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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Nov 26. 2023

“내가 언제까지 사과해야 되는 건데?”

뻔뻔하게 자기 합리화만 하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큰 잘못을 하면 진심 어린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고 당연한 수순으로 믿었어요. 자신이 한 행동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의 행동에 더 크게 상처받고 더 깊이 실망했던 것 같아요. 나에게 절대로 상처 주지 않을 것이라 약속한 사람이, 나와의 관계를 무시하고, 내가 상처받을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했다면, 그 배신감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죠...


어찌저찌 결국 상대가 사과를 하더라도, 전혀 반성하는 기미도 없이 형식적인 사과에 오히려 마음이 더 속상해질 때가 있어요. 막상 피해자인 나는 여전히 아픈데, 가해자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면 정말 분노가 치솟을 정도예요. 그리고 마치 대본이라도 있는 것처럼, 똑같은 레파토리가 반복되죠.


“미안하다고 했잖아!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야?”

“그만하면 됐잖아! 좀 넘어가자, 좀!”  

“내가 언제까지 사과해야 되는 건데?”

“나도 할 만큼 했어! 나보고 여기서 더 어쩌라는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요?




몇 년 전, 저는 우울증을 진단받고 힘든 시간을 보냈었어요. 남편이 저 위의 말을 똑같이 제게도 했었거든요. 당시의 저는 억울하고 원통해서 한이 서릴 정도였어요. 어떻게 자기 잘못을 잊어버리고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너무 화가 났어요. 상대가 잘못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러다 어느 서포트 그룹에서 남편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과거를 되돌릴 수 없는데, 자신도 잘못인 것을 잘 알아서 너무나도 괴로운데, 거기에 더해서 질책을 듣기가 힘들어지는 순간이 있대요. 목을 옥죄어 오는 것 같은 느낌에, 자신을 방어하려는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거예요.


상처를 받은 사람도, 상처를 준 사람도, 너무나도 괴롭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저는 당시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느꼈어요. 이렇게는 살고 싶지는 않은데,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어요. 남편이 사과를 했어도, 과거가 바뀌지 않았고 저는 영원히 상처가 아물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사실 제가 좋아하는 게 뭔지, 제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 제가 재밌어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저의 취향과 선호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것만 고치면, 저것만 바꾸면, 그것만 아니면,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면을 콕콕 집어내고 있었죠. 당연하게도, 회피적인 태도로는 행복을 얻을 수 없었어요.


제게 필요했던 건 생각의 전환이었어요. 과거에 어땠는지에 집착하기보다, 현재에 어떤 걸 원하는지에 집중해야 했어요. 원하지 않는 상황 말고,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상황은 무엇이었을까요?


상대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탓하고 싶은 마음속에는, 어떤 상황을 원하고 있었을까요?

아마 상처받은 나를 위로받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상대에게 한 번 더 사과받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받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상대가 이것만 고쳤으면 하는 마음속에는, 어떤 상황을 원하고 있었을까요?

아마 내가 상처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상대가 그만큼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투정 부리고 싶은 그 마음은 물론 이해합니다. 상대에게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건 나의 자유이지만, 상대에게 감정쓰레기통의 역할을 감내하도록 만들 수는 없어요. 그렇기에 부정적인 감정은 글로 풀어내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털어내거나, 아니면 전문적인 상담을 받으며 스스로 잘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에게 꺼낼 말을 고민해 보아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잘못이나 단점이 무엇인지 보다 그게 궁극적으로 어떻게 바뀔지입니다. 내가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요. 저는 남편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남편이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구체적으로 몰랐어요.


나는 어떤 위로를 받고 싶을까?

나는 남편이 어떻게 반응해 주길 원할까?

나는 남편에게 어떤 대답을 듣고 싶을까?


그리고 남편에게 제 바람을 표현했어요. 남편이 무슨 잘못을 했고 무엇을 고쳐야 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는 생략하고, 내가 원하는 것만을 전달했어요.


“내가 울고 있을 때 당신이 그냥 안아주기만 해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출근할 때나 자기 전에 시간을 정해두고, 우리 서로에게 하루에 한 번은 고맙다는 표현을 하자.”

“지난번에 당신이 진심으로 사과해 줘서 고마워. 내가 당신의 진심을 기억할 수 있도록 편지로 써줄 수 있어? 내가 불안해질 때마다 당신이 써준 편지를 읽으면서 진정할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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