈치 없고 센스 없이 선을 넘을 수도 있어요.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조용히 손절하려는 마음을 먹을 수도 있어요. 물론 자연스러운 심리이고,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손절이라면 그 역시 타당한 결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살다 온 아이가 속담을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상대에게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요? 어른들과 아이의 상식에 대한 기준이 달랐던 것처럼, 상대도 어쩌면 진짜로 몰랐을 수도 있잖아요.


일관적이고 단호하게 내 입장을 밝혀줍시다.

상대에게 나의 감정도 존중할 기회를 줍시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표현하여 줍시다.

나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해 줍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해 줍시다.

상대에게 나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어요.


우리의 진심은 누군가를 무시하고 따돌리를 원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의 진심은 모두가 평화롭고 조화롭게 사이 좋게 지내는 거잖아요! : )


나를 위하여, 그리고 나를 존중하려는 상대를 위하여.

어쩌면 상대는 바뀌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때 손절해도 늦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나의 감정에 솔직했고, 나의 진심을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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