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Dec 18. 2022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던 남편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 당신에게로 가는 길




몇 년 전만 해도 저희 부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을 싸웠어요.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왜 나를 무시하는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보라고!!!


좋게 좋게 웃으며 말할 때는 당연히 듣지도 않고, 소리소리를 지르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듣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이혼을 준비하며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저 혼자서 드라이브라도 떠나고 싶었거든요.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을 때,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제 힘으로 어디든지 훌쩍 떠나고 싶었어요.




그렇게 운전 연수를 받으면서, 운전이랑 대화랑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껴졌어요.


좁은 골목길에서는 길에 나와있는 물건이나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피해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야 하고,

고속도로에서는 다차로에 차들도 엄청 많고 속도도 쌩쌩 달리니 적정거리를 지키며 방어 운전해야 하고,

일방통행인 곳에서는 정해진 한 방향으로만 운전해야 하니, 빙빙 돌면서 내가 가려는 방향을 찾아야 하죠.





저희의 대화는 일방통행의 길에서 두 차량이 서로 자신의 방향이 맞다고 속도를 줄이지 않아 충돌하는 교통사고 같았어요. 두 차 모두 큰 피해를 입고 운전자도 위험한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었던 거예요.


사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야 했었는데, 우리가 가는 길이 일방통행이라면 순서에 맞춰서 양보하고 서행할 수 있었어야 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만약 내가 가고자 하는 길과 상대가 가려는 길이 다르다면, 각자의 길을 갈 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어요.


만약 내 의사와 반대로, 억지로, 어쩔 수 없이 상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느껴진다면, 상대가 가자는 방향으로 끌려다니기 때문이라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알게 됐어요.


견인차에 끌려가거나 트럭에 실려가는 상황이라면, 나 스스로 운전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이 상황에서 주도권을 찾는다고 경적을 울리고, 브레이크나 액셀을 밟거나, 운전대를 돌리고, 내가 아무리 그 어떤 노력을 해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어요.







그리고 운전 선생님께서는 매번 '방어운전'을 강조하셨는데, 예전에 인터넷에서 읽었던 글귀가 떠올랐어요.


"난폭운전을 하는 사람이 사고를 내지 않은 건, 자신이 베스트 드라이버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의 운전자들이 방어운전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제가 악에 받쳐서 소리를 지르고, 화병이 나서 가슴을 내려치고, 남편을 보면서 통곡을 했던, 그 순간이 어쩌면 부부라는 도로 위에서 난폭운전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남편이 단 한 번이라도 내 얘기를 제대로 들어줬다면,

남편이 단 한 번이라도 내 마음을 헤아려줬다면,

남편이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면,

남편이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이해해주는 노력이라도 보였다면,


제가 그렇게까지 안 했을 거라는 변명을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남편이 그렇다고 해서 나 스스로의 존엄성을 내려놓는 행동은

내가 나를 배신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 부부가 대화라는 도로에서 충돌하지 않으려면


일방통행 도로라면 서로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거나,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양방향 도로로 만들어 주거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고속도로처럼 뻥뻥 뚫리는 도로에서 만나거나,

아니면, 잠시 정차하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골목길처럼 좁은 길에 차선을 더하는 건, 내 마음의 여유에 달려있는 것 같아요.


꽉 막힌 도로에서 차선책을 찾을 수 있는 여유

난폭하게 운전하는 차에 방어 운전할 수 있는 여유

교통사고가 난 지점을 우회해 갈 수 있는 여유

음주운전 차량이 휘청대며 돌진해오거나,

트럭의 적재물이 떨어지거나,

오토바이 폭주족이 과속을 하거나,

역주행해오는 차를 맞닥뜨리더라도,

안전 운전할 수 있는 여유




방송이나 책, 인터넷에서 소개하는 갈등 해소법이나 부부상담 등도 결국엔 '교통정리'와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내가 이야기할 땐 남편에게 빨간 불을 주어 잠깐 멈추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도록

남편이 이야기할 땐 나에게 빨간 불을 주어 잠깐 멈춰고 남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줄 수 있도록


나에게 초록 불이 켜졌을 때는 나의 마음속 깊은 진심만을 표현하고

남편에게 초록 불이 켜졌을 때는 남편이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설령 그것이 나에게 상처 주는 발언이더라도, 들어줘야 합니다.


도로 위 속도 제한이 있는 것처럼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의 범위를 상대에게 알리고,

도로 위 차선과 노면 표시가 있는 것처럼

서로가 듣기에 더 수월한 표현법을 상대가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도로 위 교통안전 표지판이 있는 것처럼

서로가 불편한 경우 상대가 알 수 있도록 표현하고, 안전 수칙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거예요.


교통 통제하지 않고, 교통체증 일으키지 않고,

아무리 혼잡한 교통 상황이라도 도로가 폐쇄되는 일 없이,

필요한 경우 출구로 빠질 수 있도록,

교통량이 계속 흐를 수 있도록 관리해줘야 해요.







어쩌면 우리는 눈앞에 닥친 현실에 너무 압도당해 아무것도 안 보일 수도 있어요.


다들 이렇게 산다.

결혼해서 정으로 산다.

어쩔 수 없이 산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똑같다는 위로를 받고 싶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남들이 다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법은 없어요.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나는 어떤 결혼생활을 하고 싶은지?

나는 오늘 하루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결혼해서 불행해졌다

결혼해서 내 인생 망쳤다

결혼해서, 남편 때문에...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맡기기보다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요!


내가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곳으로,

내가 두 다리로 꼿꼿이 걸어갈 수 있는 곳으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그렇게 내 갈 길을 가면 됩니다.

내가 갈 길을 스스로 정하고, 실제로 그곳으로 가면 됩니다.


남편을 꼭 강제로 데려갈 필요도, 온 가족이 꼭 억지로 함께 갈 필요도 없어요.




"나는 이쪽으로 갈게!"

그리고 실제로 이쪽으로 내가 가야 합니다.


"나는 평화로운 결혼 생활을 원해!"

그리고 실제로 싸움보다는 평화를 내가 선택하면 됩니다.


"나는 당신과 행복하고 싶어!"

그리고 실제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들을 하기로 내가 선택하면 됩니다.




나 스스로를 보호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을 되찾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오늘도 안전 운전하세요 : )







https://brunch.co.kr/@kim0064789/107

https://brunch.co.kr/@kim0064789/166

https://brunch.co.kr/@kim0064789/375

https://brunch.co.kr/@kim0064789/360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https://class101.net/plus/ko/products/DCNO3sPxKUBstRcB0ui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