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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Dec 11. 2023

수요 없는 공급의 글쓰기

내가 응원댓글을 신청하지 않는 이유

01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어쩌다 대화 중에 ‘수요 없는 공급’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생각해 보니 사실 제가 쓴 글들이 수요 없는 공급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처음 브런치를 시작한 계기도 외지 생활에 한국어로, 그리고 깊은 주제로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 저 혼자 푸념하듯 주절주절 써 내려간 것이었고, 그렇게 벌써 3년이 흘렀더라고요.


이런 글은 일기장에나 쓰라고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개인적인 일들, 사사로운 일들,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될 일들, 아무도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 일들이니까요. 그래도 공개적으로 쓰는 이유는 소통하고 싶고, 공감받고 싶고, 또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일말의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글쓰기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아닐까요? 누구나 쓰고, 누구나 읽고,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어쩌면 저는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글을 쓸 것이며, 읽어주는 사람이 많아도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만 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제 글을 읽어주시고 하트를 눌러주시는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에요.




02 당신을 존중합니다


제가 경험한 여러 문화 중, 판단과 평가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뤄지는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가장 힘들었던 것 기억이 있어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머리를 양갈래로 묶는 것과 같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구체적인 자격이 필요하기도 해요. 그리고 매일매일 아주 가까운 가족부터 아무 관련 없는 타인에게까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평가를 받아야 하기도 해요.


그런 상황에서는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남들이 하는 평가를 되새김질하듯이, 자신에게조차 주문을 걸듯이 그 기준을 반복 재생산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요. 물론 저도 똑같이 그러고 있었고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고민할 기회가 없었어서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을 내세워 살아왔다면, 그 기준이 굳건히 계속되어야 내가 살아온 길이 옳다고 끝까지 믿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자신만의 사상이나, 기준, 취향, 선호 등을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자신이 살고 싶은 인생을 사는 것이 참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더하여 타인의 의견도 진심으로 존중해 주며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지 않고 적정한 거리를 두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이상적으로 보였어요. 물론 그런 관계가 누군가에게는 정 없어 보일 수도, 가까운 사이인데도 벽을 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지 않아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혹은 속속들이 자세히 알아도, 판단하거나 평가하고 싶지 않아요. 저와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일에는 의견을 내세우고 싶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정치 이야기를 할 때에도 목에 핏대 세우며 논쟁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조용히 투표만으로 정치적 참여의 의무만을 다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의 권리와 의무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03 저는 정답이 아닙니다


그런데 가끔 예상치 못했던 일이나 상처받는 상황이 생기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또는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았을지 고민하는 글을 기록해요. 안 그러면 싹 다 잊어버리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든요. 가끔씩 예전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들을 상기시키는 거죠. 이는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당사자인 제가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며 최선의 결정을 하기 위함일 뿐이에요.


저는 정답이 아닙니다. 제가 적은 글들이 저에게는 해결이 될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지지부진한 자기 합리화일 뿐일 수도 있어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일이 있었고

나는 이렇게 느꼈고

어떻게 행동하고 싶을지 기록하는 것입니다.


간혹 제 글에 누가 잘못했고 무엇을 고쳐야 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주시는 댓글이 달려요. 제 입장에서만 쓴 단편적인 일화들이 제 삶을 모두 보여주지는 않죠.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심지어 역사가 쓰이는 것도 한쪽의 입장인데... 제가 억울할 때만 골라서 쓴 일기 같은 글들이 얼마나 중립을 지킬 수 있겠어요 ^^;


제가 상처받은 일에 대해 단순히 내 기분이 나빠서 문제 삼는다면, 그것은 제 기분에 맞춰달라는 일방적인 요구라고 생각돼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법을 어긴 것도 아니라면요.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서 왜 그런 감정이 느껴졌는지 저의 감정을 스스로 돌아보며 원인을 탐구하고, 객관적으로 상황파악을 할 수 있도록 시야를 넓히고, 주변 사람들 각각의 입장도 헤아려 보고, 내가 어떻게 대처하고 싶은지를 결정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어요. 그래서 어쩌면 약간 징징거리는 것처럼 읽히기도, 답정너처럼 보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제가 상대의 입장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가 옳다는 것도 그의 입장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상대의 입장을 듣고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구나,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받아들이는 거죠. 그 사람의 선택과 권리를 존중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상대에게 사사건건 명령하면서 상대의 생각이나 행동을 완벽하게 조종 통제해야 하는데, 정말 그렇게 하고 싶으신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요.




04 내가 되고 싶은 사람


글을 쓰면서 저는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을 아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됐어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 제가 마음이 너무 간장종지라, 심적으로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사람이 너무 멋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늦잠을 자느라 약속을 못 지킨 친구가 있었다면,


“5분만 일찍 출발하면 30분은 빨리 도착한다”

“나랑 한 약속은 중요하지 않냐 대체 네가 하는 게 뭐냐”

“어른이 돼서 본인이 한 약속 하나 못 지키냐 너는 책임감이란 게 없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준비한 나는 뭐가 되냐”


옛날 같으면 이런 말들을 제가 하거나, 저도 듣거나 했었어요. 아니면 몇 분이나 늦었나, 이번이 몇 번째인가 속에 담아 두었다가 손절하거나, 손절당하거나 했겠죠.


하지만 저는 이제 저희 남편이나 시어머니처럼 “많이 피곤했나 보다. 잘 잤어?”를 먼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음이 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저는 그 순간에도 제 걱정이 앞섰어요.


뒷정리 누가 하지? 

설거지 언제 하지? 

청소는 어떡하지? 


같은 생각으로 온전히 행복하지 못했죠. 그리고 내가 또 일을 더해야 할까 봐, 얼마나 피곤할지 계속 걱정하다 보면 느릿느릿 여유로운 남편에게 화가 나기도 했어요.


“너랑 같이 먹으니 더 맛있다!”

“나와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라는 말을 해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싶어요. 이제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서 그 존재 자체를 몰랐는데... 남편과 시어머니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 태도를 배우고 싶어 졌어요. 1분이든 1센트든 손해보지 않으려고 칼같이 계산하고 비교하고 재고 싶지 않아 졌어요. 




화날 만해요. 그런데 화를 낼 수 있음에도 화를 내지 않는 것, 그것이 오히려 더 힘든 일이 아닐까요?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이런 실수는 고의로 하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상대를 소중히 여긴다면 어느 정도의 실수는 포용해주고 싶어요.


더 중요한 점은 상대가 약속을 지키든 지키지 않든, 나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주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에요. 약속을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같이 가려 했던 카페에 먼저 가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거나 골목길을 걸으며 경치를 구경하거나 서점에 들러 신간도서를 읽어볼 수도 있겠죠. 그렇게 나의 시간은 내가 소중히 써줘야지, 상대에게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한두 번도 아니고 나와의 관계를 쉽게 여겨 약속을 일부러 지키지 않았다면 그 관계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죠. 모두 본인의 판단이니까요.




05 저 자신도 존중합니다


제가 쓴 글은 보통 2-3주 지난 일들을 복기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적은 글이에요. 그런데 가끔 새벽감성으로 당일에 문득 든 생각을 급하게 적으면 꼭 후회할 일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ㅋㅋㅋ


아무리 잘못된 결정처럼 보여도, 저는 제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아직까지는요. 글을 쓰면서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저만의 바운더리를 만들어 저 자신도 존중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전에 제가 화가 났던 일들은 사실 상대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저에게 화가 난 것이었더라고요.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던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처를 하고 싶은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내가 바라는 만큼의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해 화가 났어요. 예를 들어서 교수님께서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저희 부부가 혼인서약할 때 깜짝 방문해 주셨다면 돌아가시라 정중히 부탁하는 것을 할 수 있었는데 억지로 셋이서 있었다거나, 교수님과 선물이나 연락을 주고받을 때에도 남편에게도 교수님에게도 나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어야 했는데 부부싸움만 하며 참고 있었을 때 말이에요.


저에게는 둘이 친구인 게 문제가 아니라 저에게 정직하지 않았던 둘의 행동이 근본적인 문제였는데, 저도 제 마음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화만 내니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지도 못했던 상황이었어요. 만약 그때 내가 이렇게 했었더라면... 만약 그때 내가 저렇게 했었더라면... 이런 가정을 계속 상상하다 보면 아니 근데 그 사람들은 대체 왜????? 라는 생각에 계속해서 화가 났어요.


최근에도 여사친이 쉐이빙 세트를 선물하는 것 자체, 또는 남편이 쉐이빙 세트를 선물 받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어요. 아니, 문제 삼고 싶으면 얼마든지 삼을 수야 있겠지만 뭐 그렇게 따지고 보면 문제가 아닌 일이 없고 화를 안 낼 일이 없을 거예요. 그럼 그냥 화내고 싶은데 그럴듯한 이유만 갖다 붙여서 화낼 명분을 만들면 되는 거잖아요.


저는 설마 또 이렇게 되는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반응한 것이었더라고요. 실체가 없는 두려움이었지만, 남편에게 제가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설명했고 일관된 자세를 유지했고 차분하게 대화했으니 남편도 저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해 주었어요. 만약 남편이 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그 이후에 제가 어떻게 행동하고 싶은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싶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제가 책임을 지고 싶은 것뿐이에요.




06 잘되면 당신 덕


저는 남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지는 않아요. 누군가에게 성급하게 조언을 하거나 첨언을 하다가 관계가 틀어진 적이 있거든요. 진짜 조언이 필요하다면 제 글보다는 전문가의 글을 읽는 게 맞겠죠. 이미 세계 유명한 석학들이 많이 연구했고,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대대적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한 이론들이 많아요.


저는 그냥 제 이야기를 적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살기도 하는구나, 그래도 살아지는구나... 누군가는 읽어주실 것 같아서요. 제가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감동받는 경험을 통해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처럼, 제 글도 누군가에게는, 적어도 나중에 다시 글을 읽어볼 저에게라도, 꼭 필요한 말을 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에서요.


글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그 힘을 믿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을 읽는 것도 저의 선택이고, 그 글에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도 저의 선택일 것입니다. 그분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소화하고 내면화하여 제 인생에 반영하는 것 역시 저의 몫이에요.


제 글을 읽으신 분들 중에도, 한심하다고 자기 합리화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것이고, 저보다는 본인의 상황이 낫다며 위안 삼으실 분도 계실 것이고, 저와 비슷한 상황이라 공감해 주실 분도 계시겠죠.


저는 오늘 하루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재밌게 살고 싶어요.


남편이 챙겨주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고

남편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고

우리끼리만 아는 장난치는 것도 좋고

남편의 가족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배우고 싶고

상처를 보듬고 새살이 돋게 하루하루 노력하는 저희의 모습도

각자의 꿈을 향해 느려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상황도

모두 저희의 선택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도 행복하시길, 행복하기로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 )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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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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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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