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시누이가 자폐일 때, 큰며느리에게 기대되는 도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유병율이 급증하면서, 최근 미국 8세 아동 36명 중 1명은 자폐이며, 미국 성인 자폐 인구도 10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해요.
저는 솔직히 말하자면 자라면서 장애인을 만난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만큼 옛날에는 사회가 분리되어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5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소아마비를 앓은 같은 반 학생을 한 학기 내내 제 옆자리에 맡겨두셨을 때 한 번. 엄마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매달 자리를 바꿀 때마다 같이 바꿔달라고 항의한 후로 자리가 바뀌었어요. 나름 과학 영재였던 친구라 어디 경진대회 같은 데 나가서 좋은 성적을 얻었던 걸로 기억해요.
두 번째는 대학생 때 같은 수업을 들었던, 소아마비를 앓았다는 학생. 세계사, 한국사, 철학, 정치, 경제 등 온갖 지식을 총망라한 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멍하게 수업을 듣던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교수님과 열띤 토론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학생, 그래서 엄한 교수님께서도 칭찬 일색이었던 보기 드문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시누이. 제가 처음 남편과 연애할 때, 남편은 저에게 자폐인 동생이 있다고 바로 말해줬어요. 남편은 만약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자신과 막내동생이 시누이를 돌봐야 하겠지만, 시부모님께서 시누이에 대한 계획이 있으시다고, 저에게는 부담가게 하는 일 없을 것이라고 했죠.
시누이는 동네 빵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주일에 몇 번,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 베이킹 일을 하고, 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할 정도로 스펙트럼 안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고 합니다. 성공적으로 사회에 적응한 사례로 유전자 검사 연구에도 참여했다고 해요. 학교 교육도 모두 일반학교를 졸업하였고, 언어적 의사소통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전혀 문제가 없어요. 심리상담가이신 시어머님께서 가족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을 것이라 감히 추측해 봅니다.
저희가 결혼한 지 벌써 6년, 그 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막내동생은 성정체성과 독립을 선언하며 저 멀리 이사 갔으며, 시아버지께서는 존엄사를 선택하셨고, 시어머니께서는 큰아들인 남편에게 더 의지하시게 됐어요.
비행기로 6시간 떨어진 하와이에 살았을 때에는, 남편이 간간이 전해주는 소식을 들으며 그냥 그렇구나 했죠. 사실 저는 우리가 결혼해도 요즘 유행한다는 ‘셀프 효도’ 할 거라 생각해서 (아마도, 미국인이니까?) 큰 걱정 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별다른 접점이 거의 없이 지내왔습니다.
저보다 두 살 어린 시누이는 또래 친구가 없어서 이제는 가족이 된 새언니인 저와 보낼 시간을 굉장히 기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제 친동생들과도 연락 잘 안 하고 무덤덤하게 지내는 사람인지라 그런 관심 자체가 거부감이 듭니다... 실제로 자주 만나지도 않지만 ^^; 그런 기대치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싫을 수도 있잖아요.
특히나 외부에 쉽게 영향을 받는 시누이에게 어떤 말을 해야 옳을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에요. 아마도 미국과는 가치관이 상당히 다를 한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는데, 혹시나 잘못된 말을 하거나 제가 한 말로 인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럽죠.
어제 시어머님 친구 분들과의 저녁식사에 초대받았어요. 각자 음식을 해와서 나눠먹는 팟럭 파티였는데, 시어머니께서 남편에게 한국음식을 해오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시고, 정작 이놈의 남편이 저에게 전달하지 않아서 이러쿵저러쿵 남편과 말다툼이 있었더랬죠.
나중에 시어머니께서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제가 원하는 만큼만 참여해도 괜찮다며, 자신의 좋은 친구이자 가족 같은 사람들이라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저녁에서 제가 느낀 감정은, 이 가족 같은 친구분들이 계셔서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정말 잘 됐다는 안도감이었습니다.
시누이의 (아마도 악의는 없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말 한마디에 어쩔 줄 몰라하는 저와는 달리, 다들 이해심 넓은 반응을 보이는 어른들이셨어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 그대로가 현실화된 모임인 것 같았습니다. 각자의 사정은 전혀 모르지만, 비슷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해, 스스로를 위해 모인 사람들. 그런 모임이 참 쉽지 않은 것을 알기에 정말 대단하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저는 5학년 때에도, 대학교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아이들 보다는 그 아이들의 어머님들이 더 생각이 납니다.
5학년 아이의 짝꿍에게 알림장이나 다른 일들을 챙겨주지 말라고 부탁하셨던 어머니의 마음
매일 오르막길에 있는 대학교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며 걷는 운동을 하시는 어머니의 마음
아이의 적응을 위해 작은 마을로 이사 와서 서포트 그룹과 커뮤니티 형성 등 평생을 노력하신 어머니의 마음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이겠죠... 그리고 그 어머님들께서는 비장애 자녀 또는 그 자녀의 배우자들에게 어떤 마음일 지도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가끔은 다른 자녀/그의 배우자에게 지나치게 큰 (=머리로는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기대를 걸 때도 있을 것이고, 또는 너무 힘든 상황에서는 독립적인 (=도와주지 않는) 자녀/그의 배우자를 나쁜 아이로 프레이밍 해버릴 때도 있겠죠.
또 평생을 가족으로 묶여있을 형제자매들의 마음은 어떨지도 궁금합니다. 평생을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결혼이나 가족계획을 해야할 때 어떻게 다가올지, 그 때문에 배우자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떤 마음일지, 배우자가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생길지... 네, 이기적인 저만의 궁금증입니다.
그럼에도 한 아이를 위해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으니 시어머니께서 그동안 애써오신 덕분입니다. 남매가 어렸을 때 돌봐주셨던 입주 유모님께서는 자폐아 관련 공부를 해서 사회복지 일을 하게 되시고, 다양한 시설과 의료관계자, 상담가, 치료사 등 전문가들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정말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정말 죄송하게도 저는 남편과 저의 결혼, 친정을 포함한 제 가족, 그리고 제 삶에 대한 경계를 아주 정확하게 지킬 것이기에 아마 시어머니께서 속으로는 바라실지도 모르는 그런 며느리는 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그 좋은 사람들, 남 보다도 못할 거예요. 아마 시어머니께서도 진심이 아닌 저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라고 믿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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