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오만 원과 편견
지난 제 생일에 시어머님께 받은 카드입니다.
생일 축하한다는 문장보다도 용기 있는 너의 삶을 응원하기 위해 이 카드를 골랐다는 말씀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가족으로서 큰 일을 겪을 때 시댁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주어,
처음 겪는 일일 텐데도 잘 받아들여 주고,
지금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보여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씀이 적혀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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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댁에서 삶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정말 큰 깨달음을 얻고 돌아왔는데,
그리고 그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왜인지 한국 친구들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아직까지는 한국사회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라 그랬을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요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탓일까요,
아니면, 제가 너무나도 이상주의적인 생각을 갖게 된 걸까요?
동방예의지국,
열녀문과 효자비를 세웠던 역사를 가진
유교적인 효사상이 강한 나라,
부양의 의무가 법으로 정해지고
며느리의 도리와 고부갈등이 만연한 문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비혼을 다짐하고
개천용, 효자 아들이 결혼 상대로 기피대상이 되어버렸어요.
하지만 개천에서 난 용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해 뛰어난 성과를 낸 훌륭한 사람이고,
효자 아들도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다만 그 정도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보상심리가 생긴다면 문제가 되고,
자식으로서 해야 할 효도를 타인에게 미루거나 강제한다면 문제가 되는 거죠.
저희 남편은 효자 아들입니다.
비행기로 6시간 차로 2시간 걸리는 시댁에 한 달씩 방문해서 편찮으신 부모님을 간병해드렸어요.
저는 그 힘든 일을 불평불만 한 번 없이 묵묵히 해낸 남편이 정말 새롭게 보였어요.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모든 일들을 철저히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절망적일 수도 있어요.
그때, 다정하게 배려해주는 손길,
사랑한다고 속삭여주는 목소리,
사소한 일상도 공유하고 의견을 묻는 마음,
작은 불편함까지 해소해주는 그런 노력이 느껴지면
정말 감동적일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효자 남편은 그렇게 부모님 곁을 지켜드렸습니다.
이게 감동적일 수 있는 가장 결정적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부모님께 진심을 다했기 때문이겠죠. 그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강요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진심을 다했어요.
전문적인 간병은 오전, 오후로 시간을 나눠서 간병 간호사가 집으로 출근해주셨고, 샤워 담당, 상담 담당, 의료 지원 담당 등 다양한 간호사가 방문해 주셨어요. 간호사가 방문하지 않는 날에는 남편과 시동생, 시어머니께서 직접 간병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남편에게 항상 강조하셨어요.
너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라고,
산책을 가거나 외출을 하는 등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내라고,
개인적인 일이 있으면 우선으로 해도 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지 들어주겠다고 말이에요.
지난 3년 동안, 시부모님도 남편도, 며느리인 저에게는 아무런 요구사항도 없으셨고, 연락을 강요하지도 않으셨어요.
저는 그동안 시댁에 방문하지 않았다가, 지난번 마지막으로 인사드리고 왔어요. 그때에도 와줘서 고맙다는 말씀만 해주시고, 남편과 시댁 가족에게 심적으로 도움이 되어줘서 고맙다는 말씀만 해주셨어요.
그리고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가족의 모습에 대해 배웠어요.
나이 드신 부모님 봉양을 며느리에게 강요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식들도 성인이 되자마자 자립하고, 부모님도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하시는 모습
간병인을 하대하거나 환자를 학대하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며 감사를 표현하고, 환자를 한 인간으로 대우해주며,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
사람을 돈으로 수치로 평가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과 가치관을 바라볼 수 있는 모습
참 보기 좋았습니다.
한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 저에게는 여전히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시부모님께서 편찮으시다니 간병과 비용을 먼저 걱정하는 나의 편견
시댁에 방문하자니 어떤 일을 시키실지 먼저 방어하게 되는 나의 편견
이혼, 재혼, 한부모, 다문화 가정, 이복/이부 형제에 대한 나의 편견
제가 얼마나 좁은 시야를 가졌는지, 제가 얼마나 편견이 많았는지 깨달았죠.
그리고 제가 얼마나 역설적이었는지도 깨달았어요.
저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억지로 다 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결혼 초반 시댁과의 갈등에서 제 의견을 설명하기보다 연락을 아예 안 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했어요. 처음부터 이렇게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었거든요.
어떤 일을 시켜도 내가 불편하다면 거절할 줄 알아야 해요.
나를 위해서 나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켜줄 줄 알아야 해요.
일관적이고 단호하게 내가 불편한 게 있다면 표현해야 해요.
시부모님께도 좋은 시부모님이 되어주실 기회를 드려야 해요.
며느리를 귀하게 여겨 주실 기회를 드려야 해요.
며느리의 의견도 존중해 주실 기회를 드려야 해요.
덕분에 저도 시부모님께 진심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의 시야를 가렸던 편견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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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에는 시부모님의 취향이 담긴 '선물'이 정말 부담스러웠어요.
지금은 시부모님께서 생일마다 한국 돈 5만 원 정도를 용돈으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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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눈앞의 현실이 너무 막막해서 아무것도 안 보일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나에게 더 쉬운 방법, 나에게 더 편한 쪽으로, 세상을 치우치게 바라볼 때도 있어요.
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찾고 멀리 넓게 볼 수 있게 되면,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내가 얼마나 편견이 많았는지 깨달을 때도 옵니다.
오만과 편견을 뛰어넘어
맑은 진심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
감상을 기록해봅니다.
https://brunch.co.kr/@kim0064789/386
https://brunch.co.kr/@kim0064789/383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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