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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y 30. 2024

미국인 시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이 버거울 때

K-며느리의 소고

어젯밤 시댁에 시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사촌내외분과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네 시간 동안 폭풍 수다를 듣고 왔다. 유머와 여행을 즐기시며, 자신만의 삶을 사는, 우아하게 나이 드신 어른들을 뵈니 정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재밌고 행복하고 충만한 할머니 할아버지 인생.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제의 대화는 시어머니와 시외당숙님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가족 친척들의 이야기, 각자의 근황 이야기, 요즘 사회의 문제점과 라떼는이 간간이 섞인 아주 유쾌한 대화였다. 역시 옛날이야기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게 제맛이지. 특히 할아버지께서 해주시는 우리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는 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역사책을 듣는 것 같았다. 


나는 당연히 한국역사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 우리나라 구한말 시대에 남편의 증조할아버지께서는 학업을 마치고 세계여행을 하셨다고. 배를 타고 일본과 인도 등 아시아 각 지역을 활발히 여행하셨고, 그 당시의 일기와 편지는 어디 박물관에 기부되어 있고 그때 선물 받은 진귀한 물건들은 어디 박물관에 기부되어 있고. (나를 의식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시어머니께서 외국인에게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들이었겠지? 라고 언급해 주심 ㅋㅋㅋㅋ) 만약 당시 일본에서 배가 잘못 들어서 조선으로 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ㅋㅋㅋ


게다가 하버드 졸업생은 왜 이렇게 많고, 대대로 의사 집안에, 200여 년 미국 역사에 곳곳에서 대대로 활약하신 듯하다. 시외당숙님 역시 해외에서,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의료활동을 하시면서 쌓은 엄청난 경험치를 가지고 계셨다. 지금은 알라스카에 거주하시며 병원이 없는 시골 지역에 무려 헬리콥터를 타고 방문 진료를 하신다는 ㅎㄷㄷ


심지어 보스턴에서 뵌 시이모님은 퓰리처상을 수상하신 작가님이시라고...! ㅠㅠ 오마이갓. 사인이라도 받아 놀 걸. 그리고 여기서 진짜 쓸모없지만 나한테는 재밌었던 사실은 사촌어르신 내외분께서는 다른 악센트를 쓰셔서 화이 홧 훼어 라고 발음하신다는 것ㅋㅋㅋㅋㅋ 그리고 단 한 번도 나에게 훼어 아유 프롬 이라고 묻지 않으셨다는 것. 



사실은... 심리적으로 시어머니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우리 시어머님 마음 따뜻하시고, 너그러우시고, 정말 좋으신 분인데. 정확히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이 버거웠다. 심지어 지난 토요일에는 시어머님의 저녁 초대에 불참하기까지. 시댁 동네에 온 뒤로 수요일 한 번 밖에 안 만났는데... 왜 기분이 이러지 생각해 봤다.


어제의 저녁이 즐거웠던 이유는, 각자가 자기가 할 말을 즐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우리 같이 웃고 대화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그런 분위기가 나를 편하게 해 줬다. 


나는 시댁 모임을 생각하면 며느리인 내가 자기소개하고 신상공개하고 이럴 거라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자리가 있으면 소개하면 되지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자발적으로 도마에 올라 평가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당당하지만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런데 상대가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나도 재밌게 들으면서 중간중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라서 좋았다. 


너와 친해지고 싶어. 너에 대해서 1부터 100까지 하나하나 알아낼 거야! 하는 접근보다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런 거 좋아해~ 우리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 하는 방식이 더 편한 것.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는 나는 그게 더 좋다. 이제 내 스타일을 알겠다. 친구나 가족, 연인들 모두 관계성이 다르니까. 그러니까 시어머니와만 만날 때에도 내 이야기 보다 시어머니 또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대화를 그쪽으로 이끌어 나가야지. 



내가 시어머니를 멀리하고 싶어 했던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시어머니의 내리사랑을 받을 준비가 안 돼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시어머니 사이에 비행기로 6시간의 태평양이 가로막고 있었을 때에는 시세권 밖에 위치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의 사랑이 바다 건너까지 전해져 왔지만. 


시어머니께서는 남편과 내가 떠오르실 때마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아주 작은 선물들을 보내주셨다. 예를 들자면 현관문에 달아놓을 종, 세탁실에서 쓸 쿼터, 벽에 걸 장식품, 주방에서 쓸만한 소창행주 등등. 아주 감사하고도 따뜻한 마음이셨겠지만...


그 선한 마음이 나에게는 시어머니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도구들로 다가왔다. 내가 원하는 신혼집의 모습이 있는데, 나의 선택과 나의 취향을 반영하고 싶은데, 그것을 박탈당한 느낌. 안 그래도 좁았던 스튜디오인데, 문에, 벽에, 주방에, 이미 시어머니로 꽉 차 버렸다. 잘 알지도 못하는, 몇 번 만나지도 않은, 낯선 타인이.


하필 또 우리 시어머님은 나 같은 며느리를 만나서 ㅠㅠ 우리 엄마도 까탈스러운 나를 맞춰주기 어려워서 항상 먼저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시거나, 현금으로 선물해 주시는데 ㅠㅠ 


이제 완전한 시세권 안으로 들어오니, 옷이며 음식이며 생필품이며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어머님. 그리고 그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없는 내 간장종지의 마음. 남편과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남편이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주었다. 


절해도 괜찮다.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건 시어머니를 거절할 수 없다는 나의 한계치였을 뿐. 거절해도 불편한 마음 대신에 거절함으로써 시어머니와 더 편하게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채워야지.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아야지. 그러면서 감사하다는 표현을 더 해야지. 그게 진심이니까.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거절당했다는 마음에 불편해하시면 어떡하지?ㅠㅠ 그 마음은 시어머니의 마음이지 뭐...


그리고 내가 코카콜라 마시는 걸 좋아한다니까 냉장고 가득 채워진 콜라병 ㅋㅋㅋㅋㅋ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 밖에 없다 처럼 콜라를 채워주시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제 친정도 시댁도 무한 콜라 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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