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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un 18. 2024

시간관념이 다른 남편과 살아남기

각자의 가치관을 지키면서도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남편과 나, 정말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살아가려니 여전히 우여곡절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답답해하는 부분은 바로 우리의 시차. 같은 시간대에 있어도 우리는 시간관념이 너무 다르다. 




우리의 시차


우리 가족과 인사드리기 위해 만난 날, 지하철 타고 신림에서 신촌 가는 데도 우리는 한 20분을 늦어버렸다. ㅜㅜ 기다리다 지치신 아빠는 처음 보는 남편에게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시는 게 눈에 띄게 보이는 데도, 영문을 모르던 해맑은 남편은 웃으며 인사를 드렸었다. 


내가 제대로 시간을 잘 봐가면서 준비했었어야 했는데. 60년을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남들보다 더 빨리 살아오신 아빠이셨을 텐데, 그 귀중한 시간을 ㅠㅠ 결국엔 대화도 잘하고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식사가 끝났다.


그때는 몰랐다. 20분 늦은 게 시댁에서는 진짜 빨리 온 거란 걸. 아마 그때는 남편도 몰랐을 거다. 왜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화가 나셨는지. 


시댁은 시간 약속이 살짝 무의미한 것 같다. 시간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르렀달까. 한두 시간은 보통으로 늦는다. 어디 가기 위해 1시에 출발하자 하면 문 앞에 준비 다 한 사람은 나뿐이다. 뭐 하고 뭐 하고 하다 보면 2-3시에 나가서 뒤에 일정도 계속 미뤄지고, 식사도 미뤄지고, 새벽에야 하루가 끝난다. (나 혼자 속으로 답답해하고 있었는데 시동생 여자친구가 말을 꺼내서 폭풍 공감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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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이서 살 때에는 남편이 성질 더러운 나에게 많이 맞춰줬었다. 신혼 초에는 남편을 닦달해서라도 시간에 맞게 미리미리 준비하는 정~~~말 장족의 발전을 해서 많이 나아졌었단 말이다. 


예를 들어 옛날에 남편은 세금 보고나 이력서, 지원서, 다른 중요한 서류 제출 등을 마감일에 시작해 당연히 하루 만에 다 못하고 마감일을 넘겼었다. 우리 결혼 비자를 준비할 때에도 몇 달을 미루고 결국 내가 이날까지 꼭 보내달라는 날에 몇 주가 지나서야 제출했다. 너무 무책임한 행동 아닌가. 


텍스는 매년 4월 15일 똑같은 날이 정해져 있는데, 1월부터 텍스 하라고 서류를 얼마나 많이 받는데 ㅜㅜ 마감일에 또는 급박해서 지원을 하려니 필요한 서류를 구하러 다니느라 한참을 시간 낭비를 했었다. 공고가 몇 달 전에 뜨는데!!! 필요 서류가 다 적혀 있는데!!! 날짜에 맞춰서 미리미리 해두면 얼마나 좋을까.


성격 급한 나를 만나서 6월에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3월부터 잔소리를 듣고

통장 잔고에 빠져나갈 돈을 미리 계산해 두는 나를 만나서 돈, 돈, 돈, 돈, 돈! 소리를 듣고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괴로워하는 나를 만나서 등 떠밀리듯 시험 보고


우리 부부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우선순위로 둘 것인지, 이제는 혼자가 아닌 둘이니 불필요한 지연이나 혼선을 방지하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듣는 남편도 아무튼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지금 당장 티비 보며 쉬는 것보다 마감이 다음 주라도 지원서 작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거. 

온갖 고생을 해서 돈을 얼마 조금 아끼는 것보다 시간을 벌어 더 중요한 일에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거.

자기가 내뱉은 약속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어야 나도 너를 믿고 함께 갈 수 있다는 거.


그래도 아마 각자 희생한다고 생각하겠지. 




손절당하지 않으려면?


하지만, 습관의 관성이랄까 시댁에 가까이 갈수록 남편의 시간관념이 무너진다. 


나는 시간 약속이란 타인에 대한 배려이자 타인의 시간을 존중해 주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오래된 친구들은 다들 바쁜 상황에서도 시간을 내 서로 접점을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우리가 이사오기 전 남편에게도 말했다. 금요일에 잠정적으로 약속 잡아놨는데 우리 이사 왔으니까 알려줘야 하지 않겠냐고. 남편은 내일 문자 한다고 했다. 다다음 날 결국 친구에게 먼저 문자가 왔고, 남편은 사정을 설명하며 길게 답장했지만 읽씹 당했다고. 


그다음부터 연락할 일이 생기면 지금 바로 하라고, 문자 보내는 데 1분도 안 걸리니까 당장 보내라고 잔소리를 듣는다. 네 평판을 생각하라고, 나이가 몇이냐고, 상대의 시간을 네가 낭비한 거라고... 잔소리하는 나도, 잔소리 듣는 남편도 답답할 노릇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어머니께서 그렇게 시간 약속을 안 지켜도 곁에 사람이 남아있다는 거. 아마 소도시의 여유로운 삶의 태도 덕분일까? 아니면 남아있는 사람들이 시간 약속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인 것일까? 시어머니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시어머니의 습관을 인정하고 기다려주신다. 아마 그만큼 함께 지내온 시간들이 쌓이고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며 상대와의 관계와 화합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시니까 그럴 수 있는 거겠지?


상대를 위해서 기꺼이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유로움

상대와 공유하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감사함

기다리는 시간마저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소중함


이런 대인배의 마음까지 가려면 나는 아직 한-참 남았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맞다. 사실 조급하게 간다고 해서 크게 이득 되는 일도 없고 여유롭게 간다고 해서 크게 손해 볼 것도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왜 그렇게 느려터진 남편을 기다려줄 수 없는 것일까? 빨리 뭔가를 준비하고 빨리 어딘가에 도착하는 게, 남편과의 평화를 깰 정도로 중요했던 것일까? 


빨리빨리 하고 싶은 마음은, 뒤집어보면 내 불안정한 마음에 기인한다. 불안함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서 뭐든 미리미리 완성시켜 놓고 싶은 마음. 이것만 하면, 저것만 하면, 그러면 조금 안정되겠지, 그러면 마음 놓을 수 있겠지, 하는 나의 착각이자 바람이다.


그런데 느긋한 남편을 기다리려니 더욱 불안해지는 것.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지만... 나는 이미 안달복달 마음을 너무 많이 써버려 다른 걸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피곤하고 힘들어서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서, 그 순간을 즐길 수 조차 없어졌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차분하게 머물 수 있으면서도 남편과 시댁의 시간적 여유감을 존중해 드릴 수 있으려면, 나만의 기준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내가 직접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세워보는 나만의 기준!


예를 들어 지난번에 시댁에 6-7시라고 말씀하셔서 6시에 맞춰서 가니 요리를 그때 시작하시는 거였다 ㅎㄷㄷ 식탁이랑 의자랑 새로 사셔서 우리 보고 조립해서 앉으라고 하심 ㅋㅋㅋㅋ 그래서 요리부터 테이블 세팅까지 천천히~ 다 하고 저녁 먹고 후식에 차에 뭐에 다 하니 자정이 다됐고, 설거지하고 어쩌고 대화하고 저쩌고 하다 보니 3시... 


시댁 방문 시 나의 최소한의 목표

6-7시 저녁 초대 시, (대부분 정확한 시간을 정하지도 않는다 ㅠㅠ 약속한 시간에서 한두 시간은 여유시간으로 염두에 두기) 

8시 전 식사 시작 목표! (음식은 테이크아웃으로 우리가 사가기. 요리시간, 설거지 및 뒷정리 시간 단축)

11시 전 식사/후식/차 등 끝! (늦어지면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12시 전 설거지 뒷정리 마무리하고 시댁 나오기! (다 끝내지 못하였더라도 시간 되면 나올 줄도 알아야 한다!)

1시 전 집 도착 후 잠들기!! (그래야 다음 날 지장이 없게)




결혼이란 배우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과, 배우자가 더 나은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 사이의 균형 잡기라고 한다. 


그러므로 남편의 여유로운 모습을 배우면서도, 남편이 시간에 끌려다니기보다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나도 늦어지면 조급해하고 화내기보다, 내가 피곤하면 스스로를 위해 쉬어갈 타이밍도 주어야 하고, 내가 불안하면 남이 해주길 기다리기보다 스스로를 위해 직접 나설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 둘 다 더 나아지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ㅠㅠ 약간은 둘 다 퇴화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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