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Dec 14. 2022

내가 만난 편견 없는 사람들 갑

맑게 생각하고 맑게 말하고 싶어요

비 오는 사막




1


8학년 말, 내가 처음 외국인 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나는 한국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녀 한국의 여느 여중생처럼 친구들을 좋아하고, 친구 없으면 못 사는 아이 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외국인 학교는 한국인 학교를 방불케 할 정도로 한국 학생이 많았고, 비슷한 시기에 전학 온 한국 학생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한국에서처럼 팔짱 끼고 돌아다니거나, 화장실도 같이 가자고 했었다.


그런데, 한국인 친구가 나에게 팔짱 끼기를 거부하며 조금 떨어져 다니자는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하는 게 아닌가!


편견 없는 한 외국인 선생님의 눈에는 우리가 상당히 가까워 보였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혼자 교실에 들어오며 나를 찾자 선생님께서는 네 여자 친구 화장실 갔다고 알려주셨다고 ㅋㅋㅋㅋㅋ ㅜㅜ


나는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농담이었는지 진담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나는 영어를 잘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어차피 알 수도 없었지만.) 그 친구는 둘이 왜 이렇게 붙어있냐는 질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차에 여자 친구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나 보다.




감옥 섬 관광객




2


2000년대 초, 내가 처음 외국인 학교에 전학 갔을 당시만 하더라도 한류 열풍이 최근처럼 크지 않았다. 그때는 "아임 프롬 코리아" 라고 하면 "노스? 사우스?" 가 공식이었던 시절이니까.


학교에 간 첫날, 우리 외국인 담임 선생님은 나를 교실로 안내하면서 "노스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를 물어보셨고... 당시 영어를 못했던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그냥 "예스 예스" 하고 말았다.


그리고 입장한 외국인 가득한 교실에서


"우리 반에 새로운 학생이 왔어요~ 이 학생은 노스 코리안입니다. 다 같이 환영해주세요~!!"


라는 소개를 들었고, 나는 정확히 못 알아 들었다. 큐ㅠㅠ "예스 예스" 하고 있으니 당시 영어 잘하는 한국인 학생이 정정해줬다. 전부 아빠 회사 발령으로 온 한국인들이기 때문에 서로 다 알고 있었던 상황이라 천만다행.


나와 더불어 우리 가족은 노스 코리안 콤레드 될 뻔했다 ㅋㅋㅋㅋㅋ


어떤 사람들은 인종 차별이라고 할 정도로 이 질문을 받는 상황을 싫어했다. 되게 무례하고 무식한 질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고, 기분 나쁘다며 대화를 중단하는 사람도 있었다.




https://youtu.be/TVQBmhRZ81I 

출처 : 아는 형님




나는 점점 영어를 배우면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고등학교 졸업 논문으로 한국의 역사를 주제로 작성하면서, 그리고 대학에서 새터민들과도 만나면서,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노스 코리안이라 불리기 싫은 건, 그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가치판단일 뿐이란 걸.


누군가 나에게 노스? 사우스? 를 물어봤을 때, 내가 여유로운 마음으로 + 유창한 영어로 한민족의 역사를 재미지게 설명해주고, 케이팝이나 케이 드라마를 줄줄이 예를 들어주고,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이야기해 줄 수 있었더라면...!!!


그렇다면 여기서 편견은 누구의 편견인가.


어떻게 보면 질문자는 아무 생각 없이 물어봤을 사소한 질문 하나에 나도 기분 나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어떤 날은 가볍게~ 어떤 날은 쉽게~ 어떤 날은 웃으며~ 어떤 날은 순수하게~ 어떤 날은 해맑게~

굳이 상대를 무시하거나 깔아내릴 필요도, 거기에 열등감 가질 일도, 괜히 기분 나빠할 일도 아니었다.




월스트릿의 백수




3


내 기준 편견 없는 사람 갑은 시동생이다. 젠더를 넘나들고, 인종을 넘나들고, 문화를 넘나들고, 머니를 넘나드는...


시동생도 제3문화아이 전형으로 대학에 갔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국가에 거주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기회, 그 기회의 유무가 정말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최근 정보기술의 발달로 물리적으로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다양한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인터넷을 생활화하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여러 장르와 문화를 아우르는 영상예술 작품(=넷플릭스)을 감상할 수 있는 요즘 세대들!

수많은 문화들이 모인 도시 생활에 익숙한, 현지화된 H마트에서 장을 보는, 다양성에 깊게 또는 오래 노출된 젊은이들!

그런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 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평가받지 않고 나 다울 수 있는 곳,

고치지 않고 자연스러울 수 있는 곳,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는 곳


물론 그러려면

상대를 평가하지 않고,

상대를 고치려 하지 않고,

상대에게 눈치 주지 않아야 한다.




시댁이 위치한 주는, 몇 년 전 보수당의 광고에서 "Don't let OOOO happen to you!" 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진보'적인 주이다.


이런 미국에서 소수 인종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이 좋을까?




https://brunch.co.kr/@kim0064789/417




군중 속 고독




4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실 인류의 미래가 아닐까?


천재들의 광기, 예술가의 고뇌,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늘어나는 정신질환들... 사회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로 설명하면 어쩌면 같은 맥락이니까. 알러지, 민감성, 기질 등등 모두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관심 병사에게 "네가 더 잘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제서야 온 거" 라는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린 것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닐까? 배척하고, 무시하고, 경쟁하는 것보다... 공존하며, 평화롭게,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https://blog.naver.com/0064789/222520507867




나는 어쩌면 남편이랑 비슷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국에서의 나는 대세에 적응 못하고 내 뜻대로 했는데, 결혼해서 자신에게 납득이 가야 실행하는 남편과 살고 있다.

한국에서는 내가 개인주의고 내가 이기적이었을 텐데, 결혼해서 진짜 개인주의, 선택과 자유를 수호하는 인간을 만났다.

나는 그럼에도 어느 정도 타협하고 맞춰가며 살았는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사람이라 화가 났나 보다.


남편은 내가 아닌데.

남편은 한국인이 아닌데.


어쩌면 그런 남편의 모습이 내가 나에게 바라는 모습이었을까?

어쩌면 가장 편견 없이 머리가 꽃밭인 남편의 모습이 내가 나에게 바라는 모습이었을까?

티 없이, 해맑은, 무해할 수도 있었던 캐릭터가 나랑 결혼해서 완전체가 됐다.




그렇다면 여기서 편견은 누구의 편견인가!










https://brunch.co.kr/@kim0064789/121

https://brunch.co.kr/@kim0064789/104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https://class101.net/products/DCNO3sPxKUBstRcB0ui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