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내 감정을 조절하고 할 말을 고민하고 내 진심을 말하는 건 차라리 쉽다. 정말 어려운 건 남편의 말을 듣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괘변을 늘어놓거나, 내 말 한마디 한마디 꼬투리를 잡거나, 상황을 왜곡해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등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든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문제라고 한다! 이렇게 바위와 벽 사이의 대화를 하다 보면 나도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 바위와 벽이 나를 향해 서서히 조여 온다.
이렇게 서로에게 적대적으로 대치 중인 상황에서도 대화가 가능할까?
나를 공격하는 상대의 말을 어떻게 들어줘야 할까?
개인주의 남편과의 대화는 정말 어렵다. 이런 대화에서는 나를 아내의 입장에서 꺼내와야 한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아내인 내가 모든 일의 원흉이고, 내가 이상하고 내가 잘못하고 내가 문제라고 했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그 말을 들어야 한다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혼 변호사나 심리상담가라고 상상하며 남편의 말을 들어보고 남편이 하는 말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상담을 받을 때 변호사나 심리상담가는 항상 내가 하는 말을 기록으로 남긴다. 내가 한 말의 문장 그대로 적거나, 핵심 단어를 나열하거나, 중요하게 강조했던 부분에 표시를 해둔다. 그 후, 상담 내용과 변호사 / 상담사의 의견 첨부한 리포트를 받아보면 조금 더 명확하게 나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시간을 정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하는 노력을 보이지만, 상대는 그런 노력조차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와 진정으로 대화하고 싶다면, 내가 혼자서 들인 수고와 노력을 상대를 위해서도 두배로 들여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적고 거기서 요점을 찾아 줄여갔던 것처럼, 상대를 위해서 그 작업을 내가 대신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상대가 동의하는 경우 대화하면서 대화의 내용을 메모해도 좋고, 대화가 다 끝나고라도 복기하며 적어가도 좋다. 나와 상대의 의견이 다른 부분이 어디인지, 대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내가 어떤 말을 할 때 상대의 반응이 어땠는지, 상담가 입장에서 요점정리 하는 것처럼 적어본다. 그리고 그날의 대화를 반 장 정도로 정리하고 나의 답변을 짧게 더해 리포트처럼 만들어서 정리해 둔다.
남편은 대체 왜 저럴까?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한 연구라고 생각하고, 상대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절대 중간에 말을 끊거나, 반박하거나, 화제를 전환하거나, 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면 안 된다. 상대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감정을 쏟아내고, 화풀이를 하고, 신경질을 낼 것이다. 그 와중에 내가 받을 상처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이 점을 인지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화에 임해야 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안에서도 자기 나름의 의식의 흐름이 있고, 인과관계가 있고,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그 기저요인을 파악하여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절대로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상대를 바꾸거나 고치려 해서도 안된다. 그냥 남편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연구 결과를 내는 것처럼 생각해야 한다.
남편이 하는 말들을 파악하다 보면, 내가 원하지 않았던 진실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없다거나, 남편은 결혼생활에서 노력할 의지가 없다거나, 남편은 나에 대한 배려심이나 내가 한 희생에 대한 고마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충격에 휩싸여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나는 할 만큼 했어! 대체 뭘 더 바라!
누가 그렇게 해달래? 다 네가 좋아서 한 거 아니야!
남편의 말을 듣다 보면 같은 말도 좋게 할 수 있는데 굉장히 상처 주는 말을 할 때가 많았다. 이런 수동공격적인 발언은 겉으로 드러나는 문장 그대로의 의미보다 그 저의를 파악해야 한다. 남편이 이혼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상황을 전제로 본다면, 자신의 능력 밖의 일들을 간접적으로 거절하거나 자신의 우선순위 밖의 일들을 거부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부재를 스스로 인정하기보다 다른 핑계를 대는 것이 더욱 쉽기 때문이다.
남편이 가장으로서 책임감 없는 말을 했다면, 그 속 뜻은 어쩌면 남편이 책임을 질 수 있는 현실적인 능력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남편이 결혼생활에서 노력할 의자가 없는 말을 했다면, 실질적으로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나에게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말을 했다면, 나에게 고마워하면 자신도 그만큼 보답해줘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남편의 심리를 그냥 인정해야 한다. 남편에게는 내가 우선순위가 아닐 수도 있구나. 남편의 능력은 여기까지 구나. 남편은 딱 이만큼만 노력하는구나. 여기서 내가 어떻게 했는데! 하면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1. 대화
- 말하는 법
- 듣는 법
2. 감정
- 알아채는 법
- 표현하는 법
3. 현재
- 최선을 다하는 법
- 만족하는 법
4. 배우자
- 인정하는 법
- 존중하는 법
5. 행복
- 기대하는 법
- 허용하는 법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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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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