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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Aug 18. 2024

미국에서는 자기표현을 꼭 해야 하는 이유

말 안 하면 손해인 사회

지난주, 상반되는 두 가지 상황을 동시에 겪었다. 오냐오냐와 단호박 사이. 정 반대의 환경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정말 크다는 것을 느끼고 내가 배운 점을 기록해두려 한다.




오냐오냐


사택에 계속 살게 됐다.


목요일 오후 2시쯤, 9월 15일까지 회사 사정 상 사택에서 퇴실해 달라는 이야기를 전달받고, 바로 다음 날인 금요일 오전 10시 반쯤, 사택에 계속 살면서 다른 일도 같이 하자는 제안을 이메일로 받았다. 오잉? 이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었나요... 인생이 이다지도 쉬울 수 있나요. 그냥 해달라고 말하면 다 해주나요??


그러니까 금요일 아침부터 분노의 글쓰기를 하면서 내가 남편한테 가졌던 엄청난 불평불만들을 사실은 입 밖으로 꺼낼 필요도 없었다. 내가 글을 올린 건 1시쯤, 그리고 내가 이메일을 확인한 건 2시 반쯤. 한 네 시간을 쓸데없이 집 알아본다고 스트레스받았네... 머쓱타드 ^^;


나는 사실 의심했다. 남편이 이 회사에 프로젝트를 받아 계약서를 쓸 때에도, 나도 회사에 취직해서 출근 첫날을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사택에 들어가게 된 순간부터, 일이 이렇게 잘 풀려도 되는 건가 싶었다 ㅠㅠ 그래서였을까, 퇴실 요청을 받았을 때에도 조금 덤덤했다. 그럼 그렇지.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그런데 진짜 말도 안 되게, 내가 “나는 사택 살게 해주는 줄 알고 지금 이 사무실 지원해서 일한다”는 말 한마디에 상황이 바뀌었다. 임원진이 그럼 다시 논의해 본다고, ‘크리에이티브’ 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셨을 때에도 불신했다. 만약 내가 그 한 마디를 안 했더라면 나는 그냥 이사 나와서 퇴사각을 재고 있었을 것이다. 남편에게도 빨리 정규직 자리 알아보라고 언제까지 여기서 일할 거냐고 불평불만 했겠지.


그런데 내가 원했던 상황이 진짜로 일어나니 이것도 믿기지가 않네. 개인 간의 관계가 아니라, 회사에서의 일도 내 말 한마디에 바뀌다니. 내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고,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진 경험이 생기니 새로운 세상에 눈이 떠지는 것 같다.  


일개 직원인 나를 온실 속의 꽃처럼 대우해 주시려는 건가. 이렇게 오냐오냐 키워져서 나를 의지박약자로 만들 셈이야?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단호박


같은 날, 카카오톡 오픈챗에서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는 안건이 올라왔다. 대화를 캡처한 사진과 함께, 상대는 유부남이며 혹시 의심 가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네이버 카페에도 비슷한 내용들이 많다. 아무리 대도시라도 한인사회가 얼마나 좁은데 ㅠㅠ


개인적으로는 그 사건이 정말 충격이었다. 그래도 그분 덕분에 이렇게 공론화시켜서 추가적인 피해자가 덜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불쾌한 일을 겪었으니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다수의 사람에게 알리는 그분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내 생각과는 달랐다. 왜 그런 대화를 이어가냐 그냥 차단하면 될 걸 계속 답장해 주니까 더 그러는 거 아니냐는 발언. 피해자가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피해자는 피해호소인이 되었고, 조롱의 대상이 됐다. 그 상황에서 이성적이길 요구당하고, 자신은 정상(?)이었는지 추궁당했다.




나는 항상 불편한 이야기는 피했다. 내 입장이 있어도 결정된 일이라면 그냥 받아들이고, 만약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떠났다.


내 이야기에 누군가가 귀 기울여 준 적이 있었나?


누구나 다 그래 했던 상황들이,

그냥 그러려니 했던 상황들이,

원래 그래 왔어했던 상황들이,

차라리 내가 말을 말지 했던 상황들이...


그동안 내가 회피했던 불합리하고도 불공정한 상황이 얼마나 많았던가!


까라면 까야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어떻게 사냐.


타인에 대한 배려와 단체에 대한 순종이 당연했던 환경이었다.


안 되는 일들은 질문하는 것조차 예의가 아니다.

부탁을 받으면 거절할 수 없으니 어려운 부탁은 애초에 말을 꺼내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약간 억울함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약간 악바리 정신으로. ‘존버’하는 게 마치 미덕인 것처럼...




ghetto mentality 라는 표현이 있다. 게토는 원래는 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을 지칭하는 단어로 지금은 빈민가나 저소득 지역을 통칭한다. 소수자나 이민자, 빈곤층과 같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인 사회에서 만연한 생존본능을 말한다.


sense of entitlement 라는 표현도 있다. 자신이 특별한 대우나 호의를 받을 자격이나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경향을 말한다. 그것을 받지 못하는 경우, 본인은 아무 노력을 하지도 않았음에도 당당히 요구하는 사람.


이 둘은 어떻게 보면 동전의 양면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같다. 이미 사회 전반에 팽배한 차별적인 분위기 안에서 같은 대우를 받고 싶다는 의지 표현만으로도 기득권층에게는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알지라고 느껴질 수도 있고, 특별한 대우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는 사람에게서도 빼앗아가려고 할 수 있고...


별 거도 아닌 일에 목숨 걸고 달려든다. 그 별 거 없는 게 나의 전부일 수도 있으니까. 누구에게는 그게 결혼생활일 수도, 자존감일 수도, 신뢰일 수도 있겠지.

조금만 기다리면 더 큰 보상이 있어도 멀리 볼 수 없다. 그걸 기다릴 여유도, 그 기대가 충족된 경험도 없으니까. 누구에게는 그게 돈일 수도 행복일 수도 안전일 수도 있겠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고민을 하는 것도, 감정을 느끼는 것마저도 사치로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지금 당장의 생존이 우선인 사람도 있겠지.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패배감, 좌절감, 무기력함. 나는 이런 감정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나도 새로운 것을 하나 배웠다. 나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 무엇을 표현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왜 표현하는지가 더더욱 중요하다는 것. 내가 만약 내 집인 양 사택에서 절대 못 나간다고 왜 줬다 뺐냐고 드러누웠으면 같은 결과가 나올 리가 없었겠지.


마찬가지로 타인이 나에게 해주는 말이나 대우도 내 심리상태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친다. 피해자임을 증명하라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는 없으니까. 결국 내 주위를 어떤 사람으로 채우고, 내 환경을 어떤 분위기로 채우고 싶은지 정말 신중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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