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단순히 질문하지 않는다고 해서 끝이 아닌...
해외에서 6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다음 해 3월에 한국에서 대학교를 입학했다. 재수한 듯 재수 아닌 재수 같은 학번으로 입학한 것이다. MT며 동아리며 CC며, 캠퍼스 라이프를 꿈꿨던 풋풋한 시절의 나는, 한국식으로 말하는 개념과 센스도 풋풋해서 거의 없다시피 했더랬다.
당시의 나는 진짜 백지상태였다. 갓 성인이 되어 내 앞에 놓인 자유를 만끽하는 그런 철부지 어린양.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고, 누구와도 재밌게 놀았던 시절. 그만큼 나이나 선후배 관계의 개념이 전혀 없었다. 알고는 있었는데 설마 진짜 그럴까?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진짜 그랬다. 세상엔 정말 의아한 일도 많고 놀랄 노자도 많았다. 이게 실전 한국인가? 대학교 1학년을 그렇게 나대다가, 호되게 당하다가, 또 깝치다가, 또 혼나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너무 재밌게 보냈다 ㅋㅋㅋ
심지어 처음 가입했던 동아리는 나름의 전통과 위상을 자랑했었다. 1차 서류와 2차 면접을 통과해야지만 가입할 수 있고, 전체회의 때, 신입생들이 동아리 연혁이랑 선배 이름, 학번, 학과를 외워서 검사받아야 하는 시험(?)이 있었다. 면접 보는 것처럼 큰 책상에 선배들이 빙 둘러앉아계시고, 신입생은 쪼르르 서서 돌아가면서 한 명씩 발표를 해야 했었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탈락, 바로 정정할 수도 없고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가 다시 처음부터 발표하는 엄격한 절차였다.
나는 그 시험을 안? 못? 봤다^^; 신입생 오티를 안 가서 ㅎㅎㅎ 안내사항을 전해 듣긴 했지만 그걸 외워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대학 동아리... 인데...? 다 같이 재밌게 학교생활하려고 모인 것 아니었나? 우리 모두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지면 그런 정보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아닌가?
나는 그 회의시간에 쩔쩔 매고 있는 신입생들 옆에 서서 동아리 회장님께 여쭤봤다. 이 시험은 무엇을 위한 시험이냐고. 회장님께서는 전통이라고 답하셨다.
동아리 활동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아서 한 학기 동안 교육(?)도 받고 그다음 학기까지 나름 열심히 다니긴 했다. 나의 첫 한국 사회생활은 참 많은 교훈을 준 경험이었다. 나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을 수도 있긴 하지만 ㅎㅎㅎ
한국에서 살던 해외에서 살던, 나는 나이에 그다지 신경을 많이 쓰지 않기 때문에 나이를 알아도 몰라도 상관이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나이를 물어도 딱히 기분이 나쁘지도 않다. 내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 내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도 내가 결정하는 거니까!
한국인들 모임에서는 호칭을 정리하기 위해 나이를 묻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누군가의 나이를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묻기도 했다. 외국인들처럼 이름을 부르기에는 아직은 한국인끼리는 어색하니까...
어떤 분은 한국 사회에서 나이를 묻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쾌하다고 하셨다. 아마 나이를 묻는 목적이 불편하신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병원이나 주민센터 같은 곳에서 신원 확인하기 위해 생년월일을 묻는 건 괜찮지만, 나이를 물으면서 그 뒤에 따르는 ‘평가’는 당연히 불쾌할 수 있지. 한국에서는 여전히 나이로 후려치기(?) 당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요즘은 ‘님’이라는 존칭을 모두에게 써서 평등한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한국의 몇몇 온라인 모임에 참가했을 때에도 실제 나이를 소개한 적이 드물었던 것 같다. 그 대신 MBTI로 많이들 소개하는 것 같다.
나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평등한 사회,
서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주고,
눈치나 의무에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방시켜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어르신께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어린 친구들에게도 열린 마음으로 의견을 구하고,
나도 진심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동생이지만 언니 같다.
처음 들었을 땐 아무 생각 없었는데, 너무 여러 번 들어서 신경 쓰이는 말이 돼 버렸다. 나이를 묻지만 않는다고 편견이 아예 없는 건 불가능한 것 같다.
동생이라면 비단 이러이러해야 하는데, 아랫사람으로 내게 어떠한 모습을 기대했는데 그게 채워지지 못했던 걸까? 나이가 어린 자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했을까? 언니 같다는 건 무슨 뜻일까? 실제 내 친동생들에게도 나는 언니나 누나의 역할을 안 하고 있는데 (미..미안..ㅜㅜ)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 때 언니 같이 느껴지는 걸까?
나는 우리 사이가 평등한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사실은 언니 동생 사이라는 정형적인 관계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동생이지만 언니 같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니까. 나이에 편견이 없다고 말씀하셔서 오히려 더 마음이 편했는데, 내가 너~~무 편하게 친구처럼 행동했던 걸까? 동생으로서 언니를 모시지 않고 태도가 불량하다고 느껴졌을까?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바와는 다른 이야기, 나의 의견과 경험을 말한 적이 많았는데 그것 때문일까?
정형적인 한국인의 표본인 사람들,
초중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대학교 졸업하고 회사 취직하는 가장 모범적인 인생,
주변에서 과반수 이상이 일반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특정 나이 대에 하는 경험이 정해져 있으니 그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되는 건가.
나도 그럴 것 같다. 내가 겪지 않은 세상은 상상도 못 하니까. 내가 한국에서 진짜 이럴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실제 겪기 전까지는 어렴풋이 알더라도 몰랐던 것처럼. 나도 자꾸 그렇게까지 한다고? 생각되는 일이 많으니까...
어렵다, 어려워.
한국은 6월부터 만 나이로 통일한다고 한다. 만 나이로 바뀌면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까?
어차피 3월 학기제라 같은 년도에 태어난 아이들은 같은 학년에 들어가게 되고, 또 한국은 졸업 연도가 아닌 입학 연도로 학번을 정하는데.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일이 지난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언니나 오빠라고 부르게 될지, 나이를 잊고 친구처럼 지내게 될지 궁금하다. 어린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한국사회에서 아예 나이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게 가능할까? 일상생활부터 국가 시스템까지, 나이의 구분에서 완전히 평등할 수 있을까? 정년이 정해져 있고, 청년 / 중년 / 장년을 구분하는 복지 혜택이 정해져 있기도 해서... 물론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이 때문에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획일화된 사회, 나이로 직급으로 서열화된 문화,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집단, 인구 과반수가 경험한 군대식 제도 등... 아직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어떤 새로운 문화를 만들지, 어린 세대들의 미래가 기대된다. 더욱 자유롭고 더욱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어렸을 때부터 만나온 친구들이 더더욱 그립고 보고 싶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들이었을 때부터 강산이 두 번 바뀐 지금까지도 연락을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버디버디 시절부터 싸이월드에 카카오 톡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거친 만큼... 우리의 추억도 그만큼 쌓였을 테니까.
아무 조건 없이, 아무 평가 없이, 그렇게 가까워진 사이. 그냥 자유롭게 뛰어놀던 그 시간이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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