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여 간의 감정 변화에 대한 소고
이번 글들은 한 달 정도에 걸친 감정의 변화를 정리한 것이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면 차분해진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하나씩 비워내기 위해 글을 썼다.
그래서 지금 상황과 글 쓰는 시점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글만 보면 며칠 만에 감정이 휙휙 바뀌는 것 같아 보이는데
실상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기분이 왔다 갔다 했었다.
나는 감정기복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ㅠ
평온한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몸이 아픈 상황에서도,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도...
어떤 상황인지 물어봐주고
내가 자세하게 설명했을 때
전적으로 나를 이해해 준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공감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부럽다~ 내 남편은 말이야...”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계획이 있으시겠지!”
“네 남편은 외국인이잖아~ 내가 아는 누구는...”
이런 나의 감정을 인정해주지 않는 답변이 아니라
“아 그렇구나, 네 상황은 조금 다르네.”
“네가 한 말 중 이게 맞을 수도 있어. 우리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거든.”
“이러 이런 상황은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된 건가?”
나를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대화.
이 대화 이후에 나는 뭔가 마음의 응어리가 풀렸다.
사실 내 감정에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하지는 않은데도
누군가가 공감해 주는 게 정말 큰 위안이 된다.
평생을 잔잔하고 굴곡 없는 삶을 살다가
감정기복 심한 나를 만나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다고까지 했던 남편
결혼에 대한 관념이 나와는 달랐을 것이고
남편이 꿈꿨던 결혼 후에 아내와 함께하는 삶도 나의 꿈과는 굉장히 달랐다.
내가 남편을 만나서 내 세상이 무너졌던 것처럼
남편도 자신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썼을 것이다.
이성이나 성소수자 등에 자연스럽게 노출된 환경에서
차별적인 성관념 없이 친구를 사귀어왔었는데
나로 인해서 자신의 모든 행동들이 검열당하고,
자신의 자유가 속박당하고 선택권이 박탈당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 사이에 각별했던 시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오랜 투병을 하셨던 아버지를 보는 마음,
아빠와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아빠가 꿈에 나왔다면서 울먹거리는,
아들로서 느끼는 그 감정은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침내 결혼 생활에서 안정감, 행복감을 느끼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분하다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안전하다고 믿었는데,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랐던 아내는 불행하다며 화를 내니
남편 상황도 참 힘들겠다.
사실 똑같은 내용을 글들을 몇 년째 쓰고 있다.
그리고 내가 쓴 내용을 내가 실천하지 않고 있었다. 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궁극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기억하기
중심을 나에게로 옮기기.
그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의식적으로 매 순간 실천하기가 참 어렵다.
부부 공동체라는 상황에서 남편에게 영향을 받지 않기란 불가능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나는
긍정적인 부분을 보기 위해 시선을 돌리고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하루를 채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찾으며...
나는 사실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나는 이사가 기를 너무나도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계속 살아야만 하는 상황이 화가 났었다.
그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서툴게 남편에게 화로 표출해 버렸다.
사실은 남편도 나와 같은 것을 원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한 팀으로 그 문제를 함께 해결했어야 했는데
나는 남편을 적으로 두고 생각했다.
이곳은 남편의 시험 준비에 가장 최적화된 곳이기 때문에
남편이 시험을 볼 때까지는 이곳에 있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하지만 이렇게 불행하다면 시험을 미루더라도
이사를 하는 선택지를 고려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사도 빨리 가고 싶고 남편이 빨리 시험도 봤으면 하는 마음에
이도저도 못하고 스스로의 발을 묶어두었다.
차라리 그때 부서 이동이라도 했었더라면
그때 그 기회를 잡았더라면...
이럴 줄 알았다면 다르게 했을 텐데
하지만 당시에도 내가 한 선택이었다. 하고 싶어서 했던 선택.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그 선택들을 후회하고 있다.
되돌릴 수도 보상받을 수도 없는 과거의 일에 나를 옭아맸다.
그래도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하긴 했었으니
나 스스로를 놓아주어야 한다.
내가 정말 정말 이사를 가고 싶었으면
멱살 잡고 하드캐리 해서라도 이사를 갔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외국인으로서 인종차별도 무섭고...
전혀 알지도 못하고 연고도 없는 새로운 곳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두렵다.
그래서 현지인인 남편에게 그 선택을 일임하는 것 같다.
그 두려움과 불안감을 남편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남편 때문에 우리는 남편의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까.
나의 보상심리.
특히 첫 번째 그림은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바닥을 쳤다 생각했던 최저점에서도,
그 안에서 꽃을 피워내는 그림이라 정말 큰 위로가 됐다.
꽃은 어디서는 핀다.
바람을 바꿀 수는 없지만, 돛을 조정할 수는 있다.
파도를 멈출 수는 없지만, 파도를 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나의 불안함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할 것이다.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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